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창 1승을 기념하는 세 개의 움짤

2011.08.10 03:09

산체 조회 수:3851



1.심수창 선수가 786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동안 18연패를 이어갔죠. 투수라는 포지션이 그렇습니다. 잘해도 패전을 먹을 수 있고, 못해도 승리를 챙길 수 있습니다. 어떤 선수가 18연패를 기록했다는 것에서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그 투수가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투수가 꽤나 실력이 좋은 선수라는 점입니다. 만약 정말 공을 못던지는 실력이 형편없는 투수가 있다면, 그는 절대 18연패를 기록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프로야구에서는요. 메이져리그였다면 진작에 마이너로 강등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나라 야구라고 해도 그런 선수는 2군에서 선수생명을 이어가거나 팀 사정에 따라 방출이 되거나 하지 결코 18번이나 패전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할 겁니다. 심수창 선수는 786일동안 패전투수가 되거나 노디시전을 기록하거나 승패와 관계없는 중간계투 보직을 소화하거나 했지만, 항상 자신의 공을 던져왔습니다. 그러니까 18번 지고도 그 다음에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거죠. 오늘 피칭 내용에서 보았을 때에도 비록 여러번 주자를 출루시키고 적지 않은 실점 기회를 맞았지만, 볼넷을 줄이고 공격적인 피칭을 했기 때문에 승리투수의 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고 봅니다. 6과 1/3이닝을 소화하면서 92개의 투구수를 기록한 것은 나름 경제적인 투구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문성현 선수의 경기도 그렇고 일단 볼넷을 적게 주니 야구 볼맛이 납니다. 넥센 투수들이 지닌 최악의 습성이 볼넷이 많다는거였는데 적응이 잘 안되기도 하면서도 이제야 좀 야구다운 야구를 하는구나 싶어요.





2. H2는 야구만화를 가장한 연애만화입니다만, 그래도 야구 오타쿠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꽤 있죠. 제 입장에서 그런 잔재미를 많이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노다와 베터리를 이룬 투수들간의 대화였습니다. 주로 노다와 히로의 대화에서 그런 잔재미들이 많았지만, 저는 키네 빠돌이라서 노다와 키네의 대화를 특히 좋아합니다. 투수와 포수가 마운드에 서서 시덥지 않은 얘기를 나누는건데, 경기와 관련된 그 대화들에서 왠지 짠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슬라이더 사인이었어. 휘질 않은 거야. 너야말로 왜 미트를 움직이지 않은건데? 아마도 휘지 않을거 같았거든. 뭐 그런 것들이요. 만화니까 그런거지라며 생각해 보아도, 뭔가 간지가 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우영 캐스터가 신기한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고 말했을 때 저런 장면이 잡혔을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투수코치는 호투를 한 투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 투수의 공을 넘겨 받습니다. 여기까지는 매경기마다 볼 수 있는 장면이죠. 그런데 그 다음 코치는 마운드를 내려가려던 투수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넘겨받았던 공을 도로 던져줍니다. 투수코치와 투수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는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열혈버전, 개그버전, 심심한 버전등 여러가지 장르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마운드 근처에 공을 받으러 온 3루수가 웃으며 내려가는 투수와 하이파이브하는 장면에서 사실 대화의 내용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저런 장면을, 슈퍼스타 감사용 같은 영화나, H2 같은 만화에서 봤더라면, 유치하긴,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어넘겼을 겁니다. 저는 일관된 사람이라 저 장면을 보면서도 유치하긴,이라고 말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제 눈가가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던건, 저 장면이 만화나 영화가 아닌, 치열할 승부가 벌어지는 실제 현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제 생각에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는 오승환 선수나 정대현 선수 입니다. 그 이유는 오승환 선수나 정대현 선수가 던지는 공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기를 마무리 짓기에 적합하기도 하지만, 오승환이나 정대현의 성격이 마무리라는 보직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몰리든 삼진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든, 마운드에 선 오승환 선수의 표정에서는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없습니다.(오승환, 정대현 선수 모두 마운드 밖에서의 표정에서도 그들의 감정을 읽기 어렵긴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 팀의 야수들과 팬들은 한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거죠. 오승환 선수의 경우 경기를 마무리 지은 뒤 진갑용 포수와 함께 손벽을 마주치고 하늘로 손가락을 올리는 세레모니 만으로도 마무리의 간지는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카타르시스가 몰려오죠.


그런 의미에서 손승락은 조금 불안해 보일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표정에 잘 드러납니다. 삼진을 잡으면 펄쩍 뛸 정도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위기에 몰리면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죠. 하지만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손승락의 행동들은, 뭐랄까 투구 내용 이상의 감동을 전해주는 바가 있습니다. 칠테면 쳐보라는 표정과 기세로 공을 던지는데, 정말로 상대 타자가 그 공을 쳐서 블론세이브 상황에 몰리면 억장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상대방을 제압하고 동료의 승리를 지켜내는 날이면, 손승락이 던진 공보다도 그의 멋진 액션과 포효가 더 강렬한 전율로 팬들에게 기억되는거죠. 심수창을 가리키며 쭉 뻗은 손가락과 넓은 등뒤로 보이는 1이라는 숫자와 손승락이라는 세 글자. 자꾸봐도 질리지가 않네요.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 실제 경기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이 외에도 제가 움짤은 구하지 못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8회말 원아웃 상황에서 김민우-박병호 선수의 실책성 플레이 이후에 김시진 감독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면입니다. 이정훈 선수가 김주찬 선수를 잘 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시진 감독과 대화를 나눈 정민태 코치가 불펜에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고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죠. "저 아저씨들 진짜로 할 생각이야. 8월 9일날 사직 구장에서 코리안 시리즈를 할 작정이라고" 라고요. 이 팀은 감독도 만화나 영화를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습니다. 리그의 상황상, 롯데와 넥센이 붙었을 때 급한 쪽은 롯데죠. 4강 싸움이 점점 치열해지는 국면이라 한 게임이라도 놓칠 수 없는 상황이고요. 반면 넥센은 꼴찌만 안하면 다행이지만 전력이나 어수선한 팀 분위기상 그 조차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경기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승리에 대한 열망에서 어느 팀과 붙어도 넥센은 한참 지고 들어가는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꼴찌할 거 뻔히 알면서 경기를 챙겨보는 제 마음을 알았는지, 감독, 코칭스테프, 선수 할 거 없이 오늘은 이기고야만다라는 자세가 보였습니다. 마치 한국 시리즈 7차전인냥, 한 타자 상대하는데 있는 투수, 내일 쓸 투수 다 때려박고 한 번 해보자라고 덤비는 감독이나,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근성과 아쉬움이 묻어나는 선수들을 보면서, 이거 한 경기 이겨도, 선발 투수의 연패 끊어도 뭐 그게 대수라고 그걸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날지경이더라고요. 그렇게 어찌보면 별 거 아닌 일에 목숨거는 그들의 모습이 이 희망도 없는 야구를 보는 제 모습과 마찬가지로 한심해 보였습니다. 아마 저는 이 팀 구단주는 끝까지 좋아하지 못할 겁니다. 그 아저씨가 언제까지 야구판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몇 번이고 더 그 때문에 분노하고 그를 증오하겠죠. 그래도 말입니다, 이 팀을 떠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심할 수가 있냐고요. 내가 이 야구를 포기하지 못하고 보는 것처럼, 딱 그만큼 한심한 야구를 하는 이들을 보면서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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