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약을 굉장히 싫어해요. 가족들도 그래요. 약보다 자연식이, 수술 보다 운동과 충분한 휴식과 자기보살핌이 우월하다는 생각에 쩔어사는 가풍이에요. 온 집에 널려 있는 '자연치유' '식습관으로 암을 고친다' '명상, 운동'관련된 책들 하며, 가족 중 누가 아프기만 하면 '밥 제대로 안 먹고 운동 안 하고 제 때 안 자서 그런다'는 잔소리를 몇 십년 째 하시는 어머니도 그렇고. 그래서 어릴 때는 두통약을 먹는 것이 너무 싫어서 편두통이 심해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데도 약 안 먹고 버틴 적도 있어요.  두통약 속에 들은 물질이 통증 유발 과정 중 어딘가를 차단해서 통증이 사라진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 인위적인 물질로 내 몸과 정신(쓸데없는 통증이 왜 내 정신이라고 착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_-)을 조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멍청하지 않나요.

 

그러던 제가, 우울증에 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하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까지 몇 년 세월을 버리고 난 후 최종적으로 맞닥트리게 된 사실은, '나는 항우울제를 먹어야한다.'였어요. 이 단순한 사실을 소화하지 못해 다시 2~3년을 미적거렸어요. 치료에 대한 마음을 다잡을 겸 고통도 하소연할 겸 가족들에게 '나 정신과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꺼냈을 때 돌아온 반응은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았죠 '인생 망하려고 하냐.', '기록 남아서 취직이고 결혼이고 끝이다', '의지력으로 이겨내야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힘 내야지. 정신력으로 이겨내야하는건데 무슨 나약한 핑계야..'  '아예 정신병원에 넣어 주랴?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기타 등등. 사실 가족들의 반응도 이해가 되어요. 우울증 환자들도 똑같은 소리를 자신에게 해대지 않나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기 전까지,  저는 가족들 혹은 타인들의 험악한 반응을 핑계 삼아 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을 합리화하며 정신과 방문과 본격 치료를 미루었고, 이런 상황이 수 차례 반복되었죠. 물론, 그 때마다 제 상태는 더 악화되었어요.

 

하지만 결국 저는 정신과에 발을 들이게 되어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정말 견딜 수 없어 너무 고통스러워 제발 누가 어떻게 좀 해줘.'  우울증이 심할 때는 자살할 에너지도 없어요. (그래서 항우울제를 먹고 힘이 좀 나면 그 에너지로 자살하러 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요.) 그냥 살아서 원인도 모르는 심리적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게, 너무 괴로웠어요. 어느순간, 그 고통이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을 압도해버린거죠.

 

 하지만 그렇게 큰 마음 먹고 정신과를 찾긴 했어도, 제대로 정착하고 치료를 받기 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서너 군데 정도는 환자가 많아서 2주 후에나 상담할 수 있다는 통보가 오기도 했고 , 한 번은 예약시간 10분 후 도착했더니 의사선생님이 퇴근해버리셔서, 그 배신감에(지금 생각하면 실체도 없는 배신감이죠.) 발을 끊기도 하고,  어디 의사선생님은 제대로 된 진단도 안 내리시기에 그만 가고, 어느 분은 제 상태가 굉장히 심각한걸 보시더니 며칠 후 진료 없는 날 꼭 한번 더 오라셔서 (자살하기 일보 직전 상태로 보이셨던 듯..)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어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으셔서, 병원 문 앞에 찌그러져 기다리다가 웬지 처량하고 울컥한 생각에 마음의 문을 다시 닫기도 하고. 다사다난했어요. 저 말고도 정신과를 찾기 시작하신 환자분 중 이곳 저곳 다양한 병원을 다니시며 사연 많으신 분 참 많으실거에요.

 

이건, 의사의 문제도 없지 않았겠지만 (오직 제 문제라고 하기에는, 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맡기 껄끄러워하는 뉘앙스를 자주 느꼈어요.) 결국 제 문제가 결정적이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과로 발을 돌리긴 했지만, 결국 '정신과 약'을 삼키는 한이 있더라도 꼭 치료받겠다는 굳은 결심은 그때까지도 전혀 없었던거죠.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내가 의지력만 발휘해서, 힘내서 정신차리고 일어선다면 이깟 우울증 따위는 사라질텐데. 현실에서 제대로 못해내는 나약한 인성을 고칠 생각 않고, 병 핑계 대며 회피하면 안되는데. 정신과 약 따위에 의지하게 되면, 내 이력에는 빨간 줄이 그어지고 내 인생 끝나는 건데. 정신병자 되는 거야!!' 이런 식의 생각이 부글부글 끓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아마 그 병원들을 계속 다녔다 한들, 먹으라는 약 중간에 내다 버리고,  하라는 대로 안 하고 툭 하면 약속 어기고 이것저것 핑계 대며 순순히 치료에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더군요. 실제로 치료에 꾸준히 응하는 정신과 환지 비율은 상당히 낮은가 봐요.

 

그러던 제가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순순히 치료에 응하게 된 건, 세 가지 조건 때문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그리고 제 인생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뿌리째 뽑히게 생긴 절체절명의 위기. 결국 눈 앞에서 '누군가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계속 보며 큰 충격을 받은 후에야, 더불어 사회적으로 사망하기 일보 직전이라 앞으로 내 이력에 빨간줄이 그어지더라도 지금 살기부터 해야겠다는 코너에 몰리고 나서야, 그까짓 약이든 뭐든 삼켜주겠다는 마음이 겨우 생기게 된 거에요.

 

 하지만 치료에 진지하게 임하는데 저 두 가지보다 더 중요했던 건, 우울증이 '뇌에 병리적 이상이 생기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어요. 즉 우울증에 걸린 나에게 어떤 도덕성, 즉 내가 쓰레기라서, 내가 못나고 쓸모없어서, 의지력이 약하고 게으르기 때문이지 무슨 병 핑계는.. 하는 식의 자학이나 도덕적 폄하 따위를 부여하지 않고,  우울증은 단순한 '병'이라는 사실, 내 잘못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고, 내가 병에 걸렸기에 이런 상황에 떨어진 것이고, 이 병의 치유는 '현재' 내 의지력, 정신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으며, 다시 한번, 다리가 부러지거나 위에 구멍이 나는 것과 같이 내 뇌에 문제가 생긴 '병'을 내가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2.

 

우울증 환자들, 그리고 우울증 기미를 보이는 사람들은, 우울의 증세를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목적의식이 없다, 희망이 없다, 게으르다, 움직이기 싫다, 의지박약이다, 작심삼일 대장이다, 충동적이다, 자기조절능력이 약하다, 열정이 없다, 수면이나 식습관 등 아주 간단한 것도 제어를 못 한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한 가지에 오래 집중을 못한다, 정신 에너지가 딸린다, 감정기복이 심하다, 지나치게 민감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한 사건에 나만 크게 상처을 받는데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다, 너무 예민하다, 대인관계능력이 떨어진다, 사람과 잘 사귀는 능력이 없다, 사람과 교류하는 것도 힘들다, 솔직히 사람들이 싫다, 사회생활이 힘들다, 사는 게 힘들다, 나는 왜 이러지 나는 구제불능인가, 세상은 왜 이렇게 힘들까 나만 한심해 남들은 다 잘 사는데, 난 쓰레기야 죽어야하는거 아닐까 등등. 

 

그런데, 이런 증상들이 그 사람 본래의 성격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어요. 우선 상태가 안 좋으면(본인이 알아요. 언제 안 좋은지.) 저런 성향이 심해지고, 상태가 좋으면 저런 성향들이 약해져요. 그리고 항우울제의 효과를 크게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약을 먹고 효과가 크게 나서 우울증이 치료되기 시작하면, 저런 성향들이 대폭 사라지거나 혀저하게 약화되는 경우가 있어요.  또 어릴 때, 그러니까 우울증 삽화로 의심되는 침울한 시기 전의 성격과, 그 후 지금의 성격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다를거에요.  '어릴 때는 친한 애들이랑 잘 놀고 부모님과도 잘 지냈는데,  왕따 한 번 당하고 나서, 혹은 취직 잘 못하고 빌빌거리고 나서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고 세상이 무서워졌다.',  '중고등학교 때는 시험공부 할 때도 실패에 대한 부담감 없이 집중해서 공부 할 수 있었는데, 시험,취업에 실패하고/애인과 헤어지고 불면과 폭식을 겪고 난 후 부터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려 해도 집중도 안 되고 떨어질 것 같아  불안하고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원래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기는 했어도 세상이 증오스럽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살 충동이 심해졌다.' 등등. 혹여, 이렇게 명확하지 않아도, 우울증 첫 번째 삽화가 뇌를 파괴하기(안 좋은 사건이 생기고 크게 침울해진 시기를 겪기) 전과 후의 성격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을거에요. 이 때, 나중의 성격이 본인의 원래 성격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 안 드시나요. 나중 성향들은, 어떤 사건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계기로 뒤틀린 나의 증상들이지, 타고난 기질과 성격은 아니라고 말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특히나 좋은 상황이나 약물치료 등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성향이라면 더더욱이요.

 

그런데, 우울한 상태의 사람들은 그 상태가 너무 익숙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해서 지금 상태가 병적이라는 것을 알기 힘들어요. 간혹 어떤 계기로 인지하게 되더라도, 옆에서 그 사실을 끊임없이 리마인드 시켜주지 않으면  '병 핑계는 무슨, 난 원래 쓰레기야 내가 못나서 그래 살 가치가 없어.'하는 우울증 특유의 어두컴컴한 생각들에 다시 빠져들지요. (마치 개미들이 개미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 버둥거려도 자꾸 미끄러지고 미끄러져서 결국 잡아먹히는 것 같아요. 누가 끌어내주지 않으면, 혼자 힘으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하지만 아니거든요. 원래부터 본인 성격이 그렇지는 않았어요. 냉정하게 판단해 줄 수 있는 지인을 앞에 두고 지금 나의 상태와 어릴 때 나의 상태를 하나 하나 비교하며 종이에 써나가보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어요. 지금 이런 이상한 성향들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에요. 단지 병의 증상들일 뿐.

 

그러니까, 지금 이 '의지박약하고 목적의식없고 노력하지도 않는 쓰레기같은' 증상들은 내 성격이나 나의 본래 인성이 아니며, 따라서 '나의 것'이 아니고, 단지 난데없이 침입한 병의 잔해들이에요. 그리고 이런 손상들을 '약'으로 혹은 심리치료로 고친다는 것이, 내 인성이나 나의 정신을 손대는 것이 아니에요. 병의 증세는, '나의 인격'이 아니에요. 단지 내 옆에 재수없게 들러붙어있는 악성종양 같은 녀석들일 뿐.

 

그런데 왜 그렇게 소중히 하죠. 그마저도 '나의 것'이라 놓기 싫으신가요.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그마저도 '나의 정신'이니까. 치료를 머뭇거리며 그 오랜 시간을 허비한 제 모습이 딱 그랬어요. 약을 먹으면 내 정신을 인성을 외부에서 무언가가 조작 당하는 것 같아서, 그 불쾌감에, 죽도록 약을 거부했어요. 그래서 불교에서도, 또 자기계발강사 중 누군가도 그러더라고요. 무언가를 놓고 싶으면 그 앞에 '나의' 라는 단어를 붙이지 말라고. '나'라는 단어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있어서, 그 단어가 붙으면 어떤 도전과 고난에도 그것을 지키려 할 것이라고. 우울증의 증세들에 '나의 (의지박약한) 성격. 나의 (쓰레기 같은) 인성, 내 (나약한) 정신'을 붙여도, 우리의 뇌는 ( ) 속은 보지 않아요. 연인이 떠나가고 학업과 커리어가 망가지고 인생이 쓰러져가는 한이 있어도, 그 '나의' 무엇을 지키려 하겠죠. 이제 놓으세요. 우울증의 증세는 '내' 성격, '내' 인성', '내' 정신상태가 아니에요. 단지 외부의 '병'이 일으킨, 악성 증세에요.

 

 

 

3.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 해도, 눈에 확 보이는 증거가 없으니까 피부로 와 닿지 않았어요. 우울증이 뇌의 병이라는 사실. 그저 머리로만 이해하며 밍기적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우울증에 반대한다> (피터 D. 크레이머 지음. 플래닛 출판)는 책을 필두로, 우울증에 대한 의학계의 발견을 소개하는 대중서들을 읽게 되었죠. (여기에 이 책의 한 챕터를 부분발췌해서 올린 적도 있을거에요.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being&search_target=nick_name&page=3&document_srl=1758295 )

 

이 책은, 우울증의 뇌 이상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세로토닌 부족' 등으로 알고 있었던 수준을 훨씬 넘어선, 뇌의 특정 부위가 파괴되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우울증 환자의 뇌는 전전두엽피질의 두께와 세포 크기도 감소하였으며, 특히 전전두엽의 아교세포 (뇌에는 실제 뇌 세포 역할을 하는 뉴런과, 뉴런을 지지하고 구조를 지탱하는 등 보조기능을 하는 아교세포가 있어요.)가 괴사하였고, 해마 (기억 전반, 특히 강력한 감정과 결합된 기억 처리, 공간인지, 그리고 스트레스 반응의 조절, 즉 스위치 역할.)의 크기가 보통 사람보다 현저히 (8~20%까지) 줄어들어 있다는거죠. 그러니까 우울증 환자의 뇌를 해당분야에 숙련된 과학자가 관찰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거나 '우울해죽겠어요'하는 환자의 증언을 듣지 않았더라도,  이 뇌의 주인은 우울증에 걸렸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대요. 뇌의 특정 부위들에 현저한 손상이 발생했으니까. 그리고 이런 손상 정도는 우울증 삽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치료하지 않고 버려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심해지고, 우울증 삽화가 지나가고 난 후에도 그 때 입은 손상은 복구되지 않고 지속되는 특징을 보였대요. 또 우울증 삽화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뇌의 손상이 심해지면, 그 손상된 뇌 상태 때문에 다음 우울증 재발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다음 삽화 때 뇌 손상이 더 심해지고, 다시 재발 우려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진행성 질병의 성격을 보이고요.

 

재미있는 건, 전전두엽과 해마는 인간의 뇌 중에서 인간 정신활동의 고등기능(단기 장기 기억, 미래에 대한 추론, 결과를 예측하고 현재 활동을 조절함, 도덕적 판단을 내림, 최선 차선 차악 최악 등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함, 감정과 밀접한 감정과 경험과 사건을 처리, 스트레스 사건에 대한 반응을 조절 기타 등등.) 을 담당하는 부위임과 동시에, '뇌세포가 다시 생기는' 부위로 유명하다는 사실이에요. 근래 뇌과학자들은 인간 뇌의 뇌세포는 죽을 때 까지 새로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활발한 뇌세포 생성이 이루어지는 곳이 해마와, 전전두엽이래요. 그런데 우울증 환자들은, 스트레스반응의 정도를 조절하는 능력을 가진 해마의 크기가 줄어든 영향 때문이었는지, 혹 다른 영향 때문인지 스트레스에 타인보다 과도하게 반응하여, 덕분에 과하게 분비된 스트레스호르몬으로부터 뇌세포를 방어하지 못하여 뇌세포 괴사를 방치하는 등 스트레스에 대한 뇌의 자체 방어능력을 상실한 상태인거죠.

 

이 '방어능력'상실에 세로토닌도 일정부분 관련이 있어요. 요새 주로 먹는 SSRI 항우울제가 타킷으로 삼는 세로토닌의 경우,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해요. 웰빙과 행복, 평화의 전령사로 흔히 알려진 세로토닌이 뇌에서 하는 주된 역할은, 거칠게 비유하자면 뇌세포의 무분별한 파괴를 미연에 막는 '경찰'과 같대요. 스트레스 상황이 와서 몸과 뇌 속에 폭동과 같은 반응이 일어났을 때, 세로토닌이 뇌의 구석구석을 지키고 있으면 파국(뇌의 심각한 손상)은 오지 않아요. 하지만 세로토닌이 제 기능을 못 해서 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스트레스 상황에 과민반응 (사소한 것에도 죽을 것 같이 반응하는 우울증 환자들 - 우리들-을 생각해보세요.)한 몸과 뇌는 뇌 속에 폭동을 가져오고, 경찰이 없는 무법천지 상황에서 이 폭동분자들은 뇌세포 - 예를들어 전전두엽의 아교세포나 해마의 뉴런들-를 신나게 죽여버리지요. 그리고 우울증 환자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뇌 속의 든든한 경찰이자 웰빙-행복-평화지원군인 세로토닌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요. '왜 그런가'에 대한 한가지 대답으로, 한 때 유명했던 5-HTT 유전자 (세로토닌을, 학계에서는 5-HT라 줄여 말해요. 이 세로토닌을 운반하는 단백질과 관계된 유전자가 5-HTT에요.)를 이야기 할 수도 있겠죠. 이 유전자는 긴 것과 짧은 것이 있는데, 긴 유전자를 두 개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긴 것 짧은 것을 가지고 사람이, 그 보다 짧은 것 두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져간대요. 그러니까 우리 뇌 속의 세로토닌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태어날 때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일 가능성도 어느정도 있는거죠.  중요한건 해마의 크기 변화나 세로토닌 기능 이상, 그리고 또 다른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우울증 환자의 뇌는 스트레스 등 외부 공격을 방어할 능력을 상실했다는거에요.

 

또 우울증환자의 뇌는, <운동화 신은 뇌>의 박사님이 찬양하신 만능 탄성인자(어린 아가뉴런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비료를 담뿍 뿌려주는, 즉 세포재생에 전방위 효과를 보이는) BDNF의 혈중 수치도 확 떨어져있다고 해요. 이유는 전 모르겠지만 관찰된 바가 그렇다네요. BDNF 수치의 하락은 뇌세포의 복구력, 치유력, 탄성능력의 하락을 이야기하죠. 즉 우울증 환자는 전전두엽과 해마가 손상된 상태에서, 정상적이라면 가동해야 할 세포재생능력, 탄성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거죠.  그렇게 복구되지 못한 채 방치된 뇌의 상태는, 후에 또 다른 스트레스 사건에 과도한 반응을 일으키고, 그 과도한 반응 때문에 뇌는 더 손상을 입고, 그 손상은 복구되지 않은 채 방기되고, 이렇게 상처입은 뇌느 추가적인 우울증 삽화와 더 큰 뇌손상으로 연결되고...

 

즉 우울증 환자는 (뇌세포의) 손상을 막을 힘이 없고, 치유력(세포 재생능력, 탄성)이 결핍' 되어 있다., 피터 D.크레이머가 전하는, 우울증에 대한 요근래 학계 가설 중 하나에요. 작은 스트레스에 과도한 민감성을 보이고, 뇌의 손상에 대한 방어 능력이 부재하고, 신경재생, 탄성 능력이 떨어진 상황. 그래서 뇌의 전전두엽과 해마가 손상받고, 스트레스에 더 많이 고통받으며, 행복, 평화와는 거리가 먼 마음상태가 지속되고,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상태. 이 정도가,  제가 받아들인, 우울증이 '질병'이라는 증거에요. 더 많은 '우울증의 병리적 증거들'이 있겠죠. 하지만 저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우울증이 병이고, 빨리 치료해야 할 이유?  신기한건, 피터 크레이머가 지적했듯, 뇌의 저 상황은 우울증 환자인 제 현실생활 모습과 닮아있어요. 작은 일에 크게 상처받고, 사소한 좌절에 금방 주저앉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극복해 낼 힘이 없으며, 그 상황이 더 나쁜 상황을 유발하는. 그리고 그렇게 자학하고 좌절하고 죽고싶다를 외치는 순간 순간, 내 해마가 쪼그라들고, 전전두엽 세포가 죽어나가 구멍이 뻥뻥 뚤리고 있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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