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바낭] 시장선거 얘기

2011.10.15 12:30

좋은사람 조회 수:1152

출근길 스맛폰으로 밤새 올라온 듀게 글을 읽다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역시 정책과 공약이 실종된 것 같다는 글을 봤습니다.

메니페스토, 정책대결, 공약검증. 매번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언론은 매번 실종됐다고 떠들지만 언론이 실종시키는 주제이기도 하죠.

주요 언론에서 박원순 변호사와 나경원 후보의 공약들을 꼼꼼하게 비교-검증하는 특집기사 같은 거 낸 데 있습니까?

만날 나오는 게 이쪽 캠프의 의혹제기-저쪽 캠프의 반박 이딴 거나 방송하고 써대죠. 언론이 정책대결 실종됐다고 하는 건 제 얼굴에 침뱉기에요.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갑자기 생긴 겁니다. 8월 24일 주민투표부터 10월 26일 보궐선거일까지 딱 2달이 주어졌죠. 

박원순 변호사든 나경원 의원이든 그 콩 구워먹는 시간동안 공약이고 정책이고 제대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서울시장이 일생일대의 꿈이라 밤낮으로 그 연구만 하고 살았던 사람들도 아니고 말입니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ANTI의 프레임이 더 크게 작동하는 선거입니다. 박변 캠프에서는 그걸 강조했어야 해요.

네거티브하라는 게 아니라 ANTI요.

이 선거는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절대 반대'의 정책-고집이 실패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겁니다.

그러니까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는 '무상급식하는 서울시'가 되는 거죠.

(딴 거는 그냥 따라오는 거로 만들어야 해요. ANTI-오세훈의 서울시를 만들거다, MINI-오세훈 나경원을 뽑으면 안된다)

물론 이 판국에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을 업어야 하는 나경원 후보도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찬성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그 부분에서는 공격할 거리가 많잖아요. 절대 안 된다고 방방 뛰었던 증거들이 사방에 널려 있으니 말이에요.

그걸 공격하는 건 네거티브가 아니죠. 언론이 그렇게 원하는 정책 발표, 공약 검증이 되는 거죠.

"나경원은 시장을 위해서 그토록 강경하던 무상급식 반대를 접을 것인가? 너의 원칙은 뭐냐?" 라고 공격해야죠.

급하게 만들어진 후보들치고는 잘 하고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저는. 특히 박원순 캠프에서 아이디어 위주로 승부하는 건 좋은 일 같아요.

나경원 캠프는 보행자 흡연금지 공약 같은 걸 계속 내 줬으면 합니다. 잘 하고 있어요. 전 그게 이미 서울시 조례로 시행되고 있는지 몰랐는데, 덕분에 알았네요. ^^;;

 

각설하고,

솔직히 서울의 정책과 비전을 연구한 부분에는 독보적인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민주당 이계안 전 의원.

서울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 어떤 부분은 남기고 어떤 부분은 바꾸고에 관해서 현 정치권에서 이 분만큼 잘 아는 분은 없을 거에요.

2008년 이후로 그것만 연구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작년 선거에서도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이계안 전 의원은 하마평에는 오르지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넘의 본선 경쟁력에서 커다란 물음표를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이게 대한민국 선거가 가지는 한계고 현실입니다.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피어오르던 9월 초. '아름다운 가게'가 서울 시내 곳곳에 포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누구야?'하는 반응이 꽤 됐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박원순 변호사의 인지도는 이계안 전 의원과 그닥 차이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계안 전 의원에게는 없는 것이 박원순 변호사한테는 있었죠. 안철수.

5%를 오가던 박원순 변호사의 지지율을 50%까지 끌어올린 건 안철수 박사의 공입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안철수 박사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었어요.

안철수 박사는 서울의대를 나오고 컴퓨터를 쓰는 대한민국 국민이 대충이라도 아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박원순 변호사는 서울대는 입학만 했고 (그것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 그냥 시민운동하는 변호사 쯤으로밖에 모릅니다. (시민운동이 국민들한테 좋은 이미지도 아니에요)

안철수 박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렇게 원하는 반듯하고 잘 배우고 서민의 삶을 잘 알아줄 것 같은 지도자 상에 부합합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안철수의 그림자를 등에 업고 지지율과 인지도를 끌어올렸어요.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그림자 없는 박원순 변호사는 경쟁력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옵니다.

안철수의 결핍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관한 고민이 적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철수 박사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할 거라면 다른 걸 채웠어야죠.

옆에 선 문재인과 유시민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손학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냐도 의문이고요. 그림자를 지우려고 다른 그림자를 내세우는 건 안 좋아요.

그러니 다른 것, 이슈 파이팅에서의 큰 건이랄지 (나경원은 뭐다!를 세워놓고 그것만 줄창 때려대든지.. - 저같으면 '나경원=오세훈 확장판' 그래놓고 줄창 때려대겠습니다만 -)

그게 필요했는데, 아직까진 안 보여요.

 

아침에 어머니가 강남아줌마들 사이에 도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셨습니다.

요지는. '안철수는 한나라당이 파견한 트로이 목마다. 박원순이라는 듣보잡 변호사를 들쑤셔서 5% 남짓한 지지율을 50%까지 끌어올리고, 민주당 후보를 좌절시킨 후 나경원을 시장으로 만들려는 거대한 밑그림 아래서 움직이는 거다."라는 겁니다.

이 음모론의 포인트는 1. 강남아줌마들은 민주당 후보보다 박원순이 더 만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 안철수가 반한나라당 진영이라는 걸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는 겁니다. 여기서 박변 캠프는 죽어도 안철수를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모집단이 적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박원순을 후보로 만든 존재가 후보가 된 박원순에게 결핍됐다면 그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은 해야겠죠.

 

비오는 오후에 텅 빈 사무실에서 시간 때우느라 늘어놓은 잡담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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