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4 11:22
자네, 아는가?
저 옆 아파트에 냄새만 맡아도 습관, 성격, 무의식까지 파악할 수 있던 남자가 있었더랬지.
앞에 앉은 상대의 냄새만 맡아도 이 사람이 식사 때 덤벙대는 성격이다, 인쇄업에 종사한다거나, 술집 마담과 바람을 피웠다 정도를 단번에, 그래 그 정도는... 냄새에 민감하고 추리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차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남자는 좀 더 특별했어. 그런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사람이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분석이 가능한, 신기하다못해 무섭기까지한 남자였지.
어느날부터인가 그 남자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더군.
이웃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언제부터인가 그 남자가 자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는거야.
자기 냄새를 맡고 또 맡고 킁킁킁킁... 그러길 며칠 반복하더니 씻고 또 씻더래.
아침에도 씻고 점심 때도 씻고 저녁 때도 씻더니 새벽이건 낮이건 가리지 않고 씻는 소리가 들렸다더군.
씻고 또 씻더래도 사람의 냄새, 체취라는 것이 어디 쉽게 지워지는 것이냐 말야. 금방 씻어도 땀은 또 나고, 금방 말려도 두피는 금세 끈끈해져오지. 안 그런가?
분석하고 분석하고 또 분석했겠지. 일부러 분석하지 않아도 그 남자의 코는 냄새가 맡아지면 즉각적으로 분석을 하게 되어있는 구조였다더군.
보통 사람들도 눈을 뜨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의 눈 코 입이 구별되지 않나.
이 사람이 누구? 아, 아는 사람이구나. Hi, How are you? I'm Fine. And You? 이렇게 줄줄 얘기가 진행되잖아.
그런 것처럼 그의 코 역시 냄새가 맡아지면 자연스럽게 분석이 진행되는 거였어.
솜으로 코를 틀어막고 코 앞에 진한 향수를 발라봐도 자기 몸에서 나오는 극소량의 체취마저 막을 순 없었네.
게다가 이미 대뇌에 '기억'된 자신의 냄새 정보는 지워지지 않았어.
그가 그렇게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냄새, 자신의 체취에 대한 분석량은 좀 더 방대해지는 것이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기존에 있던 그 냄새에 강박이라는 데이터가 추가되지 않았겠나.
'자신'의 냄새였으니 타인의 냄새를 통한 분석보다 좀 더 깊은 곳까지 파헤칠 수 있었을 테고 말야.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그 남자 집에서 더이상 씻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이상하게 여긴 이웃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지.
주민들 등쌀에 마지못해 경찰이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 남자는 죽어있었더래.
병원 영안실로 옮겨진 그 남자의 시체는 '알코올'로 깨끗이 닦여졌지. 깨끗하게, 아주 깨끗하게. 냄새가 나지 않게 말야.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73 | [1분소설] 나무 책상 | hybris | 2010.07.22 | 3766 |
272 | [만화] 고양이의중력/고양이를 다루는 기술 [3] [22] | 시소타기 | 2013.06.28 | 3758 |
271 | [1분소설] 청량리 백화점 [2] [32] | catgotmy | 2012.01.10 | 3732 |
270 | [웹툰] 인생은 라디오를 타고 흐른다 [2] [27] | 지명 | 2011.10.23 | 3731 |
269 | [만화] 불길해 [4] [1] | anxxxiety | 2010.11.29 | 3717 |
268 | [소설] 미미랜드 [26] | logo | 2013.10.04 | 3713 |
267 | [1분소설] 여름 방학 [5] [12] | catgotmy | 2011.03.24 | 3692 |
266 | [음악] 히치하이커 [5] | abneural | 2010.06.19 | 3683 |
265 | [웹툰] 안녕, 하이킥! [5] [21] | 지명 | 2012.04.17 | 3670 |
264 | [엽편] 프랑소와즈 사강 [2] | 세상에서가장못생긴아이 | 2010.10.18 | 3647 |
263 | [단편/음악] The Purity [2] [21] | dufla | 2010.10.05 | 3647 |
262 | [꽁트] 중풍의 맛 [2] | 셜록 | 2010.06.21 | 3641 |
261 | [1분소설] 방심했다 [15] | 최강검사 | 2010.08.06 | 3638 |
260 | [소설] 페이지터너 - 1 [10] | DaishiRomance | 2012.07.15 | 3615 |
259 | [단편 소설] 결행의 밤 | fleed | 2014.10.08 | 3574 |
258 | [영상] 1분 내외 초단편 5편 [2] [3] | 경험담 | 2013.10.30 | 3542 |
257 | [웹툰] 너는 슈퍼맨 -3- [2] [30] | 지명 | 2011.10.23 | 3509 |
256 | [그림] 팬아트들 (태양 외) [9] | 지명 | 2010.09.02 | 3505 |
255 | [1분소설] 노란 모기 [2] [9] | catgotmy | 2010.09.04 | 3486 |
254 | [우화] 성인식 [1] | 셜록 | 2010.06.21 | 3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