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진중권 - 한 우파의 관점

2011.10.12 17:06

김리벌 조회 수:3142

진중권의 글을 대강 훑어 보고 씁니다.

 

1.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황당한 점인데, 황우석과 곽노현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김어준이 양자를 옹호했다는 사실이 양자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패쓰.

 

2.

김어준 혹은 대중 일반이 양자를 옹호하는 태도에 일정한 공통점이 있을 수는 있겠죠. 그 점을 설득력 있게 분석한 글은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김어준이 황우석 옹호 안 했으면, 곽노현 옹호론을 어떻게 비판했을까.. 김어준이 삽질했던 경력은 저들을 위해서는 참 다행이구나.."

싶은 글들은 많이 봤습니다만.

 

3.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죠.

   김어준이 황우석 옹호 안 했다면 그의 곽노현 옹호가 더 타당해 지는가?

   (김어준의 황우석 옹호가 그의 곽노현 옹호의 타당성을 감소시키는가?)

   김어준이 곽노현 옹호 안 했다면 당신은 곽노현 옹호 안 할 것인가?

   김어준이 곽노현 사퇴 요구하고 진중권이 곽노현을 옹호했다면 곽노현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달라졌을 것인가?

   기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 누군가가 곽노현을 옹호하는 핵심적인 이유를 가려낼 수 있다고 봅니다.

 

4.

나꼼수 방송 이후에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소위 "진보 진영"의 판단력은 신통치 않은 것이라 간주할 수 있겠습니다.

 

5.

하지만

1) 곽노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김어준이 전혀 레퍼런스로 고려되지 않은 사람도 꽤 많을 것이고

2) 나꼼수의 영향을 받아서 태도를 결정한 사람 중에도 황우석, 심형래 등은 옹호하지 않았던 사람도 꽤 많을 것이고

3) 친 곽노현 진영 중에는 진보가 아닌 사람도 꽤 많을 것입니다.

 

6.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니 저에 대해서만 얘기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보수 우파이고, 곽노현에 대한 저의 입장은 나꼼수나 김어준, 그리고 진중권이 인용하고 있는 한상희나 조기숙 등과 전혀 무관합니다. 진보진영 전체가 곽노현 사퇴를 요구했다 하더라도 제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부 보수진영 - 예를 들어 민주당 지도부는 초기부터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압니다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7.

제 입장과 그 입장의 근거는 진중권이 재반론을 위해 인용한 한상희 등 소위 진보진영의 근거와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일단, 제 입장은 초기에 알려진 사실들을 근거로 판단했을 때, 곽노현이 법적 책임 뿐 아니라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입니다. 대가성이 있었는지 곽노현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알려진 사실들이 부족하다, 좀 더 기다려봐야 알 수 있겠다, 알려진 사실 만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입장도 충분히 존중하지만, 진보-보수를 떠나서 도덕적 단죄와 사퇴 요구만이 일관성 있는 정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는 것이죠.


송금을 승인-지시한 곽노현의 의도가 선의였는지 여부는 영원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죄 판결을 받아도 선의를 믿을 사람은 믿을 것이고, 무죄 판결을 받아도 곽노현이 파렴치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드러나는 사실-증거 여부에 따라서 이 중 어떤 믿음이 옳을지에 대해 명백한 판단이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상황이 될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의 도덕적 판단은 어쩌면 불가능하고, 그것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일단은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세력을 대표하는 이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구별하고 전자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법리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 많은 분들이 그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곽노현 본인이 정말 한치의 대가성도 없이 100% 선의로 송금을 지시했다면, 그는 반드시 무죄가 되어야 하는가, 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의 의도가 아무리 선했을지라도 법리가 그를 유죄로 단죄하면 그는, 100% 대가성으로 돈을 준 것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법과 도덕은 다릅니다. 진중권 등은 법이 그를 무죄라 하더라도 도덕은 그를 유죄라 할 수 있다고 정당하게 주장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법이 그를 유죄라 하더라도 도덕은 그를 무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 초기에 우리는 법이든 도덕이든 그를 어떻게 판단할 지 확신할 만큼 많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더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저의 입장은 저의 도덕적 판단 일반이 법원의 판결에 의존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도덕을 법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이번 사건에 한정하여) 법리가 그를 유죄로 판결할 만큼의 사실이 확보된다면, 그를 도덕적으로도 유죄로 판단하는 것이 그 반대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며,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법원의 유죄 판결을 통해 도덕적 단죄를 위한 일종의 충분조건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지, 그것이 필요조건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명박이나 황우석 등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그들을 도덕적으로 단죄하기 위한 충분조건을 구성합니다. 그것을 위해 법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쪽 저 쪽 진영을 바꾸고 도덕, , 유무죄를 바꿔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곽노현에 대한 제 입장은 전략적인 포지셔닝, 진영 논리가 아닙니다.

 

(전략적인 포지셔닝, 진영 논리가 나쁘다거나 제가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무균질의 객관인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사람도 전략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당파적인 사람입니다.)

 

대가성이 실제로 있었다면 검찰은 그것을 어렵지 않게 입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리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요. 말이 약간 꼬이는데, 하여간 법리는 입증이 별로 어렵지 않게 대가성을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렇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이 법리적 의미에서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실제로도 대가성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그리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래글의 댓글에 이건희-이학수 사례도 나오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필요하면 댓글에서 보충하기로 하겠습니다.)

 

8. anachronisms

제 기억이 맞다면, 나꼼수 방송 및 진중권이 나꼼수를 깐 시점은 차용증 같은 사실들이 알려지기 전입니다. 그 당시에는 곽노현 단죄론자들이 검찰이 허위로 흘린 것처럼 보이는 박명기 측의 진술??에 더 많이 의존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곽노현 성인 만들자고 박명기 악마 만든다는 반론들이 많았죠. 그런데 그 후로 박명기 쪽의 입장은 번복되었죠.

진중권은 그가 [사건의 재구성]에서 채택하고 있는 몇몇 정보들 - 차용증 뿐 아니라 곽노현의 최후진술문 등도 포함됩니다- 을 확보하기 전에 그의 입장을 정했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을 부정하는 논거는 될 수 없지만 제가 어떤 취지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실 분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9. 전략적인 고려

전략적인 고려, 예측 제시는 양쪽 다 열심히 했습니다.

예를 들어, http://djuna.cine21.com/xe/2785606

제가 보기에는 어느 쪽의 예측도 그리 확신할 만한 것은 못 되었습니다.

그리고 논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들이 도덕적 단죄를 위한 충분조건을 구성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입장이라면 

전략적 고려에 관한 논의와 그것을 섞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제 입장은 전략적 고려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실-증거-법리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며,

전략적 예측이든 사실이든 확정정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10. 충분조건과 똘레랑스

anachronisms을 떠나서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을 대충 훑어본 바로는 아직 도덕적 단죄를 위한 충분조건이 부족하다는 것이 제 느낌입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머핀탑님도 잘 설명해 주셨고요

나중에 다시 꼼꼼히 읽어보면 생각이 바뀔 수는 있겠습니다만.

특히 사건 초기에는 더 그랬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건 초기든, 지금 시점에서든 충분조건이 확보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의 가치관, 신념에 대해서도 저는 비교적 존중합니다. 개인의 도덕적 책임에 세력을 대표하는 이로서의 도의적 책임까지 결합해서 본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진중권이 비판 대상으로 하는 진보진영인사들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진중권이 그들의 텍스트를 정확하게 재기술했다면, 제가 읽기에도 그들은 답답한 사람들이네요. 따라서 그들에 대한 진중권의 투쟁은 큰 가치가 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달리 하는 모든 사람이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거나, 닭이라거나, 그의 판단이 모든 이슈를 해소하며 이견의 여지 없는 최종심을 제공한다고 자신한다면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11. 한 가지 더

이상의 제 얘기에는 동의하는 이들이 소수 있겠지만,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 얘기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든 보수든 본인이 몸담고 있는 세력의 입장에서 곽노현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존중하지만,

곽노현이 공직자인 개인으로서 끝까지 법리로 자신을 방어하겠다는 선택도 존중합니다.

그것이 곽노현의 이기심의 발로라 하더라도.

곽노현의 가장 일차적인 당파성은 곽노현 자신의 권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모든 당파성을 인정하면서 규칙에 따라 싸우고 시시비비를 가릴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즉 법이 허용하는 사익이 충분히 존중 받을 때 공익도 더 잘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냥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종교라고 해도 좋습니다. 종교가 뭐 꼭 나쁜 것인가요..

, 이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나 예정조화에 대한 믿음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타인이나 집단이 타인의 사익을 본인보다 더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어떤 믿음에 대한 회의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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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hand님의 댓글을 읽고 덧붙입니다.
제목과 본문의 우파, 보수 우파를 리버럴로 고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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