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태공 가출 사건

2011.11.22 06:40

걍태공 조회 수:1356

아파트 단지 앞에 서 있는 택시가 보이는군요. 도시 전체가 조용하게만 느껴지는 새벽 다섯시,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손님을 기다리며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학교와 집,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던 골목이 내가 알던 세계의 전부이던 초등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상상속의 세계에선 인기척없는 거리에 똥강아지 한마리만 하릴없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수업을 하고 있거나, 회사를 가서 일하고 있을테니 거리에 사람이 있을 수 없잖아요? 아무도 없는 그 쓸쓸한 거리에서 차도 중간을 마구 달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무럭무럭 자라나 작은 심장으로 더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어느날. 


감행했다 태공은, 학교 대탈출!


어린이들이 없을 뿐,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거리의 모습에 태공은 충격을 몹시 받았더랬죠. 상상은 자라나 자라나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상 모습까지 상상하고 있었는데 (혹시 내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외계인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지 않을까? 등등), 가출학생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평소와 별로 달라보이지 않더라구요. 아,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가출까지 감행해 가면서, 나왔는데, 이건, 아니잖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순 없어서 거리를 헤매던 태공은 결국은 집으로 향했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어떤 치도곤을 당할까 걱정하면서요.

응? 그런데 이게 왠일이죠? 어머니도, 평소보다 집에 빨리 돌아오신 것 같은 아버지도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십니다. 그날저녁 어머니가 잔뜩 만들어주신 불고기로 포식한 태공은 혼이 나기는 커녕, 상냥해진 부모님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채로 잠이 들었죠.


학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이리 상냥하실까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머리속에 에디슨의 전구가 켜졌습니다. 아하! 

아하! 아하! 천상천하 유아독존 모범생 걍태공께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출하더니 돌아와서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사태에 부모님과 선생님이 당황한 거죠. 무슨 불만이 있는지 모르지만, 어린이답게 수업받는 동안 거리의 모습이 어떤지 보러나갔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은 어른들이 보기엔 사실일 수 없는거에요. 좀 지저분한 거 빼놓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던 어린이의 갑작스런 가출에 충격을 받고 그 원인 분석을 위해 골몰하시던 어른들의 모습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가출하고, 불고기 얻어먹고, 부모님 선생님이 상냥해지고..... 이것이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고, 매운탕 끓여먹는 일석 삼조의 쾌를 이룬게 아니겠습니까? 태공은 진지하게 불량학생 코스프레를 계속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태공의 마음을 흔든 소녀때문에 세상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바람에, 불량어린이 코스프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41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9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936
57 [듀9] 음악 리스트 구성. 빈칸에 들어갈 음악을 찾아주세요. [7] 국경의 밤 2012.03.10 718
56 [영상] The Chemical Brothers performing Block Rockin' Beats (2003 Digital Remaster) M/V miho 2011.11.26 773
55 이런저런 이슈잡담 [1] 메피스토 2011.12.21 860
54 [바낭] 나만 가지고 있는 징크스?! [7] hazelnut 2012.04.10 889
53 우왕 대한민국!! 작은가방 2012.12.19 989
52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군요. [1] 듀라셀 2013.05.04 1022
51 (바낭) 어? 갑자기 표가 등장했어요 [2] miho 2011.07.08 1061
50 [무한썰렁바낭] 슈퍼 선생 K [11] 로이배티 2013.02.01 1138
49 오늘은 이걸 들어줘야죠 [2] calmaria 2010.12.31 1322
» 걍태공 가출 사건 [3] 걍태공 2011.11.22 1356
47 (구관바낭) 인형옷도 샀어요 >_</ [2] Kovacs 2013.10.10 1515
46 바낭)전 빛나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요 [8] 가끔영화 2011.04.07 1604
45 이진원(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씨 1주기. 축배. [12] 홍시 2011.11.06 1616
44 [바낭] 카라 신곡 2곡 뮤직비디오 + 자매품 레인보우(...) / 요즘 하이킥 잡담 [8] 로이배티 2012.03.01 1676
43 [바낭] 점심 먹고 졸리실 텐데 인피니트 신곡 티저나... (쿨럭;) [10] 로이배티 2013.03.14 1744
42 공모전과 웹툰 [3] 사소 2013.10.28 1754
41 어제 [나가수]를 못봐서 지금 무편집본 하나씩 보고 있어요. (스포재중) [4] 아.도.나이 2011.07.11 1773
40 [바낭] 간만에 월급도둑질중 - 뭐하면 좋을까요? [7] no way 2011.04.14 1830
39 금단 현상_소주 [15] 칼리토 2015.09.29 1839
38 (바낭바낭) 미술관에도 갔어요 >_</ (사진추가) [8] Kovacs 2013.10.10 191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