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8 23:30
악당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정말 지겹게 등장하는 클리셰 중 하나는 주인공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기회를 주다 결국 자기가 당한다는 거죠.
뭐. 후뢰시맨이 변신할 때 죽이면 끝날 것을 하는 우스개도 있지만, 악당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쓸데없이 관대한, 혹은 호기를 부리는 것을 보며 어이없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방금 그와 비슷한 심리가 제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희 집 환풍기에서 바퀴벌레가 나오길래 휴지로 잡아 변기에 쳐넣었는데 안간힘을 다해서 다시 기어올라오지 뭐예요.
별 생각없이 다시 휴지로 꾹 눌러서 버렸죠. 그런데 맙소사. 제가 돌아서는 순간 탈출해서 저를 앞지르는 겁니다.
그 때 느낀 감정은 뭐랄까. 주인공 목숨을 쥐고서 기회를 주려는 악당이 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기회를 주기로 했죠.
달아나는 바퀴를 붙잡은 저는 그를 변기에 넣고 소변용 물을 내렸어요. 이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고개를 내민다면 내 너를 인정하마. 네 삶을 허용하겠다.
결과는? 네. 살아남으셨어요. 물내린 변기에서 다시 올라오셨다고요. 졌어요. 조만간 죠의 아파트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