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트시네마에서 사샤 기트리의 절름발이 악마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까지 프랑스의 권력의 최일선에 있었던 정치인인 탈레랑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왕정으로부터 혁명,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다시 왕정복고에 이르는 격랑의 시기였기 때문에, 그 파고를 버티면서 권력의 중심부에 항상 머물렀다는 것은 이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절름발이 악마' 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이 사람은 누구의 친구도 아니지만 절대 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은, 그런 종류의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피도 눈물도 없는 종류의 악한은 아니고 오히려 대단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어서, 영화에서 가장 많은 부분은 탈레랑의 우아한 정치적 수사들을 보여주는 데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3세와의 치열한 논쟁장면이나, 신출내기 외교관 지망생에게 한수 가르쳐 주면서 "말은 진심을 감추는 도구라네" 와 같은 수사를 쓰는 탈레랑을 보면, 오오, 과연 정치가의 언사로군. 하는 감탄을 안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쩨쩨하게" 같은 발언이나 하는 한국 정치인들과는 격이나 수가 다른 것이지요.
정치나 권력이라는 것은 왠지 달콤하면서 어두운 이야기, 모호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수사들을 통해 서로 수를 나누는 암중의 싸움이라는 로망이 있습니다만, 리슐리외나 체사레 보르자 같은 드라마틱한 캐릭터야 언감생심이고, 몇백년 전 이땅의 이방원과 정몽주의 멋스러움 정도도 이제는 없습니다. 아니, 저런게 먹힐거라 생각한단 말이야. 하는 수를 내놓고, 그게 또 실제로 먹혀왔던 게 한국이니까요. 하지만, 이번의 서울 시장 선거는 좀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현실정치로부터 재미나 로망을 말한다는 것은 다소 죄의식이 느껴지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보는 재미가 쏠쏠한 이벤트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제가 본 이번 선거의 재구성입니다. 그리고 상당부분은 소설입니다.
시작은 역시 나는 꼼수다 부터입니다. 정봉주는 어떤 생각을 하고 꼼수다에 참여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 이라기보다는, 별 생각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 김어준은 어느 정도까지는 계산이 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맞추어, 팟캐스트를 선택한 것도 훌륭했지요. 김어준이 겨냥한 것은 스마트 폰을 쓰는 20대의 자유주의자 집단일 것이고, 아마도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총선 이전까지 이들 사이에서 세를 확보해서 그 힘으로 총선을 승리하고 여세를 몰아 대선까지 잡자. 는 것이죠. (저는 닥치고 정치를 안 읽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이런 이야기들이 책에 씌어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져서, 주진우가 가세한 즈음에서 꼼수다는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순수하게 '재미'만 놓고 보았을 때, 이 무렵의 꼼수다가 가장 재미있었죠. "그 누나도 저만 만나요" 라던가, "부끄럽구요", "깔때기" 같은 꼼수다의 유행어들이 쏟아진 것도 이 시기입니다. 개고기집 얘기나, 인터넷 알바같은 시시껄렁한 뒷다마들을 늘어놓다가, 어느 순간 장자연 사건같은 묵직한 얘기를 꺼내놓기도 하는, 말하자면 "골방 해적방송"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시기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봅시다. 이런게 과연 오래갈 수 있었을까요. 언제까지나 정봉주가 깔때기를 대고 가카의 뒷다마를 늘어놓으며 자기들끼리 박장대소하는 것을 들으며 낄낄거릴 수 있을까요. 김어준이 제공한 것은, 정치의 희화화, 정치를 가벼운 소비거리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접근은 실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도가니를 보고, 꼼수다를 듣고, 트위터에서 RT 버튼을 몇차례 누르는 것으로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노에서 참여로 이어지지 않고, 분노를 그냥 소비하고 해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가카와 가카 주변의 꼼꼼한 행적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거기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고 듣다보면 내성이 생깁니다. 정봉주의 개그 또한 어떤 유머감각이라기보다는 캐릭터에서 나오는 패턴플레이입니다. 이건 오래 듣다보면 어느순간에 질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꼼수다는 어쩌면 김어준의 계산보다 너무 일찍 떠버린 것입니다. 이 바람을 내년 총선까지 몰고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여기에는 어떤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그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절친 등장 !
네, 주민투표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민투표로부터 서울시장재선거까지, 판을 크게 본 김어준의 촉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시에 그걸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박근혜가 있으니까요. 상식적으로, 오세훈이 내년 경선에서 박근혜에게 되겠어. 그게 제정신이야. 라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가끔씩 그 상식에 함정이 있을 때가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 김어준은 희한한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세훈은 주민투표강행해서 시장 사퇴하고 대선에 출마할거야 -> 오세훈 대선불출마 선언 -> 오, 우리가 얘기해서 대선불출마선언했네. 하지만 시장직은 못 걸거야 -> 선거패배시 시장직사퇴 약속 -> 아 오세훈 망했네. 하지만 바로 사퇴는 안할거야 -> 즉시 사퇴 -> 으하하. 우리의 꼼수에 걸렸다. 절친 인정. 하는 식입니다. 이것 역시 언뜻 보기에는 그저 결과론처럼 느껴집니다. 애초에 저런 식으로 물을 타놓으면, 사퇴를 안하면 예언 적중이고, 사퇴를 하면 꼼수에 걸렸다고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오세훈이 사퇴하고 서울시장 재선이 확정된 바로 그 시점에서, 김어준은 돌연 "이것은 실은 오세훈의 꼼수가 아니라, 가카의 꼼수다"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김어준이 '가카의 꼼수다' 라고 했을 때에, 그것은 그 시점에서는 불완전한 '소설'이었습니다.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은, 주민선거 때에 시에서 동원한 돈과 인력은 오세훈 진영에서 나올 수 있는 규모의 것이 아니었다. 라는 것과 함께, 가카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해진다. 라는 것입니다. 과연 이 설명은 매력적입니다. 가카는 퇴임후가 걱정이 되었고, 박근혜는 어쩌면 민주당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입니다. 이대로 그냥 시간이 흘러가면 박근혜 - 민주당 후보의 싸움이 될 것이고, 어느쪽이건 가카에겐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카는 최대한 변수를 만들어서 이 뻔한 구도를 흔들어 놓아야 했습니다. 그 변수로 삼은 것이 바로 서울시장 선거라는 것입니다. 변수가 마음대로 통제가 안되고, 구도가 너무 흔들려버리긴 했습니다만 말이죠.
그런데, 가카 혼자만 변수가 필요한 것은 아니어서, 김어준 역시 변수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고, 김어준 역시 총선 전에 최대한 판을 흔들어 놓고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장 선거를 원한다는 점에서 가카와 김어준은 이해관계를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어준은 오세훈이 주민선거에서 지고 서울시장선거를 통해 부활하여 보수의 아이콘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물타기를 하고 방해를 하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선거 자체를 포기하게 하면 안되는, 외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게 다 가카의 꼼수다" 라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노출시키지 않은겁니다. 이쪽에서 가카의 꼼수라고 떠들어버렸을 때에 가카가 어떤 식으로 나올 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부담을 느끼고 마음을 바꿔서 오세훈으로 하여금 시장 사퇴를 미루게 하고 서울시장 선거를 무산시킨다면, 그것은 김어준이 바라는 일이 아닙니다. 꼼수다가, "이게 다 가카의 꼼수다" 라고 선언한 것은, 오세훈이 시장직을 사퇴한 바로 그 직후입니다. 이제 더이상의 수는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러니까, 이쪽도 모든 카드를 다 까발리고 서울시장선거 체제로 기어를 바꿔넣고는 '가카 꼼수설'을 제기한 겁니다. 여기에서, 신의 한수가 등장합니다.
곽노현입니다.
(다시 기약은 없이, 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