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나바머의 선언문을 읽다 보면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넥스트의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물론 한국 한정에서의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이긴 합니다만, 잠시 일부분을 듣자면, "아직도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그대로 지금이 지난 시절보단 나아졌다고 믿는가. 무너진 백화점 끊겨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순 없다, 우리 모두 공범일 뿐.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굴 위한 진보인가"

 

- 한, 두 달 사이에 전세계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99%의 사람들이 이제 저 노래 가사와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굴 위한 진보인가?', 아직은 통일된 요구 사항도, 목적 의식도, 조직력도, 지속력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사람들은 드디어 문제 의식을 가지기시작했습니다, 68혁명 이후, 전세계가 기득권층에 맞서 하나의 행보를, 연대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최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기존 시스템이 이러한 파고를 맞이하여 또 한 번의 진화에 성공하여 새롭게 태어날지, 아니면 대혼란을 불러일으키며 좌초할지, 어느 쪽이든 그것은 우리 세대가 맞이할 시련이겠지요,

 

- 어쨌든, 계속해서 유나바머의 글을 읽어나가도록 하지요, 이번 단락, '자유의 본질'에서 그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정의 내리려는 거창한 목적을 세웁니다, 앞서 말했듯, 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당사자의 존재가 걸린 생과 사의 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입니다, 맑스식의 필터를 통해 설명하자면, '각자의 노동으로 각자의 삶을'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유명한 일화, 어느 신사가 맑스의 책을 읽고 질문하길, '그러면 구두는 누가 닦습니까?' 맑스가 특유의 비아냥투로 대답하길, '당신이 닦으쇼!' 했듯이 말입니다, 혹자는 그렇게 질문할 겁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잖습니까? 물론 누구는 유산으로 먹고 살고, 누구는 사회보장시스템으로 먹고 살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 먹을 건 우리가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에 삽니다", 하지만 유나바머에게 '자유'란 radical한 자유입니다, '헌법으로 보장된 몇 가지 권리'따위가 우리의 자유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1)에서 말했듯이, 그는 우리의 권력의지가 전적으로 보장된 사회를 원합니다, 일견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엇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의식하지 않고는 선택할 수 없는, 그런 거짓된 자유가 아니라, 모든 직간접적 힘으로부터 벗어난 그러한 자유,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그가 자신의 행위를 어느 정도 변명하는 듯한(혹은 증명?), 예시를 든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한번도 폭력을 저지르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선언문을 출판사에 보냈다고 가정해 보라. 출판사가 그것을 받아 주었겠는가. 설령 출판사가 그것을 받아 주어 출판해 주었다고 해도, 아마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심각한 논문을 읽기보다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오락 거리를 지켜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많은 독자들이 그것을 읽는다해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금방 자신들이 읽은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미디어가 그들에게 심어 놓은 엄청난 정보 자료들로 머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메세지를 오래도록 기억되게끔 깊은 인상을 남기며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 맥락은 다르지만, 6-70년대 수 많은 극좌 분파들이 빠져든 논리적 함정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이미 자본주의에 깊이 함몰된 대중은 혁명적 전위가 될 역량을 상실했다. 깊이 잠든 이들을 깨우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로, 충격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한때 서독과 이탈리아, 일본에서 맹위를 떨친 적군파들이 이러한 '혁명적 테러'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던 시절도 있었지요(결론은 비극으로 끝나버렸지만...), 어쨌든 그는 결코 좌익 운동가가 아니면서도, 좌익의 언어로 '부르주아의 경제적 자유'를 비판합니다, 혹은 '제한된 자유'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유나바머에 따르면, 자유에 대해 떠드는 어떤 이론적 자유도, 우리가 진정으로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 다음 맥락, '역사의 몇 가지 원칙'에서 그는 갑자기 헤겔적 언어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우발적인 사건들로 구성된 불규칙한 요소와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추세를 따라 구성된 규칙적 요소의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장기적 요소인데, 이 요소는 5가지 원칙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장기적 역사에서 작은 변화는 단기간에 그치며, 그것은 곧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둘째, 장기적 역사를 바꿀 변화는 모든 부분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체제이다. 셋째, 그 커다란 변화에 의해 일어날 변화의 결과는 미리 예측할 수 없다. 넷째, 새로운 종류의 사회는 애당초 설계대로 흘러가도록 기대할 수 없다. 다섯째,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 형태를 선택하지 않는다(사회는 사회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바, 그 진화 과정은 인간의 이성적 통제를 벗어나 있다). 그의 반대자들이 그를 '짜깁기의 달인'으로 평가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역시 여기서 우리는 헤겔의 그림자를 보는데, 잠시 헤겔을 인용해 봅시다, 헤겔사전의 설명을 보자면, "헤겔은 역사를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행위들이 축적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이라는 보편적 이념이 자기의 목적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이 목적 실현을 위한 방법을 헤겔은 이 "이성의 간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뭐, 어쨌든 유사하긴 합니다만, 유나바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헤겔과 다릅니다, 헤겔이 정신(이성)이 자신을 실현시키는 역사의 장구한 과정을 말하고자 했었다면, 유나바머는 이 원칙에 따라 사회 발전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에 따르면 1때문에 작은 개혁은 무산되며, 그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고, 2때문에 그 혁명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고, 3때문에 그것은 예상 외의 방식으로 실현되며, 4때문에 그 사회는 결코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다음, '산업-테크놀로지 사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에서 앞서 든 원칙들에 따라 그는 이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합니다, 사실 유나바머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것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 거대화한 사회를,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세계'를 설득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나 환경파괴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지만, 에너지소비를 줄이는 일은 망설입니다, 누구나 자본주의가 승자독식의 약육강식의 체제라는 것은 알지만, 자신이 그 승리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욕망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평화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서로 무기를 먼저 버리지는 못합니다, 뒤 이어 다음 단락, '자유의 제한은 산업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다'에서 그는 현대 사회가 어째서 개혁만으로 바뀔 수 없는지, 그것을 설명합니다, 그가 보기에 현대 사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모든 진보된 사회에서는 필요하고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이 단락에서 그는 본의 아니게, 현대 공동체주의자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 또한 제공합니다, '(...)기술이 발달한 사회는 생산이 아주 많은 사람들과 기계들의 협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작고 자치적인 공동체들로 쪼개어 질 수 없다.' 여담이지만, 제가 공동체주의의 많은 함의에 공감하면서도, 끝내 거기에 비판적인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거대 시스템을 외면한 공동체는, 결국 그 시스템의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빌리지'의 공동체가 아무리 자신들의 방식으로 잘 작동된다고 해도,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결국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외부로부터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대가(돈)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영화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국지적 변화가 거대한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미래를 위한 작은 불씨로 그치고 맙니다, 그렇다면 시스템은 어째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가? 유나바머에 의하면 시스템은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기술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필요'와 '요구'에 의해 작동되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시스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메카니즘에 가장 잘 영합하는 이데올로기가 '먹고사니즘'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분이 당선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 이쯤해서 반론이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너무 기술-시스템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 아닌가?', 유나바머 또한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합니다, 다음 단락, '기술의 나쁜 부분은 좋은 부분과 분리될 수 없다'를 보지요, 그는 현대의 모든 기술 진보가 다른 부분과 연결된, 통합된 시스템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가 말하는 예시는 의학의 발달에 따른 유전공학의 정부 통제입니다, 의학이 발달해 어떤 열성적 유전자를 계속해 퍼뜨려 나간다면 결국 유전공학에 의한 정부통제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인데, 썩 와닿는 예시는 아니라, 제가 한가지 예시를 더 추가한다면, 기술 발전에 의해 식량생산이 늘어 현대인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풍족한 식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그에 따라 비만이나, 성인병 증가 같은 부작용에 시달리게 되었지요(그에 따른 관리나 통제 또한 필요해집니다), 어쨌든 그에게 있어 기술-시스템의 문제는 총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유 VS 산업사회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는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 다음 단락, '기술은 자유를 향한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권력이다'가 바로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설명입니다, 유나바머는 결국 자유보다 기술이 더 강력한 사회적 권력이기 때문에, 자유는 결코 기술을 능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으로만 보이는 기술의 진보는 종종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옵니다, '(...)예를 들어 전화의 도입을 반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장점을 제공했지만 어떠한 단점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단락 59-76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결합된 모든 이러한 기술적 진보들은 보통 사람들의 운명이 더이상 그 자신이나 그의 이웃이나 친구의 손이 아닌 개인이 영향을 미칠 힘이 없는 정치가, 기업의 중역, 그리고 떨어진 익명의 기술자와 관료의 손에 매달려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같은 과정이 미래에도 계속된다. 유전 공학을 예로 들어보자. 거의 아무도, 유전적 질병을 제거하는 유전학 기술의 도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명백한 해도 주지 않고 많은 고통을 예방한다. 하지만 결합된 많은 수의 유전학적 개선은 인간을 우연(혹은 신, 혹은 당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무엇이든)의 자유로운 창조물 이 아니라 공학적 생산품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그게 왜 나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늘이 무너질까봐' 하는 걱정에 불과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좌우익을 막론하고 유나바머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인간의 미약한 시야를 능가하는 거시적 관점을 가진 자가 존재한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내려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인간입니다, 결국 많은 부분을 후손들에게, 역사의 판단에 맞겨버릴 수밖엔 없습니다, 그의 주장대로 기술 발전은 결국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는 괴물같은 시스템에 불과한 것인지? 꿈을 이루어주는 유토피아적 도구인 것인지? 하지만 그의 주장대로, 모든 사회적 변화는 결국 산업혁명 이후 기술 발전으로 촉발, 진행,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단락의 말미에서 그는 예언 혹은 바람일, 의미심장한 하나의 문장을 던집니다, 지금 현재 우리에게 가슴 깊이 와닿을,

 

"다음 수십년 동안 산업-기술 시스템은 경제, 환경 문제, 그리고 특히 인간의 행위(불화, 반란, 적의, 여러가지 사회적 심리적 난제들)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시스템이 겪게 될 고통이 그것을 붕괴시키기를 바란다. 그러한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성공한다면, 바로 그 때에는 자유를 향한 열망이 기술보다 더욱 강력함을 입증할 것이다."

 

- 이어지는 '단순한 사회문제조차도 우리는 제어할 수 없다'는 앞의 주장들과 이어지는 연속적 부분입니다, 아직도 누군가가 '개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체제가 단순한 사회문제들(환경파괴, 정치부패, 마약거래, 가정내폭력)조차 해결할 수 없었다고 조소합니다, 오히려 쉬운 길은, '혁명'입니다,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라는 다음 단락에서 그는 앞서 이뤄진 장황한 설명의 결론을 내립니다, 즉 '혁명하자!'입니다; "우리는 독자들이 자유와 테크놀로지를 화해시키는 방식으로는 체제가 개혁될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했기를 희망한다. 단 하나의 방법은 산업-테크놀로지 체제를 모조리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혁명을 의미한다. 이 혁명이 반드시 무장 봉기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의 본질을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 것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 사실 이 단순한 부분이 전후 장황한 이론적 부분보다, 더 설득력 있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결국 세대를 초월해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이유나, 동기, 배경은 달랐지만, 하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행동은 바로 이 부분, '사회의 본질을 바꾸어야 한다'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테판 에셀이 했던 말('분노하라'), "맞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흐름들을 샅샅이 구분한다는 것이 늘 쉬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의 상대는 이제 하나의 작은 특권 계층만이 아니다. 어느 작은 특권 계층의 행동쯤이야 우리가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상대는 광활한 세계이며, 그 세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더 강력한 상호연결성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은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찾아야 한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제발 좀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라고.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 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을 유나바머의 저 글 중간에 끼워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듯이, 우리는 이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해야만 하는 시기에 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지요, 이른바 '근대화' 시기가 인류 역사에서 시작된 이후로, 그 누구도 거기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술적 진보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삶의 질은 몇 배로 향상되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두 번의 큰 전쟁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뒤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유의미한 반성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술 발전과 거대 권력과 시스템의 결합은 우리를 옭죄기 시작했습니다, 장담하건데 이러한 전개 과정에 대한 반발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유나바머의 이 선언문은 그러한 과정에 있어 시작일 수도 있고, 작은 부분일 수도 있으며, 하나의 에피소드에 그칠지도 모르지만, 그 전개 과정에 속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겠지요, '도룡뇽과의 전쟁'에서 카렐 차페크는 볼프 마이네르트라는 가공의 인물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열에 달뜬 기획과 기술적 발전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죽음의 표식이 선명한 유기체의 뺨에 붙인 해열제 패치에 불과하다. 인류는 오늘날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절정의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내게 행복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데려와 달라. 만족한 계급을 하나라도 보여 달라. 아니면 존재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국가를 하나라도 찾아 달라! 이 모든 문명의 선물들 속에서, 영적, 물질적 가치가 크로이소스처럼 풍성하게 쏟아지는 와중에도, 우리 모두는 점점 더 불가항력적으로 덮쳐 오는 불확실성과 불안, 초조에 시달리고 있다."

 

- 인류가 존재했던 시기에는 언제나 있었던 비관론이나, 염세적 태도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환경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처음부터 유나바머가 일관적으로 강조했던 테제, '인류 역사상 처음 겪는 산업-테크놀로지 사회'라는 것이 곧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음 단락, '인간 행동의 통제'에서 다시 말하듯이, 과거에는 인간에게 억압을 가하는데도 일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개조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항우울제의 지급', 이것의 형태로 그는 감시기술의 발전, 오락 산업의 발전, 교육(체제 순응적인)을 꼽습니다, (1)에서 말했듯, 유나바머는 '소외, 자기 비하, 절망, 적대감, 반항, 공부 안 하는 아이들, 청소년 갱단, 불법 약물 복용, 강간, 어린이 학대, 기타 범죄, 무분별한 섹스, 10대 임신, 인구 증가, 정치적 부패, 인종 간의 증오, 민족 갈등, 극심한 이데올로기 투쟁(낙태 찬성론과 반대론 간의 투쟁 같은), 정치적 극단주의, 테러리즘, 사보타지, 반정부 단체들, 증오 집단'같은 모든 사회 붕괴 현상은 체제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삶의 조건들이 빚어낸 결과들입니다, 그가 전망하는 체제의 이에 대한 해결책은 심리적-생물학적 방법에 의한 인간 개조입니다, 물론 그것은 처음에는 부드러운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앞서 말했듯, 기술적 진보라는 이름 아래 - "우리는 새로운 테크놀로지 제품의 사용이 처음에는 선택 사항이었다 해도 반드시 선택 사항으로 남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지 않고는 개인이 기능을 수행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 'SF 쓰고 있네'라고 비웃는 분들이 있을까봐 유나바머는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이런 얘기가 모두 공상 과학 소설처럼 들린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제의 공상 과학 소설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산업 혁명은 인간의 환경과 생활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제 테크놀로지가 점점 더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적용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환경과 생활 양식이 그래 왔던 것처럼 인간 그 자체도 역시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 자, 이제 드디어 결론입니다, '갈림길에 선 인류'에서 그는 과감하게 예측합니다, '만약 체제가 빠른 시일 내에 인간 행동을 통제할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낸다면, 체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체제는 붕괴한다. 우리는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즉 40년에서 100년 사이에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이죠, 공교롭게도 그가 첫 테러를 시작한 이후, 40여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몸살에 대해 어떤 논평을 할까요? 그가 예측한 대로, 체제는 우리의 저항을 억누를 효과적 기술을 발견할까요,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고, 그의 예측은 그냥 다 헛소리에 불과했을까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여기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산업 체제의 인류의 노예화를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의 임무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1.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체제를 약화시킬 것. 2. 체제의 재구성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 테크놀로지와 산업 사회를 공격하는 이데올로기를 널리 확산시키고 증가시킬 것.

 

- 다음 단락, '인간의 고통' 이후로 그는 주로 이 체제 붕괴 시기에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지침에 대해 마치 예언가처럼 담담하게 써 나갑니다, 그에 따르면 '기술 숭배자'들의 저항 또한 격렬할 것이고, 탈선업화의 과정은 늘어난 인구 때문에 격할 것이기 때문에, 잔인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차피 붕괴할 체제를 앞당기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 될 수도 있고, 공허하고 목적도 없는 삶을 연장하느니 싸우다 죽는 편이 나을 것이며, 체제가 계속된다고 그 고통이 사라지리라는 보장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입니다, 그의 논지를 따라가면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과학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고 믿으며, 계속해 테크놀로지-산업 사회를 살아가던가, 큰 고통과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그러한 체제를 끝내던가, 다음 단락, '탈출'은 전자를 택한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몇 개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 유지되는 '산업사회'는 인간성이 완전히 상실된 고도의 통제사회이며, 극소수만이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해 경쟁이 유지되는 사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작업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사회... '이래도 이런 세상에 살래?'라는 그만의 귀여운 협박(...)인 것이죠;

 

- 그가 종종 위태롭고, 멀리 나아가며, 지나친 일반화와 폭력성에 의존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은 선언문을 따라 읽다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이 글의 마지막 결론을 '전략'과, '두 가지 테크놀로지', '좌익주의의 위험성'이라는 세 단락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그가 혼자만의 세계에서 놀지 않고,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기 바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식입니다, 우선 '전략'을 보죠, 그는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데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고자 합니다, 앞서 얘기했듯, 그가 원하는 것은 '혁명'이고 그 혁명은 이 사회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일, 그리고 이 체제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퍼뜨리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에 사례에 걸맞는 혁명으로 그는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을 예로 듭니다, 그가 말하는 새 사회의 이상은 순수한(wild) 자연입니다(그리고 이어지는 자연 찬양...), 그가 바라는 것은 다시 전산업사회의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산업과 기술이 사라지면서 발생할 불편함 따위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게임 따윈 집어치우고 밖에서 쟁기질을 합시다),

 

- 혁명가의 전략이라는 것이 쭉 이어지는데, 우리가 그의 사도가 될 것이 아니라면 귀 담아 들어야 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저항 운동에 있어 개인적으로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혁명은 전세계적 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혁명은 결코 국가별로는 수행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좌파에게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되는 단어, '연대', 성별, 계층, 나이, 국적을 떠나 전세계적으로 우리는 사고해야 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것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깨를 맞댈 때 더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밌는 것은 그가 NAFTA와 GATT같은 자유무역협정들을 지지하는 부분인데, 그 이유는 '세계 경제가 완전히 통합되어 어느 한 중요 국가의 붕괴가 모든 산업 국가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면 전 세계 차원에서 산업 체제를 무너뜨리는 일도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에(...),

 

- 목적을 위해 서슴 없이 폭탄을 보냈던 사람답게, 그는 체제를 공격하기 위해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인간상을 우리는 유나바머에게서 처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상 수 많은 혁명 시기와 혼란기에 그와 같은 강철 인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고, 목적을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은 여기서 내릴 문제가 아닙니다, 해묵은 논쟁지점이 있고,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질문하듯이, 이 모든 것은 결국 '악령'에 불과한 것인지... '혁명가는 국가, 특권 계급들, 소위 문명의 세계에 들어가며, 그는 오직 그것의 급속하고 총체적인 파괴를 초래할 목적으로서만 이 세계에 산다. 이 세계에 대해 여하한 동정도 가진다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다. 그는 이 세계의 어떠한 지위, 어떠한 신분, 또는 어떠한 인간을 제거함에 있어서도 주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는 동일한 혐오로 그것의 만인과 만물을 증오해야 한다. 그가 부모, 친구 또는 연인과 여하한 관계도 가진다면 모든 것은 더욱 나빠진다. 그가 이러한 관계들에 의해 동요된다면 그는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다.'라고 써 내려간 네차예프같은 사람들은? 결국 우리는 ...?처럼 의문부호를 붙일 수 밖에 없습니다,

 

- '두 가지 테크놀로지'에서 그는 역시 약간은 SF스런 전망을 내놓는데, '테크놀로지의 후퇴가 가능하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기술에 '소규모 테크놀로지'와 '조직 의존형 테크놀로지'가 있다고 말하고, 후자는 대규모 사회 조직이 있어야만 가능한 테크놀로지라고 말합니다(ex. 냉장고), 이것이 다시 복구되기 위해서는(대규모 산업 사회가 복구되기 위해서는), 500-1000년이 걸릴거라 예측하는데, 그 정도나 멋 훗날의 일은 훗날 생각할 일이라고 쏘쿨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재밌는 것은 그가 예측하는 '조직 의존형 테크놀로지'의 복구 기간이 몇몇 SF 소설에서 보여주는 문명 복구 기간과 얼추 비슷하다는 점입니다('리보위츠를 위한 찬송가'에서는 600년 정도), 핵전쟁 이후 문명이 소멸한 세계에서 문명이 복귀되기 위해서도 역시 어느 정도의 중앙집중적 사회적 조직이 필수적이죠,

 

- 또 하나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선언문을 쓰면서 구사하는 사상과 언어들은 전부 좌파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처음부터 시작하듯이 그는 분명하게 좌익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현대 정치 운동에 투신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녹색당은 좌익 정당이랑 놀지 마라!'(아하, 그래서 독일 녹색당은 기민당과 연정을...), (1)에서 언뜻 지나갔듯이, 그가 보기에 좌파주의 역시 근대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우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쌍동이에 불과합니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러한 주장은 역시 몇몇 탈근대 사상가들이 이미 주장한 바이기도 하지요, 재미있는 점은 현대 정치 사상 지형에서 그의 정치적 입장을 위치지으라면 급진 아나키스트 정도가 가장 알맞는 위치일 텐데, 그는 여기서 아나키스트 또한 작은 집단의 논리에서 권력과 테크놀로지를 추구할 뿐이라고 비판한다는 것입니다(내가 제일 잘 나가), 결론적으로 '니네도 똑같아'라는 좌파 일반에 대한 독설인데, 그러나 이것은 (1)에서 말했듯, 그가 보는 현실적 좌파 일반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도 그것을 의식하듯, 이렇게 덧붙입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좌파주의에 대해 당신들이 지껄인 얘기는 모두 쓸데없는 얘기다. 내가 아는 존과 제인은 모두 좌파들이지만 당신들이 말하는 전체주의적 성향 같은 것은 갖고 있지도 않다." 절대 다수의 좌파들이 선량한 사람들로서 타인의 가치관을 인정해야 한다는 진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압적인 수단을 사용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우리가 좌파주의에 대해 내린 평가는 모든 좌파 개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좌파주의가 지닌 일반적 성격에 해당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운동의 성격이 반드시 거기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적 점유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만약 좌파주의자들이 그의 가치에 공감하여, '반테크놀로지-반체제권력'이 된다면 자기 편으로 삼아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응?),

 

- 그리고 자기도 헷갈리는지,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좌파주의 논의는 한 가지 심각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좌파'라는 단어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오늘날 좌파주의는 수많은 운동으로 분열되어 있다. 물론 모든 운동이 좌파 운동은 아니다. 그리고 몇몇 운동들 (과격 환경주의 등)은 좌파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철저한 비좌파 유형의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바라건대 이들 비좌파들은 좌파와 협력하기에 앞서 좌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두어야할 것이다. 다양한 유형의 좌파들이 다양한 유형의 비좌파들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러니 어떤 개인이 좌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좌파주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일단 현재까지는 이 선언문에서 언급된 규정을 따른다. 우리가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충고는 누가 좌파인지를 판정할 때 자신의 판단을 따뜨라는 것뿐이다.' 

 

- 이렇게 우리는 길고 긴 어쩌면 쓸모 없어 보이는, 혹은 의미심장해 보이는 한 선언문 읽기를 끝냈습니다, 좌우익을 막론한 정치권 전체에 대한 강한 불신, 사회를 지배하는 테크놀로지-산업에 대한 증오, 급진적이고 과격한 해결책의 제시, 그리고 그것을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는 실현력, 비타협적인 논조, 그 사이에 언뜻언뜻 비치는 예리한 직감과 판단력,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것이 뒤섞여 있습니다, (1)에서도 말했지만, 판단은 각자의 몫, 그에게 전적으로 동조할 필요도,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혼란한 세상에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2011년 현재 그는 여전히 콜로라도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 마지막으로 그의 결언을 덧붙이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결언

  1. 이 선언문에는 수많은 부정확한 진술들이 담겨 있으며, 그런 진술들에는 어떻게든 단서 조항들과 유보 조항들을 함께 이야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진술 증 일부는 완전히 틀린 것일 수도 있다. 정보 부족으로 인해, 그리고 지면이 짧은 까닭에, 우리는 좀더 정확하게 우리의 주장을 공식화하지 못했고, 필요한 단서 조항을 빠짐 없이 글 속에 포함시키지도 못했다. 물론 이런 종류의 논의에서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직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그런 직관적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선언문이 그저 진실에 어느 정도 가까울 것이라는 정도밖에는 자신할수 없다.
  2. 그러나 별 차이는 없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그린 그림의 전체적 윤곽이 대체로 정확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우리가 자신할 수 없는 한 가지에 대해 언급하겠다. 우리는 현대적 형태의 좌파주의가 우리 시대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그리고 권력 과정의 붕괴로 인해 빚어진 병적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틀렸을 수도 있다. 자신들의 윤리관을 모든 사람에게 강제함으로써 권력 욕망을 층족하려고 하는 지나치게 사회화된 부류들은 분명히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열등감, 자기 비하, 무력감, 스스로는 피해자가 아니면서도 피해자들과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 등의 병적 심리가 운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현상은 오로지 현대 좌파주의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는 피해자가 아니면서 피해자들과 자신을 동일화하는 특성은 사실 19세기의 좌파주의와 초기 기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이다. 하지만 그런 운동들에서는 우리가 아는 한, 자기 비하와 같은 병적 증상들이 현재 좌파주의에서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물론 우리는 그 같은 현대 좌파주의 이전에는 그런 병적 증상을 지닌 운동이 결코 없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 문제에 대한 신중한 질문은 역사가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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