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은 대한민국 사람이다. 본래 천성이 어질고 순박하여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본인이 밝히지 않아 태어난 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 고구려가 멸망해가던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인들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하였다.

 

"나는 본디 무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허나 전쟁에 패퇴한 민족이라 하여 부당하게 핍박받아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 -발해본기

 

거듭되는 당의 침입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국가의 기틀을 다진 그는 나라가 안정되자 옥좌를 아들에게 물려준 뒤 이름을 바꾸어 당으로 유학을 떠났다.

 

"전란이 끝났으니 그저 학인의 본분에 다할 뿐이다." -발해본기

 

당에서 무령군 소장 벼슬을 지낸 그는 아들인 무왕이 당에 침입하자 당나라 안의 사정을 은밀히 아들에게 전하여 내부에서 호응하였다 한다. 허나 당나라 대신들 중 아무도 그의 첩보 활동을 의심한 이가 없었으니 가히 그 인품이 어땠는지 알 만하다.  

서기 827년. 해안가를 순시하던 그는 때마침 해적에게 끌려온 신라인들의 모습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그 길로 벼슬을 그만둔 뒤 통일 신라의 흥덕왕을 찾아가 자신에게 해적 소탕의 임무를 맡겨달라 청하였다.이에 왕이 흔쾌이 허락하매 이 때 세워진 것이 바로 청해진이다. 서기 828년, 흥덕왕 3년의 일이다. 그는 청해진의 대사로 있으면서 해적을 소탕하고 그들에게 잡혀있던 수많은 인질들을 구출하였으며, 당과 일본의 중개무역을 시도해 재물을 축적했다. 하지만 골품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직된 신분제 사회인 신라에서 이런 그의 성장을 반가이 여길 리가 없었다. 결국 왕위 계승 문제에 얽혀든 것을 계기로 조정에서는 암살자를 보내 그의 목숨을 취하려 든다.

 

휘하 장수들의 희생으로 가까스레 목숨을 건진 그는 결국 '한순간의 욕심으로 인해 죄없는 넋들을 비명에 보냈으니 내가 어찌 살아서 하늘을 보겠는가.'하며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후 그는 정신을 잃은 채  90년을 바다에서 떠돌다 송악의 상인 왕씨의 배에 그 몸을 맡기니 이 때가 서기 936년이다.

 

이 사건에 대해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그가 떨어진 바다 위로 황금빛 서기가 비추며 오색구름이 그의 몸을 감싸니 하늘에 사는 것들과 물에 사는 것들이 감히 그의 몸을 범치 못하더라. 송악의 거상인 왕씨가 이에 놀라 서기가 비추는 곳을 향해 절을 하니 어느 순간에 잠든 사내 하나가 거북과 물고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바다에 떠 있더라. 이를 건져내자 일순간 서기가 걷히며 사내가 깨어나매 왕씨가 물은즉슨 '도령은 어디의 누구요.' 하니 사내가 대답한즉슨 '나는 아무개의 자식도 아니고 또한 아비도 아니요' 하더라.이에 왕씨가 '그럼 나의 자식이 됨이 어떠하느뇨.' 하니 사내가 흔쾌히 허락하더라.'

 

그는 곧 그 총명함을 드러내 정주의 유씨, 금성의 오씨와 혼인을 하였으며, 후일 궁예의 군사가 일어나자 그의 휘하로 들어갔다. 본래 상주를 기점으로 백제와 다투던 궁예의 땅이 그가 총사가 된 이후로 낙동강 유역까지 넓혀지니 이에 궁예가 기뻐하며 그를 의제로 삼았다. 이로서 국가는 안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라가 커짐에 따라 궁예는 오만하여 스스로를 미륵으로 칭하며 폭정을 시작했다. 조회 중 자신의 말에 반대하는 이를 그 자리에서 철퇴로 때려 죽이고 수 십의 승려를 생매장하는 등 그 몰골이 차마 봐 줄 수 없자 수종은 "맹목적인 충성이 어찌 충성이라 하오리까. 임금의 성정이 흐려졌을 때 진언을 드릴 수 있어야 비로소 신하된 자라 할 것이요." 라 하며 수 차례 충언을 해 궁예의 미움을 샀다. 태봉 말년, 결국 궁예는 역모의 죄를 씌워 수종을 없애려 드나 최응의 기지로 목숨을 건진다. 최응은 은밀히 도선대사와 수종이 만나기를 주선하고, 도선의 기공술로 인해 수종은 비로소 잃고 있던 기억을 되찾는다. 그리고 서기 918년, 수종은 홍유, 배현경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다.

 

개국 초 그는 환선길, 이흔암 등의 반란을 진압하는 동시에 지방 호족들과의 혼인정책을 통해 왕권을 안정시켰는데 그 부인이 무려 29명이나 되었다. 숭불정책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935년 평화적으로 신라를 합병하였으며, 이듬해에는 항복해 온 견훤과 함께 신검의 후백제를 공격.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943년 권력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훈요십조를 남긴 뒤 그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의 행적은 본인의 침묵으로 인해 알려져 있지 않다. 혹자는 이 기간동안 금강산의 도인에게서 도인술을 배웠다고도 하고, 또 다른 자는 이 시기에 외국에 나가 몇 개의 국가를 건국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행적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그 모습이 드러난다.

 

 

영조에게는 본디 자식이 없었다. 그는 이를 걱정스레 여겨 신하들 몰래 민간인으로 변복한 뒤 절간에 가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기도를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오던 중  한 동굴에서 황금빛 한 줄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놀란 영조가 내관의 만류를 뿌리치고 동굴 안에 들어가니 한 사내가 좌정해 있는데 그 모습이 차마 인간의 것이 아닌지라 데려다 양자로 삼으려 했다. "어찌 한 국가의 중대사를 순간의 기분으로 결정하려 하십니까. 이는 본디 도리가 아닌즉 살펴 헤아리소서." 라며 사내가 거절하였으나 끝내 영조의 간청을 이기지 못해 하산하여 그의 양자가 되었다. 이가 곧 사도세자이다.

 

-왕께서 거동하실 제 숲에서 서기가 비추니 내관에게 명해 하늘에 제를 지내게 했다. 서기가 비춘 동굴에 들어가니 빙기옥골의 청년이 앉아있은즉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고." 물으니 사내가 "나는 최수종이오." 하더라. 그러자 왕께서 "앞으로 너의 이름은 이선이다." 라 하며 그를 양자로 삼았다. - 조선왕조실록 영조편

 

하지만 최수종은 이미 자신의 운명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가 선도에 힘쓰며 머무르던 절의 주지승에게 보낸 서찰에 보면

 

 '한비자의 십과편에 불청어충신하면 이독항기의하고 칙멸고명위인소지시야라 했거늘 결국 왕이 스스로 제 욕을 보았으니 내 목숨을 보전키가 어렵겠습니다.'


라 쓰인 글을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했다.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왕이 된 영조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씨앗을 후계자랍시고 데려오니 조정이 성할 날이 없었다. 심지어는 영조가 제 씨앗을 만들 능력이 없으니 어디 승려의 자식을 훔쳐온 것이 아니냐는 비방까지 나돌았다. 영조의 낯빛은 나날이 흐려졌고 끝내 제 양자인 수종에게 역모의 죄를 씌워 뒤주에 가두고 만다. 허나 혜경궁 홍씨의 기지로 뒤주엔 수종 대신 이미 죽은 다른 이의 시체가 들어가게 되고 수종은 다시 산 속으로 숨어버린다. 뒤주에 갇힌 것이 다른 사람일 게 탄로나면 제 아들(후일 정조)의 미래마저 위태로울 게 두려워 홍씨는 매일같이 뒤주로 가 사도세자에게 물을 준답시고 뒤주를 축축하게 적셨으며, 이로 인해 시체는 금세 부패하여 이미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한다.

 
함경도 인근으로 숨어든 그는 이름을 이제마로 고친 뒤 한 도인을 만나 의술을 배우게 된다. 스승이 죽자 진해현감으로 재직. 꾸준히 독학으로 의술에 정진하던 중 길을 걷다 사람들의 걷는 품세나 그 몸집, 버릇 등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독자적인 사상의학 체계를 성립한다. 최문환의 반란을 평정하기도 하여 군수로 추천되기도 하였으나 옛 일이 알려질까 두려워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둔. 곧 자신의 의학을 집대성한 동의수세보감을 저술하였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 참전하기도 하였으며,  90년대 초반까는 항공기 조종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이 17대 대통령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정치에 뜻을 두게 된다.

"내 이미 권력의 오물을 몇 번이나 경험해 봤기에 가급적이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다. 이승만으로부터 시작해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그 압제 속에서도 나는 침묵했느니. 이유는 언제고간에 민(民)들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나라를 세울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허나 내 기대가 틀린 모양이다. 아직도 경찰은 시민의 지팡이가 아닌 권력자들의 몽둥이로 활동하고 있으며, 진실을 명확히 밝혀야 할 자들은 오히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든다. 아이와 노인들의 밥값을 떼어다 강바닥을 시멘트로 바르고 있으니 이 어찌 참담하다 아니하겠는가. 나는 무려 두 번이나 썩어빠진 나라를 뒤엎고 새 나라를 세운 바 있다. 나는 지금 다시 한 번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한다!" 

 

라고 선언. 최수종쇼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어진 대선에서 여당 후보를 27%표차로 누르며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니 그 동안 빈번하게 똥물로 위세척을 하던 국회 중신들이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더라.

 
현재 최수종은 배우 하희라를 아내로 두고 있으며, 일남일녀의 자식을 보았다.  

최수종傳 

 

完 

 

 

 

CNTV의 태조왕건 재방 보고 급 필모 검색해서 써본 글입니다. ㅋㅋ 

 

순서는 대조영,해신,태조 왕건,한중록,태양인 이제마,전우,파일럿,프레지던트...내용은 제 입맛대로 ㅋㅋ

 

이제 진짜 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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