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진중권에 대한 단상

2011.11.01 23:17

amenic 조회 수:4008

진중권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저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때문이었습니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특이한 제목에 이끌려(당시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조갑제씨의 연재물 '나의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한 제목이었죠)  사들고 왔는데 책날개에 적혀 있는 저자 소개도 아주 걸작이었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죠.

 

1963년 세포분열로 태어난 빨간 바이러스 진중권은 86년 서울대 미학과를 마치고 군 적화사업의 일환으로 입대해 병영에서 노태우 후보 낙선을 위한 선동사업을 벌이다 귀환한 뒤, 92년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미학강의>, <맑스레닌주의 미학원론>을 번역하고, 좌익현대화를 위해 컴퓨터 미학입문서 <예술 기호 정보>를 번역하고, 청소년을 위한 대중교양서 <미학 오딧세이>를 집필, 전교조 세포활동을 측면지원하고, <춤추는 죽음>으로 '죽음의 굿판'을 일으키는 등 좌익문화단체('노문연')의 간부로 이 사회에 '문화사회주의자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다가, 무너진 동구사회주의를 재건하라는 지하당의 명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온 이후, 베를린 한국 영사관 앞에서 열린 97년 노동자 총파업 지지시위에 참가하고, 혁명기지 강화를 위해 공화국 북반부에 군량미를 보내고, 교회 주일학교에 침투, 유아들 사이에 적색소조활동을 펴는 등, 일생을 세계적화의 외길로 걸어 왔다. 왜, 꼬와?

 

세상에 자신의 소개를 멀쩡한 책에 이렇게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책 내용도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포복절도할만하였죠. 물론 기성세대들은 진씨의 그런 글쓰기를 상당히 못 마땅하게 생각했죠. 하지만 유시민씨 같은 경우는(당시엔 정치 입문을 안 하고 책 저술과 100분토론 진행을 하고 있었죠) 이 책을 세기말의 걸작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유시민씨 역시 그 무렵에 박정희에 대한 비판서를 쓸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진중권씨의 책이 먼저 나온 것을 보고 이 주제 관련해서 이보다 더 잘 쓸수는 없겠다고 생각되어 포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진중권씨의 이름 석자가 잊혀질 무렵 그는 온라인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게 97 대선 무렵이었을거에요. 조선일보 사이트에 조선일보 독자마당이라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거기다 거의 매일 칼럼을 쓰면서 게시판을 완전히 누볐죠. 그한테 달라붙는 수 많은 조선일보 독자들을 홀홀단신으로 상대하면서요. 그 모습은 아마 이른바 황빠, 심빠 그리고 나꼼수빠를 상대하는 것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게 되실거에요. 그의 키보드 워리어적인 기질은 거기서부터 엿보였습니다. 스스로를 밤의 조선일보 편집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그 후 진중권씨의 책이 나올 때 마다 기억하고 사서 읽기는 하였지만 그의 존재는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저의 일이 상당히 바쁘기도 하고 늦은 학업을 다시 시작했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할겁니다. 그의 이름이 세간에 떠오른 건 제 기억에 황우석 박사 사건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진중권씨는 SBS전망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연일 황우석 박사를 비판하고 PD수첩을 지원하는 칼럼을 이 방송에서 쏟아 냈어요. 이 때부터 진중권씨의 발언 하나 하나는 그 자체로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게시판에서 티격 태격하는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다름이 없었고요. 그 뒤 2007년에 이른바 디워 사태가 있어고 2008년 촛불집회 때 진중권씨는 컬러TV를 진행하면서 일약 아이돌로 부상합니다. 이때부턴 진중권씨가 블로그로 한 마디 한 것은 바로 그 다음날 기사화되어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던 것이 있습니다. 진중권씨는 진보진영의 편이라는 착각말입니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가카는 오로지 가카 편인 것 처럼 진중권씨는 처음부터 누구의 편도 아니었어요. 항상 홀홀단신으로 비논리와 비이성을 대상으로 싸워왔지요. 민노당의 NL계열과도, 그리고 한때 절친했던 김규항씨와도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 그입니다. 진씨처럼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은 사람도 찾기가 힘들거에요. 그러니까 요 며칠 새에 불고 있는 나꼼수 논란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수 많은 트위터러들과 원색적으로 싸우는 그를 보니까 조독마에서 단신으로 싸우던 그가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진중권씨 팬들도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도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말이에요. 워낙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까 팩트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도 꽤 많이 있어요. 황우석 박사 사태 때도 이른바 황빠들의 광기를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하면서 이 이론을 정립한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를 레온 파이닝거로 이야기했고 인지부조화도 약간 틀리게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경제 분야에 약해서 그 분야 이야기를 할 땐 오류가 많다고 해요. 그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씨는 훗날 굉장히 탁월한 논객으로 기억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어요. 캐릭터도 대단히 특이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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