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5 01:36
[레드 스테이트]는 케빈 스미스의 첫 호러입니다. 이 두 조합만 보고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정작 조합이 장르적으로 의미있는 결합을 낼 거라고 믿는 사람은 소수였을 겁니다. 케빈 스미스는 도발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호러 장르와 그렇게 어울리는 편은 아니죠. 일단 말이 너무 많잖습니까.
본격 기독교 까는 영화입니다. 이미 스미스가 [도그마]에서 다루었던 영역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강도가 조금 셉니다. [도그마]는 그래도 유연한 편이어서 기독교 믿음의 많은 부분을 포용했지만, [레드 스테이트]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그냥 "이 광신자들아, 죽어라!"라고 외칩니다. 사실 그보다는 더 심한 소리를 합니다.
처음에 영화의 주인공들은 섹스에 환장한 세 명의 십대 남자애들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그룹 섹스 파트너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고 트레일러 파크를 찾는데, 이 광고 뒤에는 심지어 네오 나치들도 가까이 하지 않는 기독교 광신자들이 있었단 말입니다. 이들은 동성애자들이나 그밖의 죄인들을 유인해 살해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중반에는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주류·담배·화기 단속국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이 영화의 또다른 축을 구성하죠. 엔드 크레딧을 보면 스미스는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을 '섹스', '종교', '정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는 이들 셋이 현대 미국을 움직이는 세 축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호러영화로서 [레드 스테이트]는 별로입니다. 우선 이 영화에는 그리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그들이 죽거나 다쳐도 별 동정심이 안 생깁니다. 호러팬들을 자극하는 신체손상이나 기타 호러 장면도 거의 없고요. 괴물로 나오는 기독교 광신도들은 무섭다기보다는 짜증이 납니다. 그 짜증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도 호러영화적인 재미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요.
풍자 코미디로서는 조금 더 잘 작동합니다. 하지만 전 스미스가 이런 식의 진지한 주제를 다룰 때는 필요 이상으로 뻣뻣해지는 것 같아요. 그의 언어 선택이 주제와 어긋나는 경우도 많고요. 영화의 악당인 기독교 신자들을 극단적인 광신자로 만든 것도 그렇게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악당들을 극단적인 괴물로 만들면 종교처럼 보편적인 현상을 비판할 때 오히려 대다수에게 알리바이를 주는 문제가 생기죠.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전 [레드 스테이트]에서 스미스가 택한 입장이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인공적이긴 했지만, 9.11 이후 미국 정부의 태도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연결시킨 건 의미 있었어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혐오스러운 괴물로 그리며 자극하려는 의도는 그냥 성공했고요. 제 취향이겠지만, 전 장르적 클라이맥스를 잘라내고 무심하게 나머지 상황을 설명하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애빈 쿠퍼 목사 일당에게 가한 형벌도 그 정도면 괜찮았고요. 호러 결말이 아니라 코미디 결말이지만 쿠퍼 같은 종자들에겐 호러 결말보다 코미디 결말이 더 아프겠죠. (11/10/15)
★★★
기타등등
오래간만에 본 존 굿맨. 얼굴 살이 많이 빠졌더군요.
감독: Kevin Smith, 출연: Michael Angarano, Nicholas Braun, Ronnie Connell, Michael Parks, Stephen Root, Kerry Bishé, Melissa Leo, John Goodman
IMDb http://www.imdb.com/title/tt087388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2981
2011.10.1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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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할 때 오히려 대다수에게 알리바이를 주는 문제가 생기죠.
→명료한 분석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