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요즘 이 사람 얘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요즘 연락이 심심찮게 와서 근가봐요. 구구남친이 '모하니' 문자보냈어요.

'걍 있다' 그랬죠. 뭐 블라블라 안부 얘기. 나으면 소주 한잔 ㅇㅇ 이러고 끝냈는데 왠지 아이고...이런 생각이 드는 게. 끄응.

그와 엮였던 건 되게 오래 전 얘기같은데 아직 3년밖에 안 됐다니. 하긴 그와의 연애 이후로 제 신상엔 정말 스펙타클한 일이

많았죠. 인간극장 한 달치 분량은 나올 듯한.

 

    그는 제가 입원했을 때 딱 한 번 문병을 왔었죠. 연락한 기억도 없는데 뭐 사고 직후 2주 정도는 아예 기억에 없으니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연락했을지도 몰라요. 어느날 문득 자다 눈을 뜨니 뙇, 머리맡에 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후론 문병온다 드립만 냅다 치고 한 번도 안 오고-3-(기다렸다기보단 장기입원환자는 심심하니깐..)

 

    퇴원한 이후로 심심찮게 문자를 보내곤 하는데 다행히 '자니?'는 안 합니다. 늘 열두시 이후인 걸 보니 술한잔 하면서 보내는

것 같긴 해요. 이젠 구남친이라기보단 그냥 지인이라는 느낌이지만, 다른 심상한 친구들보다 예뻐하는 애긴 하니까 만나 놀며

이뻐보이면 뽀쪽 정도는 해줄 것도 같습니다(필요 없대...).

 

   아래는 2년 전 가을, 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적었던 글. 제목은 「난데없이 종언 밤」.

 

  몇 시간째고 홀로여서 지루해 죽을 것만 같던 새벽의 바에서, 맥락 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을 받았다. 

저장돼 있지 않은 '낯익은' 번호였는데, (무려) 한참이나 누구인지 생각했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핸드폰을 꺼서 치워놓고,

온갖 개짓에 지랄 발광을 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번호였는데 말이다, 우습지만 뿌듯함 섞인 웃음을, 조금 웃고 아직도 술에

취해 사람을 찾는 나약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전화할 때마다 뭐 하고 사느냐고 묻지만 이제 나는 그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어떻게 사는지 빤히 짐작하기에 궁금하지 않거니와 그도 단지 어떤 말이든 하고 싶을 뿐 내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짧고 뻔한 수다 끝에 그는, 언젠가의 내가 그렇게나 심장이 간질거릴 정도로 좋아했고 듣고

싶었던 맹한 목소리로 보고싶네, 라고 말하다 황급히 나중에 연락할게, 안녕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때 내가 느꼈던 기시감은, 외롭고

괴롭다고 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마음에도 없는 타인에게 마구 내던질 때 곧바로 스스로에게 돌아오곤 하는 환멸이었는데, 때문에

나는 그 순간 그의 당황, 자괴와 헛헛함, 그리고 자신조차 속이지 못한 민망함을 이해했다. 그리고 더 이상 어떻게 간질여 보아도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감정에서, 그것이 이미 한참 전에 몇 층이나 아래로 퇴적되어 다만 약간의 연민을 남긴 채로 굳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지각할 수 있었다. 병을 앓았다 떨쳐낸 듯 가뿐한 한편 그것이 꿈이었던 양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겨우!

그제서야! 미숙하고 나약하기 그지 없어 짐승이라 해도 할말이 없던 이십대 초의 연애들에도 진짜 종언을 고할 수 있었다. 기실 그것은

이미 한참한참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나는 그 밤 그 시간의 통화를 지나고서야 진심으로 그와 나의 생이 다만 한없이 잔잔하기를 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우리는 여전히 팔자가 잔잔하지는 못하고, 여즉 생이 무거워 어깨가 저리고, 그럴 때마다 헛웃음을 웃으며 서로를 봅니다.

'어휴, 너도 참 너다.' 적극적으로 위로의 포즈를 취하는 것도 아니며, 그럴 마음도, 여력도 없지만 그냥 눈높이가 비슷한 어떤 종류의 생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종의 위안이 되긴 하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서로를 좋아합니다. 서로 취향에 맞는 인간형이랄까. 

얘한테 쪽팔린 짓을 하도 많이 해서 연락 안 하려 했던 건 전데, 외려 그러고 나니 얘가 심심찮게 절 찾더군요. 피차 다시 엮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지만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관계라서 좋긴 해요. 이상해보일지언정 없을 법하지도 않은 관계. 우리 잘 살자 좀.

 

    이딴 구린 연애류 바낭 이제 구만...회고도 한두번이지 지겹군요. 이게 다 제가 너무 한가해서 그렇슴둥. 언제쯤 산뜻하고 상콤해지나 내 청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02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62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754
73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by 움베르트 에코 [7] 만약에 2011.09.28 2598
72 로또당첨에 대한 계획이 다들 소박하시군요. [16] 자두맛사탕 2011.03.30 2586
71 [100권] 소설가의 각오, 달에 울다 - 마루야마 겐지 [11] being 2012.06.13 2575
70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트레일러 +@ [10] walktall 2014.07.24 2560
69 [기사] 한국은 친구를 버리지 않았다. = 국위선양은 역시 민간이.. [4] 고인돌 2011.03.04 2489
68 [듀나인]초성수기 항공권 구하기 [8] 더위먹은곰 2013.08.06 2482
67 [바낭] 다음 주가 생방송이지만 여전히 인기 없는, 위대한 탄생3 잡담 [9] 로이배티 2013.01.19 2437
66 지금 KBS1 <더 콘서트>에서는 한 시간 넘게 정경화 특집이 방송중, 간만에 구역질이 나는 드라마 캐릭터는 [4] Koudelka 2015.04.23 2337
65 한국 VS 필리핀 [4] chobo 2013.04.05 2301
64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케미에서 전 이장면이 떠올랐어요. [4] 자본주의의돼지 2012.07.26 2256
63 (기사링크) 변희재, 호남 비하 발언 “양보 못해” [6] chobo 2014.03.14 2151
62 횡설수설 - 밤을 새우는 개인적인 패턴 [7] 로이배티 2011.06.16 2150
61 Glee, 2시즌 8회까지 보고 잡담 (스포일러? 있음) [2] S.S.S. 2010.12.05 2114
60 2013년 올해 읽었던 책 모음 [2] Trugbild 2014.01.26 2105
59 pc 인디게임 10 [7] catgotmy 2012.06.14 2103
58 [바낭] 요즘 신인 걸그룹들 잡담 [8] 로이배티 2015.03.08 2094
57 [듀나인] 미드 굿와이프에서 [3] 닥호 2012.07.15 2079
56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가 개봉하네요. [5] 프레데릭 2011.03.17 2067
55 아니 내가 이렇게 옷이 많았단 말인가? 그 외에 [4] Weisserose 2012.10.03 2053
54 제2의 싸이라는 Ylvis의 The Fox (여우는 뭐라고 말하는가?) 중력으로 가득 찬 우주듀게에 지구생태계를!! [7] 비밀의 청춘 2013.10.26 203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