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게시물을 보고 끄적여 봅니다.

개혁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나름 흥망을 지켜본.  그리고 이런저런 내부 사정을 꽤나 잘 알고 있던 당원이었습니다.  ( ")
개혁당에 참여한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  그리고 생활정치를 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
물론 전자 모두가 후자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후자 역시 전자에 대한 의지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노무현 후보 시절.  즉 대선 정국에서 개혁당은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모두가 뜻과 노력을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개혁당 당원.  노사모 회원.  국참에서 활동한 이들은 사실 많이 겹칩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는 당일 밤 자신이 후보로 있었던 정당인 새천년민주당 당사를 찾기 이전 개혁당 당사부터 먼저 찾아 
그곳에 있던 당직자나 당원들과 함께 기쁨을 먼저 나눴었는데 이 일화가 바로 당시 대선에서 개혁당의 역할이나 의미를 잘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선거 승리의 기쁨도 잠시.
문제의 시작이라면 시작은 노대통령 당선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앞서 후자였던 당원들.  즉 생활정치라는 말.  당원이 주인이 되고 당원들의 의지로 정당이 굴러가고 그로 인해 정당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정치가 더 이상 혐오스럽거나 일부 직업 정치인들에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뜻이 정당을 통해 민의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건강한 세력이 되어 건강한 정치력이 되는 것이 보고 싶어한.  아니 직접 만들어가고 싶어했던 개혁당의 후자 세력들에게 시련이 시작됩니다.

후자의 당원들.  
이 후자의 당원들은 이제 대선이 끝났으니 개혁당을 개혁당답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대선 정국에선 닥치고 노무현 후보 당선!의 목소리가 당연했고 후자의 당원들 역시 이것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이 거의 없었기에 
대선 정국에선 개혁당 자체를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일이 소홀해도 모두가 참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이젠 대선이 끝났으니 개혁당은 애초 목표했던 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에 매진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들이 진행되지 않았거든요.

개혁당 당원들은 당이 없어지기 이전에 사실 많이들 탈당을 했습니다.
탈당 러쉬는 몇번의 일들로 인해 몇번에 걸쳐 발생했는데요.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중앙당의 처리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었고 이 과정에서 탈당 러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선 이후인 2003년 1월이었던가.  
당시 당 대표했던 유시민씨는 4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대표직을 내놓았고 그 자리엔 김원웅 의원이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원웅 의원이 대표가 된 과정입니다.  호선되었거든요.
당시 개혁당의 주요한 사안은 모두 전국집행위원회에서 논의되었고 처리되었는데 김원웅 의원의 대표 선출도 이곳에서 호선으로 처리되었습니다.  
물론 당원들의 반발이 심하자 당원들의 사후추인을 받는 형태로 봉합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당원들이 탈당을 하였습니다.

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당원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전국집행위원들이 결정하고 실행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 많은 이들이 문제 삼았던 부분은 김원웅 의원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것보다도 선출직이 아닌 당연직(전국집행위원은 당원들의 투표로 뽑는 
선출직과 당연직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집행위원이 호선을 통해 당 대표가 된 그 절차였습니다.

절차적 민주성.  그것이 매우 훼손된 사건이었고 이 일을 겪으면서 많은 당원들이 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4월 재보선.
애초 유시민씨는 민주당과의 공조는 결코 없을 것이라 당홈페이지를 통해 당원들에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경선을 통한 단일 후보론이 공론화되었을 경우 민주당에서 공식적으로 제안을 해온다면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이때부터 난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당원들의 투표가 있었는데 투표 과정 중 유시민씨는 자신은 선거 공조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견을 밝혔고 
개혁당과 민주당의 선거공조에 대해 돌을 던지는 이들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고 모욕하고 비방했던 세력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까지 운운하면서 말입니다.
당시 투표 결과는 6:4 정도로 선거 공조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고 이 과정에서도 또 다시 많은 이들이 탈당을 합니다.

그리고 신당 참여 문제.
당 지도부와 평당원들 사이에 소위 끝장토론도 했습니다.  
총선용 신당이 필요하다는 지도부와 개혁당 독자 노선을 주장하는 평당원들간의 끝장 토론이었는데 이견이 좁혀질 리가 없었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지막 탈당 러쉬가 있었습니다.  -_-;;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탈당한 당원들의 대부분은 처음에 말씀드린 후자에 속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저는 추측합니다.
신당에 참여하니 마니를 결정하는 투표의 정당성이나 합법성 여부를 떠나서.
몇번에 걸친 탈당 러쉬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고 남아서 개혁당 독자 노선을 주장한 이들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노무현 후보 시절 민주당에서 자신들의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에게 얼마나 행패를 부렸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은 되었지만 세력 약한 대통령에게 힘을 주고 함께 무언가를 하기 위해 총선을 치룰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저는 신당 참여에 반대했던 당원이었지만 그쪽의 입장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의에 찬 우행(愚行)은 악행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총선용 신당이 필요하다는 선의.  그 선의를 이해할 수 있다 해도 그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악행이라는 얘기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 중 의견이 많이 겹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절차적 민주주의일 것입니다.

요즘 엄청나게 이슈가 되고 있는 한미 FTA.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찬성하는 이도 반대하는 이도 한미 FTA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이해하고 찬/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물론 알면 좋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결정되는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느냐.  라고 생각합니다.

목적이나 취지가 좋다해서 모든 방법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개혁당 해체라는 파국의 결정적 방아쇠가 된 신당 참여.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 절차를 거쳤을까요.
몇번에 걸친 당원들의 탈당 러쉬가 일어났던 사건들 역시 그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본 당원들의 참담한 선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개혁당 얘기를 하는 건 죽은 자식 뭐 만지는 얘기처럼 이제는 꽤 시간이 지나버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회자가 되고 제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웠던 일이라 생각하는 건.
유시민이란 정치인 개인에 대한 평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탈당 러쉬 속에서 상처 받은 평범한 이들 때문입니다.

새천년민주당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아닌 중간 지대에 있었던 사람들.
어쩌면 그들이 난생 처음 자신의 돈과 시간을 쓰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정당이 개혁당이었습니다.
평당원들이 만들어가는 민주적인 정당.
생활정치.
아웅다웅 권력 투쟁이나 하는 정당이 아닌 삶 속에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정당.
그것을 꿈꾸며 입당했던 수많은 당원들이 실망하고 상처받고 눈물을 흘리며 탈당하고 떠나갔던 일이 개혁당 사건입니다.

그래요.
그 사람들의 숫자는 잘해야 3-4만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꿈꾸었던.  그리고 지키고 싶었던 가치.
아니 만들고 싶었던 가치.  
물론 그들만이 그러한 가치를 꿈꾸고 만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개혁당에 입당했으나 단 한번도 그것을 실현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탈당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럴 것이라 주장하고 설명했던 이들의 말을 믿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슬펐습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
따지자면 수없이 따질 수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을 별로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위 개혁 장사치들은 많은 세상이고 대의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앞서 방법론 어쩌구 얘기도 했지만 
선의에 찬 결과를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인정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당시 개혁당 지도부로 활동하며 적지 않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 이들이 최소한 동일한 상처를 또다시 평범한 이들에게 주는 일만 
없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 drl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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