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희망이 사라지는 느낌

2011.11.03 02:54

산체 조회 수:2031

시즌이 끝나면서 야구판이 잠잠해 질 법도 한데, 인사이동과 관련하여 여러 소식이 쏟아지면서 야구판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건 감독 선임 소식들이죠. 선동렬 감독이 친정팀으로 돌아왔고 이만수 대행이 감독으로 승격되는 등, 시즌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령탑 교체와 함께 다음 시즌을 구상하려는 각 구단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한 요즘입니다.


감독 뿐만이 아니라 코치 인사와 관련해서도 재미있는 소식이 많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사건은 김무관 코치의 이적입니다. 이대호 다음으로 롯데 타선에서 상징적인 존재가 김무관 코치라고 생각했거든요.

선수들마다 영웅스윙한다고 선풍기질 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결국 그 영웅 스윙을 하던 선수들이 리그 최강의 타선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무관 코치의 이동은 어떤 식으로든 리그 판도에 변화를 줄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치아이 코치의 재계약도 꽤 재미있는 소식이었죠. 자신을 한국으로 불러온 선동렬 감독의 오퍼를 뿌리치고 삼성에 남기로 한 결정은 야구 팬들에게 여러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할 이야기는, 사실 해당 팀들 팬이 아니라면 별로 신경쓰시는 분이 없겠지만 정명원 코치의 이적에 관한 내용입니다.

넥센 히어로즈 서한규 코치의 페이스 북에 정명원 히어로즈 2군 투수 코치가 두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송별회를 했다는 내용이 올라왔어요.

이로써 시즌이 끝나기가 무섭게 히어로즈는 3명의 코치를 방출(?)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명수 2군 타격 코치는 두산으로, 이광근 수석 코치는 SK로.


다른 코치들의 이적도 아쉽고 황망하지만, 특히 정명원 코치의 이적은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히어로즈는 연달아 주축 선수들을 팔아먹었지만, 쓸만한 투수들은 꾸준히 나와줘서 나름 투수에서 만큼은 화수분 야구를 한다는 평가도 들었습니다.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다는 김시진 감독의 역할도 분명 있었겠지만, 2군에서 막 올라와 좋은 성적을 보여주는 투수들은 2군 투수코치였던 전 조규제 코치나 정명원 코치의 작품이라고 봐야겠죠.


정명원 투수의 현역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현역시절 정명원 투수는 정말 불꽃같은 공을 던지던 투수였습니다.

그 놈의 직구가 너무 빠르고 위력이 있었지만, 저는 정명원 선수의 공보다 공을 던지는 자세랄까, 그런게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표정으로 공을 던졌어요. 사명감이나 자존심도 대단했고.

그래서 현역 시절에 정명원은 그리 좋아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류현진이나 송은범 같이 보기에는 약간 설렁설렁 던지는 타입을 좋아하지 그렇게 이 악물고 던지는 투수를 좋아하진 않아요. 무섭잖아요ㅠ


08년 우리히어로즈 투수 코치를 할 때도 그랬어요. 당시 1군 코치여서 하루에도 몇번씩 마운드에 올라왔었는데, 투수의 투구 내용이 마음에 안들면 공을 휙 빼앗아서 야수에게 던지는 모습이 너무 쌀쌀맞아 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09년 김시진 감독이 부임하고 정민태 코치를 1군 투수코치로 기용하게 되면서 정명원 코치는 2군에서 선수들 육성에 힘을 쏟게 됩니다.

히어로즈 2군 연습장은 강진에 있는데 환경이 그렇게 열악하데요. 말그대로 허허벌판에 야구장 몇 개가 붙어있을 뿐이고 제대로 된 식당을 찾아가려고 해도 차로 한참 걸리기 때문에 히어로즈 선수들에게 강진은 유배지와도 같은 곳이랍니다.

선수들에게 그렇게 힘든 곳이라면 코치에게도 마찬가지였겠죠. 아니, 선수들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더 힘들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정명원 코치는 4년 동안 그 강진에 머물면서 묵묵히 선수들을 조련하고 관리해서 올려보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요. 2군 코치의 역할을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오히려 심리적인 부분이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야구 선수들은 1군에서 열리는 정식 경기를 하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이지 2군 경기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없거든요.

하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혹은 몸이 안좋아서 2군에 머무는 동안 좌절하거나 야구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걸 잘 다독여가며 닥달해가며 선수들이 운동에 집중하게 하는게 2군 코치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정명원 선수의 성격이라면 그런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마냥 좋게 하지는 않았겠죠. 안좋은 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덕에 많은 선수들이 강진 탈출에 성공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김시진 감독에게 쏟아지는 투수 육성과 관련한 찬사는 상당부분 전 조규제 코치나 정명원 코치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이적이 아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게 정명원 투수 코치가 처음으로 팀을 옮기게 되는 사건이라 그렇습니다.

정명원 코치는 태평양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현대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에도 위력적인 구위로 이름을 날렸고, 은퇴한 뒤에도 그 팀에서 꾸준히 코치 생활을 해왔어요.

이숭용 선수가 그러했던 것 처럼, 자신은 팀을 옮기지 않았지만 주위 사정에 의해 유니폼만 여러번 갈아입었던 거죠. 근데 이제는 그 팀을 떠나게 된거에요.

팀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선수나 코치 못지 않았을 겁니다. 다혈질이었고 급한 성미였지만, 다시 말하면 누구보다 뜨거웠고 남자였으니까요.



600만을 넘어 700만 관중을 바라보는 시대가 되고, 몇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커져가는 요즘이지만,

그러한 축제 분위기에 상대적으로 가장 소외된 팀이 히어로즈죠. 다른 팀들이 과감한 마케팅과 재미있는 경기로 새로운 야구팬들을 엄청나게 끌어모으는 동안 사실상 히어로즈는 그걸 구경만 하고 있어요.

일단 팀 성적이 좋지 않기도 하고, 계속되는 선수 트레이드로 인해 있던 팬들도 적지 않게 외면하는 형국이죠. 객단가로 보면 꼴찌는 아니지만 이건 다른 구장에 비해 비싼 입장료와 원정팀 팬들 덕에 그런 겁니다.

홈팀 관객 수가 가장 적은 팀이 삼성, 한화, 히어로즈인데, 주말에 한화나 삼성이랑 경기할 때 목동에 가봐도 히어로즈 팬보다 삼성이나 한화 팬들이 더 많아요. 전통의 엘롯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팀 사정이 어려운걸 아니까 팬들의 마음도 그렇게 변합니다. 4강 갔으면 좋겠다, 꼴찌라도 면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도 물론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우리 선수들이 다른 팀 유니폼 입고 뛰는걸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커요. 성적은 둘째 문제고요.

오늘 게임에서 이기지 못했더라도, 2군에서 올라온 어떤 선수가 공이 좋거나, 2군에서 올라온 어떤 선수가 안타를 치면 희망을 품게 되는거죠. 언젠가는 이 선수들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지.

히어로즈 팬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내일의,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을 기약하며 경기를 봐 왔습니다. 우리 선수가 내일은 더 잘할거야 라는 희망이요.


정명원 코치가 좋은 투수 코치였지만, 다음에 올 투수 코치가 잘 할 수도 있는거죠. 어쩌면 더 잘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와 히어로즈 팬들이 보고 싶은건 그게 아닐거에요. 우리 선수들이, 내가 믿고 응원했던 그 팀의 선수와 코칭 스탭이 하나되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더 이상은 이별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것.


송신영 선수, 이숭용 선수에 이어, 오랜 시간 동안 한 팀에서 동고동락했던 가족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건 마음이 아파요.

아마 강진에서 고생 정말 많이 하셨을거고, 두산에 가면 1군에서 뵐 수 있을테니 정명원 코치 입장에서는 더 잘 된 일이라고 봐요.

그래도 그래요. 그래서 그래요. 많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희망은 조금씩 사라져가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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