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8 21:20
고삼 조카가 있어요. 주말에 초컬릿 주러 갔다가 잠깐 얘길 했죠.
"고모, 젊은 게 진짜 좋아요?"
"늙어 보니까 그때가 좋았던 것 같긴 하더라."
"힘들어 죽겠어요. 하나도 안 좋아요."
"나도 별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
"....."
"...."
"하하;;;:
"아 하하하;;;"
뭐라고 급수습 들어갔었는지 당황해서 기억도 잘 안 납니다. 아 뭔가 긍정적인 얘길 해줬어야 하는데요.
사실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그 때가 참 좋았지'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제 입장에서 막혀 버린 몇몇 가능성이 그땐 뚫려 있었으니까 (세상에, 이 미모에 단지 나이가 많아서 전 미스코리아를 못 나가요. 아이돌도 못 해요. 이런 억울할 데가~~~~)
인생을 다시 세팅하고 싶다는 게 골자거든요. 그때가 좋아서 그때로 돌아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관점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 '가능성'이란 것 때문에 돌아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 나이의 입장에서 그 나이를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니까 얘한테 통할 얘기도 아닌 거죠.
지금보다 대사율이 높아서 운동 안 해도 살 안 찌고 피부도 지금보다 좋았고, 네, 분명 살면서 잃은 것이 있는데, 그때는 또 그때 또래들의 리그가 있었어요. 지금의 청춘들 역시 그들만의 리그에서 누군가는 울고 있을 겁니다. 비록 지금의 제가 보긴 좋을 때다 싶어도 말이에요.
대학을 왜 가야 하느냐고 물어서, 학벌이든 자격증이든 외모든 집안 배경이든, 이를 테면 네가 쇼핑을 갈 때 만 원 들고 나가는 게 오천 원 들고 나가는 것이 맘에 드는 물건 살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자산이 돼 줄 거라고,집에서 나가기 전에 두둑하게 준비해 나가는 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해 줬습니다. 외모와 배경은 정해진 거고, 그나마 바꿀 수 있는 게 학력이라서 다들 그렇게 난리인 거라고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조카의 모의고사 등급이 떠올라서 덧붙였어요. 살아 보니까 오천 원만 들고 나가서 우연찮게 딱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도 있더라고. 단지 나는 확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렇게 쓰고 나니 제가 조카를 꽤나 생각하는 고모 같아서 참 가증스럽군요. 단지 애가 말이 좀 많아 대화도 많아졌을 뿐.
시험은 얘가 보는데 제가 좀 심난해요. 출발선에 서 있는 어린 친구들 보면 항상 이런 기분이 듭니다. 몇 점 나올까 어디 붙을까 걱정하는 얘 부모하고는 또 다른 의미로. 네, 뭐 제삼자니까 강 건너 불이라서 부차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거죠.
2011.11.0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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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9 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