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자려고 했는데, 결국은 쓰게 됩니다; 그래서 좀 횡설수설 할 수도 있습니다;

 

- 곽노현은 잘못했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엄청난 잘못을 해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잘못을 했다는 게 아니라, 공인으로서, 한 집단의 대표로서, 지지자들의 지지를 지켜줘야 할 입장으로서, 안이한 오판으로 여러가지 물의를 일으켰다는 것이 잘못했다는 겁니다, 아마 그가 정말 부패하고 노회한 정치인이라서 상대방에게 돈을 슬쩍 건냈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의 선의나 정당함은 어느 정도 다들 믿으시겠죠, 하지만 그 똑똑한 사람이 왜 오늘날의 사태를 예견 못했을까요? 돈을 건낸 사실이 정말 '선의'였으니까 아무 문제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을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곽노현은 엄청난 독불장군이거나, 굉장히 멍청한(심한 표현을 하자면)겁니다;

 

- 제가 생각하는 곽노현의 잘못은 여기까지입니다, 문제는 계속해 여러 분들이 지적하시듯이 사후 그의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저는 리플에서도 얘기했었지만,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때까지 철저하게 무시하고 그냥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검찰의 꼼수는 여러 전례처럼 있는대로 빵빵 터뜨리고 최대한 이 상황을 사골처럼 우려내서 수구쪽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곽노현을 두고 피 터지게 싸우면 싸울수록, 여론이 이로 인해 시끌시끌할 수록 상황은 저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갈겁니다, 이 일에 대해 별 관심 없는 대중들도 어쩔 수 없이 언론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의 '인상'은 가지게 되기 때문이죠(반복 주입의 무서움!),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시판의 글들을 보다 보면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생각이 많아집니다, 거듭 말하듯이, 저는 과도한 옹호('도덕적 결벽주의', '근본주의자')나 과도한 공격('당장 사퇴해', '이명박이나 박근혜였다면 어땠을까?'), 양쪽 모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과도한 옹호는 원칙론을 사장시킴으로서 앞으로 무자비한 '정치기계'가 될 길을 여는(그러므로서 이제 진흙탕 뻘밭에서 개처럼 싸워보자는), 막가파식 방법이고, 과도한 공격은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전례를 무기력하게 따름으로서 반복되는 저들의 공격에 이러한 대응밖에는 할 수 없다는 자기 위안이기 때문입니다, 더 문제는 양측이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당장 선거가 다음달 말입니다, 단일화요? 단일화는 커녕 예비후보들이 이 문제로 인해 먼저 만신창이가 되어 나올 판입니다; 누가 이 상황에서 연대와 단일화를 크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은 이 상황이 진보의 단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부정적입니다, 이보다 더 작은 몇 년전의 술자리 다툼 하나로도 얼마든지 주먹다짐을 할 수 있는 곳이 정치판입니다, 과연 선거의 연대에서 전혀 영향이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슬쩍 이 건을 뒤로 밀어놓고, 슬슬 보궐선거나, 박태규 건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안이야 어찌됐건 슬기로운 국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죠, 창의성 돋는 아이디어가 진보 진영에서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들이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빵 터뜨리는데, 저들보다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우리가 또 터뜨리지 못할 이유는 뭔가요? 물론 우리의 공세력은 저들보다 약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 그리고 덧붙여, 글을 보면서 지나가며 슬쩍 제기된 하나의 문제, "과연 정치와 도덕은 분리되어야 할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잡상도 한 번 써볼까 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도덕, 이라고 단언한다면 그것은 또 문제가 있는 말이겠지만, 적어도 정치인이 도덕을 가볍게 보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정치 하는 사람이 오히려 '부도덕'해져야 한다고 주장한 분이 근세 초기에 계시긴 했습니다, '마키아벨리'라고...(...) 그런데 그가 정말 그런 주장을 했을까요?

 

"그러므로 자기 지위를 보전하고자 하는 군주는 좋지 않은 짓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언제 그것이 필요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치 않은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악덕이 없이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는 그런 악덕의 오명(汚名)을 뒤집어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 고대에서는 정치는 곧 덕이자, 윤리, 완전함, 선과 동일어였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그런 관념을 완전히 깨부수게 됩니다, 그를 근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죠, 근대인인 우리는 많든 적든 그의 주장이 더 심정에 와닿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우리가 흔히 오해하듯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라, 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치에서 먼저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라는 것이지, 도덕을 우선시하지 말라, 라는 하나의 대원칙이지요, 또한 그의 정치적 고려라는 것이 특정 계급을 위한 정치 또한 아닙니다, 그는 후기로 갈수록 인민의 자유와 그들의 역량을 강조합니다, 군주 또한 거기에 의존해야 하고, 귀족집단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죠, 그가 강조하는 부도덕이나 잔인함은 어디까지나 공공선을 위한 것이지, 사적 이익을 위한 '독재'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 역설적으로 마키아벨리는 그 주장으로 인해, 정치와 도덕이 분리되지 않는 것임을 증명합니다, 즉 '도덕은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도덕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를 위한 도덕이 되어야 한다'라고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반대했던 것이 신정 국가 수립을 위한 기독교 윤리/도덕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로체나 이사야 벌린은 이러한 연관성을 예리하게 파악했습니다, 크로체는 맑스를 '프롤레타리아트의 마키아벨리'라고 평했을 정도로, 정치 영역에서 선을 위한 악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는 선구자라고 평했고, 이사야 벌린은 마키아벨리와 기독교 윤리의 충돌은 윤리들간의 충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공화국을 위해서, 인민을 위해서는 '영리하게 도덕적이어야 할 때를 선택하라'가 그의 메시지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 센델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저는 센델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진 않습니다만;), 현대 정치 철학에서 윤리학은 같이 가야만 하는 쌍동이 같은 학문입니다, 레이코브가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분류하는 보수와 진보의 도덕적 판단과 성향에 대한 분류도 흥미로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정치적 문제는 도덕적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아담 스미스'(원래 도덕철학 교수였던!)조차, '도덕감정론'에서 경제 행위가 '도덕'에서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경제학의 비극은 경제학이 도덕철학으로부터 유리되면서 시작되었다'-간디),

 

"도덕성과 종교를 완전히 배제하는 정치학은 얼마 못 가 스스로 환멸에 빠진다."(마이클 센델)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憐憫)과 동정심(同情心)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종류의 감정이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보고 흔히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를 들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아담 스미스)

 

- 즉, 모든 문제는 우리가 '도덕'에 과잉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을 필요한 곳에 적절히 적용하지 못하고, 오해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은 결코 필요할 때 버리고, 다시 취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천성 중 일부이고, 정치와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입니다, 다시 한 번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한다면, 도덕은 정치에서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될 어떤 것입니다, 곽노현건이 너무 억울하다고 해서, 너무 쉽게 그것을 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숙고해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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