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5 19:49
제가 원래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한 때 책을 꽤 읽던 시절에도 소설은 거의 안 읽었어요.
좀비물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고요.
세계대전z가 재밌다는 얘길 듣고 동네 도서관에 구입신청을 해서 읽고 있는데
읽을 수록 빠져드네요. 솔직히 처음엔 좀비 얘기가 재밌어봤자 얼마나 재밌겠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각계 각층의 인물 인터뷰로 이루어진 구성으로 인해
제가 어림 짐작했던 장르물로서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네요. 매우 흥미롭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좀비 소탕 작전에 투입된 미군 보병의 인터뷰 중
한심한 지휘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있는데, 기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도하게
첨단 장비를 동원해 늘어놓고 병사들에게 생화학전용 장구를 착용시켰다는 겁니다.
인터뷰어가 혹시 상부에선 좀비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전파된다고 믿었던 게 아니냐고 묻자
기자들과 상관들은 자기들 바로 뒤에서 방탄복도 안 입고 전투복만 입은 채 시원하게 퍼져 있었다고 말합니다.
무척 익숙한 얘기죠.
한 인물의 인터뷰가 그 자체로 짤막한 에피소드인 형식이라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읽기도 편해요.
아직 다 읽진 않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로 그런 인터뷰 형식이다보니 문장 자체가 단조롭다는 겁니다.
하지만 번역은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입니다.
번역 소설을 읽다보면 단어 선택이나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 거슬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점은 못느꼈습니다.
원래 아주 좋아라 하는 책들도 츤츤거리는 성격이라 너그럽게 봐주세요.
스포일러와 불만투성이라서 괜찮으신 분만 긁어보세요.
스토리는 명료하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좀비들이 창궐한다. 그래서 인류는 거대한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극복을 해낸다. 세 문장이면 간단하게 요약이 된다. 이 책의 감상포인트는 서사보다는 서술기법인 것 같다. 각 나라의 상황을 인터뷰의 형식을 빌려서 표현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부터, 러시아, 중국, 일본 뿐만 아니라 남아공과 남태평양 군도의 지역까지 다양한 지역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이 방법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 각국의 특징이 클리셰다. 내 예측과 비슷한 듯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 예측을 비틀어줘야 하는데 너무나도 전형적이다.
미국 대통령의 행동도 클리셰지만, 그에 대한 비꼬기도 클리셰다. 케인즈주의와 공산주의를 연결짓는 얘기를 읽으면서 좀 화가 나기도 했다. 진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치는데 작가는 실패했고 책이 중간을 넘어가면서 슬슬 읽기가 귀찮아졌다. 뻔한 이야기를 굳이 내가 시간들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 방패회(나중에는 방패 사회로 다르게 번역된다.) 이야기에서 닌자가 바로 떠오르는 것은 나 뿐일까.
번역도 불만스럽다. 대충 번역을 한 게 아니라 작가의 한국어 능력과 상식 부족이 안타깝다. '공모론'은 '음모론'으라는 단어로 번역해야 했고, '오스만 튀르크'보다 '오스만 투르크'로 표기하는 것이 관용적이다. 이라크전 작전명 Shock and Awe를 충격과 경외감으로 번역한 것이 나에겐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번역에 바뻐서 뉴스 볼 시간이 부족한 탓일까. 원서가 없어서 정확한 대조를 할 수 없지만 종종 주고 받는 관계가 헝클어져 보이는 문장들이 눈에 띄였는데 이것들도 번역에 의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