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꼽는 김수현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바로 일종의 딸각발이(?) 같은..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 자존심, 지조랄까요?

 

주요 인물은 성격이 안 좋을지언정 절대 비굴하거나, 치졸하거나,  구차하게 굴지는 않아요.

 

 

#1

 

<사랑과 야망>의 태수엄마 정애리는 태수에게는 늘 '언제 인간되냐' 며 호통을 치지요. 자식들에게도 지나치다 싶게 무뚝뚝하고, 묵묵히 노동에만 전념합니다.

 

그렇지만 동네 양아치이자 아버지를 죽게 만든 원수를 태수가 죽도록 패고 서울로 도망치자, 그를 찾아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무리에게 한 번만 봐달라고 매달리는 게 아니라 "내 새끼 잘했네"라고 일갈합니다.

 

 

#2

 

태수 엄마는 서울에 올라와 함바집으로 고생고생하며 돈을 벌죠. 계약기간이 끝나자 공사 책임자를 청요리집(!) 룸으로 불러 술을 한 잔 따라주며 "일이년만 더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그 남자는 '아주머니 참 고우세요'하며 은근 성상납(?) 비슷한 걸 요구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바로 술을 끼얹고 나오는 태수엄마.

 

#3

 

<사랑과 야망>의 미자는 극중 굉장히 불안정한 정신상태의 부서질 것 같은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적어도 몸팔아서 배역얻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극 중에서도 권력자의 파티에 가자는 하유미에게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하거나, 찝적거리는 유부남 선배를 떨어내는 장면이 몇 번 나와요.

 

#4

 

<청춘의 덫>의 심은하의 원맨쇼처럼 여겨지지만, 유호정도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죠. 특히 후반부에 심은하의 모든 사정을 알고도 자기 오빠가 심은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 알자, 모든 걸 묻어주고 외국으로 떠납니다.

 

#5

 

<내 남자의 여자>의 김희애는 자기 합리화의 화신이고,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죠. 하지만 적어도 자기 감정에는 충실합니다. 김상중을 사랑해서 뺏은거지 딴 뜻은 없죠. 돈이나 조건에만 관심이 많은 자신의 엄마(김영애)를 혐오합니다. 떠나가는 막판에도 김상중에게 1원 한 장 안받아가죠.

 

<불꽃>의 이영애도 다소 이해하기 힘든 감정선을 보이지만, 재벌인 차인표와 이혼하면서 위자료는 필요없다고 말하며 누가 물어보면 많이 받았다고 말하겠노라고 합니다.

(물론 위자료는 정당한 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이영애가 차인표를 사랑하지 않았고, 이혼의 책임이 자신에게 더 많다고 생각해서 이런 식으로 행동했겠죠.)

 

#6

 

<천일의 약속> 어제 방송에서 수애의 어린 시절 장면을 보면서 "역시 김수현의 인간형이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상황에서 여섯살 짜리가 라면을 훔쳐서 동생을 먹인들, 시청자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겁니다. 어린 수애는 잠시 고민하다, 가차없이 돌아서죠.

"저런게 올바른 인간이지" 라는 걸 설파하는 것 같았달까..

 

 

 

 

 

치매 진단을 내리는 의사 앞에서 "제 뇌가 호두속처럼 쪼그라들어 블라블라.."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죠.

일상생활에서 김수현 드라마 인물들같은 순발력으로 할 얘기를 120% 다 주고받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근 어떤 기사에서 체홉이나 셰익스피어 고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 이해가 가요. 칠순의 할매가 만들어낸, 문어체의 대사를 읊는 인물들이 올드할 수는 있지만, 대사는 어느 시점에서 빛을 발하고 어느 순간 마음을 움직입니다. 

 

 

 

 

김수현 월드의 인물들은 선하건 악하건 최소한 인간으로서 기본은 되어 있고, 그건 유치원생만도 못한 음모를 꾸미고 마지막회에서만 반성하는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바보가 되는) 인물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작가가 클래스가 다르다는 걸 증명한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아닌 TV드라마라는 점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하구요.

 

성인들 간에 사랑해서 키스하는 장면을 좀 길게 보여주는 게 뭐 크게 나쁜 일인가요.

오로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음해하고, 가책없이 고통에 빠뜨리는 걸  내내 보여주는 게 아이들 정서에도 더 나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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