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2011.09.18 22:51

Fled 조회 수:2349


전 서류상으로는 모태신앙의 카톨릭 신자예요.


근데 지속된 어머니의 강요로 무신론자가 되어버렸거든요.(이런 사람들 많죠ㅎㅎ 아 웃을 일이 아닌데)



머리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고 집에 인터넷이 들어왔던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와


대립이 시작됐어요. 사실 중학생 때가 한참 그럴 때잖아요. 기독교에 관련된 건 뭐든지 다 싫고,


블로그 같은데는 어찌나 기독교 까는 글이 많이 올라오는지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어요.


특히 디시인사이드 종교 갤러리 같은 게 생긴 후로는 카톨릭을 믿는 척조차 할 수가 없게 되었죠.


리처드 도킨스 책을 읽게 된 건 결정타였고요. 거의 복음 수준이었죠.


 


근데 수년간 폭발했다가 잦아들곤 했던 싸움은 거의 항상 저의 격렬한 반항 이후에 제가 굴복하는 형태로 끝났어요.


뭐 경제적 이유가 제일 컸네요. 꼬꼬마가 돈도 없이 집을 나갈 순 없잖아요. 대학교도 가야 되고.


제가 힙합을 좀 할줄 알았거나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면 스트리트로 뛰쳐나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됐을텐데...


라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건 망상에 불과하죠ㅠ


그래도 반항을 참 열심히 했는데요, 거의 패륜아 수준이었죠. 부모한테 욕을 했으니... 아무리 중학교 3학년이었다 쳐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고 저 스스로도 느낍니다만 그만큼 또 증오심도 컸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밤샘 기도회를 간다던가 학기 중인데도 새벽에 일어나서 전대사(모든 죄를 사해주는 고백성사라고 하데요)


를 위해 외지의 성당을 간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구요. (물론 제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지요. 아니 물어본 적이 없네요)


제가 성당에 가기 싫다는 의사를 한번이라도 피력하면 어머니가 제 방에 쳐들어왔고 3시간동안 말싸움을 해야 했어요.


제가 어릴때는 말싸움에서 졌지만 머리가 굵어질 수록 그런 일이 줄어들었죠. 어머니의 논리는 논리라고도 할 수 없는


감정 덩어리였으니까요. 뭐 어디 신앙이 논리로 가능한 건가요? 모든 이성을 발밑으로 깔아 뭉개야 할수 있는건데...



내추럴 본 문과생이라 과학을 30점 맞곤 하던 제가 빅뱅 이론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진화론, 성서무오론의 허점, 온갖 


말도 안되는 지식들(로마제국 기독교 때문에 멸망설, 아우구스티누스 로마제국 멸망 방치설;;;ㅋ 등등)을 틀린 줄 알면서도 


오로지 이기기 위해 갖다 붙이면서 싸우면 어머니는 결국 '그게 다 마귀들이 하는 소리다, 어디 교부께서 그런 짓을 하신단 말이냐


하느님도 모르는 썩을 것들' 이런 소리밖에 하질 못했어요. 지적설계론의 존재도 몰랐을 거라고 봐요. 근데 끝까지 제가 강경하게 


나가면 결국 마지막엔 울면서 히스테리를 부렸어요. 제가 지옥가는 꼴은 죽어도 못본다구요. 끔찍했죠. 새벽 1시에 모니터엔 


카트라이더 화면이 켜져 있고(일부러 어머니가 하는 말을 씹으면서 하고 있었던) 스피커에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옆에선 


어머니가 히스테리를 부리며 울고 있었어요.



한번은 그런 싸움 중에 제가 방문을 잠그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앉아 있으니까 마귀가 들렸다면서 집에 두꺼비집을 내려버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절 안방에 몰아넣고 기도를 하랬는데요, 그게 너무 싫어서 모기장을 뚫고 2층에서 뛰쳐나간 적도 있었죠.



그런 싸움은 제가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당연히 성당 문턱도 밟지 않았어요)


제가 군을 제대하고 집에서 알바를 하게 되면서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성적으로는 '아~ 내가 현실적으로 힘이 없으니 일단 믿는 척하고 후일을 도모하여야겠구나ㅠㅠ 잉잉'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게 그렇게 안되더군요.


저 성당 가면 항상 졸았어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만... 교회는 계속 앉아있으니까 졸려면 졸 수도 있는데


성당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데도 잤어요. 테크니컬하게요ㅋㅋ


신부님이 째려본 거 같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잤어요.



당연히 어머니가 또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고, 저는 저대로 성당에 가는게 토할 것 같아서 주보지만 챙겨오고


간 척을 한다거나 아니면 가서 20분만 앉아있다가 탈출한다거나 하는 스킬을 썼습니다만, 아니 수녀님이 어머니한테


밀고를 하지 뭐에요ㅠㅜ 이래도 되는 건가요. 개인의 신앙 문제인데.



이런 상태로 흐지부지하게 몇개월이 지나왔습니다만, 저는 더 이상 이런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끝장을 보기로 결심하고 어머니 생일이 지나면 두번 다시 성당에 가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 주일인 오늘이 왔는데... 어머니가 집을 나간다네요.


예전부터 이런 얘기를 종종 해 오던 어머니였는데 두달 전쯤에 거의 현실화될 뻔 하다가 어머니가 맘을 돌렸었는데


결국 오늘은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냉정한 인간이라 어머니를 붙잡거나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나갈려면 나가버려' 식으로 말이 나왔고 지금은 세금통장을 인수인계 받고 있어요.




...


그래서 마음이 너무 복잡해요



.


.


.




위에 적어놓은 어머니는 그냥 예수천당 불신지옥 식의 광신도 쯤으로 여겨지겠네요.


하지만 제 어머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헌신적인 어머니이고 상식이 있는 정상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


그저 종교를 신실하게, 광신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신실하게 믿는 것뿐이었지요.


그 방식이 이상한 교회아줌마들이 영적전쟁이랍시고 절 주위 금밟기 하면서 여리고 전쟁 놀이하듯이 조금 한국적인, 


엇나간 신념으로 자리 잡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어머니가 그런 행동을 보였던 적도 없고 신앙 자체는 


성당의 일반적인 평신도들과 비슷했어요. 뭐 어느 카톨릭 신자건 자식이 지 입으로 무신론자라 그러면 저런 반응을 보일 거에요.



또 집을 나가겠다고 하는게 단순히 제가 무신론자라 선언한 것 때문은 아니고 다른 원인들, 복잡한 집안 사정이 


복합적으로 어머니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일거구요.



어머니는 폭력적이고 알콜 중독자이며 정신병 환자인 아버지를 감내하면서, 종교적 이유로 이혼을 거부하면서 살아왔고 


또 저를 위해서 수십년간 지독한 가난을 참아내고 희생하면서 사신 분이에요.



또 그런 상황 때문에 저렇게 카톨릭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구요.


항상 이 땅의 약자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건 종교뿐이었으니까요.



근데 이놈의 냉정한 제 마음이 변하질 않네요.



저도 인간인지라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어머니의 모든 것인 천주교를 이해하려고 해봤는데요...


사실 제게 있어서도 천주교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어요. 


동네 아줌마들이 성당에서 서로 뒷다마까거나, 자기 가족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천주교를 원시 토테미즘의


형태로 끌어내려서 숭배하는 그런 세속적인 부분은 경멸스러웠지만



중학생 때 가 보았던 수도원의 수사들, 직접 빚어낸 포도주와 거기 찍어낸 성체, 스테인드 글라스를 깎던 늙은 수사,


순교자, 성인들의 삶,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자 프란체스코 같은 소설에서 가졌던 감동...



저런 분들과 같은 신념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저런 피상적인 이미지로 꺾일 마음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싸워오지도 않았을 거에요.


천주교에 대해서 알면 알 수록, 성서를 읽을 수록 구약에서 나타나는 신의 모순, 잔혹함, 광기, 인간이 짜맞추고 상상해낸


신의 모습에서 좌절이 더 컸지요. 아무리 무신론자라도 신약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결국 결론은 이런 식으로밖에 나지 않았어요.


'구약은 신의 파편에 불과하다.' '구약은 신약이라는 필터를 통해 읽어나가야 하나, 그렇다고 하여 구약의 모순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아 사실 저렇게 거창하게 고뇌한 건 아니구요.


그냥 솔직히 말해서 디시인사이드식 사고에 가까웠지요.



'아 아무리 커버를 쳐줄려고 해도 X같잖아. 공룡도 안나오고 완전 이상해. 까도 까도 끝이 없어. 양파야. 교황청 머리 아플듯'


'뭐여 결국 이스라엘 지방신을 지쟈스가 글로벌화 시킨거에 불과함. 지쟈스 천재'




...



마음이 복잡하기 이를데 없네요.


어머니의 신앙이 절대적인 것이듯, 제 신념도 장난은 아니에요.


보통 무신론자들이 냉소적인 편인데, 신앙인 아래에서 자라난 무신론자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보거든요.


그런 무신론자들도 신앙인 못지 않게 절박해요. 



하지만 결국 제가 이러는 건 어머니의 수십년 인생을 부정하는 배신이죠.


일단 제 생각은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며칠간 서로 쿨다운 기간을 가진 후에 다시 만나서 얘기해보자... 인데


모르겠네요. 어떻게 될지.



어찌됐건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모태신앙이란건 폭력적이기 짝이 없는 개념이고


아무리 본인이 신앙인일지라도 자녀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며 신앙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것 정도...



저도 참 독한 놈이죠. 우리 어머니 친구 아들딸들은 다 별 의문없이 잘만 성당 다니던데


어찌 저는 마귀가 들려서 무신론자가 되어버렸는지...



엉엉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ㅠㅜ


다시 무릎을 꿇어야 하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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