멀더의 불공정함

그냥 뜬금없이, 엑스파일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씬을 공개해드리죠

시즌 3, 호수 괴물의 정체 편에서

빅블루를 찾아 나선 둘이 한밤중에 난파되어 바위 위에 앉아 구조되길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입니다

스컬리는 진실을 쫓는 멀더가 모비딕의 에이헙과 닮았다고 지적하고

멀더는 에이헙은 다리를 잃었기 때문에 백경을 쫓지만

자신은 사지멀쩡하기 때문에 FBI 요원이 됐으므로 정반대라고 응수합니다

장애가 있다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영웅적이지만 (=에이헙)

사지멀쩡하면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삶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지 않느냐(=멀더)고 

그렇게, 멀쩡한 육신에 대한 오체불만족을 토로합니다

깜짝 놀라셨죠, 장애인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영웅적이니까 비장애인처럼 자기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

라고 멀더는 정말 그렇게 말합니다. 멀더는 그런 놈이었어요

scully ;

백경을 쫓는 거나 진실을 쫓는 거나 뭐가 다르죠?

당신은 에이헙과 꼭 닮았어요.

mulder ;

그렇게 말하니 생각나는 건데

난 항상 나무로 만든 의족을 차고 싶었어요.

일종의 소년 시절 로망이죠,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유치한 환상이 아니라, 깊은 고찰 끝에 내린 결론이었어요.

만일, 나무 의족이나 갈고리 손 같은 것을 달고 산다면

그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해보이겠죠.

불구의 몸으로 당당히 삶과 맞선 자,

살아있는 것만도 영웅적일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조차 없는 이들에겐

스스로의 생존 가치를 증명해야 할 책임이 지워지죠.

경쟁에서 이기고, 적어도 넥타이를 매는 신세 정도는 돼야하는.

그러니, 굳이 말하자면

저는 에이헙과는 정반대에요.

만일 내게 나무 의족이 있었다면

아마도 살아있다는 것에 좀 더 만족할 수 있었을테니까.

적어도 허상을 좇으며 살아갈 필요는 없었을테니까.

scully ;

그게 유치한 게 아니라고요?

mulder ;

절대 아니죠.

모비딕에서 진짜 유치한 문구는 따로 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인데,

'처음 지옥을 떠올린 건..

scully ;

...사과 푸딩을 먹고 체했을 때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어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합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어떠한 단면을 옹호하기 위해 머릿속에 세워놓은 논리들엔

언제나 황당할만큼 느슨한, 때로는 타인에게 폭력이 되는,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지점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멀더의 장애인 논증에 비견할만큼 무식하고 용감하지 않더라도요

당신의 구부정한 어깨를 당신 스스로는 언제나 큰 키에 대한 오체불만족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가면 큰 자가 작은 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갖는 이 세계의 권력 구조에 의해 가진 자의 투정이 되죠

부모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불행한 소녀의 절규는, 역시 어떠한 구조에 의해, 정말 부모가 없는 불특정한 소녀 가장에 대해 정치적으로 불공정합니다 

작게는 그런 것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입 밖으로 내면 설명되기에 앞서 아마도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할 진실 혹은 진심들.

정말로 특정한 누군가를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해도

여전히 내 안의 어떤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선 빌어올 수 밖에 없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어떤 치졸함같은 것

그러니까 교훈은, 말해지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말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으므로 해결도, 해소도 되지 않습니다, 그게 함정인 거지요

그 답답함에 행여라도 발설했다가는 멀더처럼 정체가 탄로나게 될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멀더를 옹호하기 위한 포스팅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아니라 멀더가 그랬다는 손가락질이죠

멀더가 그랬습니다, 멀더가요

난 축구가 싫어

대체 그 경기의 요점이 뭔지 모르겠어

축구 하기 싫어

달리고, 잡고, 던지고

멍청한 자식에게 명령이나 받고

땀에 젖은 가랑이 사이에 깔리고

사내놈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게

대체 뭐가 스릴있다는 건지 모르겠어

도무지 모르겠어

있잖아, 난 다른 놀이가 훨씬 더 좋아

있잖아, 여자애들도 남자애들 못지 않게 재밌게 놀 줄 알거든

i don't want to play football / belle and sebastian

translated by lonegun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