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신문을 보다가 "정부법무공단"이라는 기관에 대한 기사를 봤습니다. 이 공단은 대한민국이 이런 저런 소송을 많이 당하게 되자, 정부측을 전문적으로 대리할 수 있는 변호사들을 모아놓고 사전, 사후 도움을 받겠다고 만든 공단입니다. 기사는 이 공단의 업적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 제가 보기엔 씁쓸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뭐 옛날에 나라에서 죄없는 사람들 잡아다가 가두고, 때리고, 고문해서 간첩 만들고 빵에 넣고 심지어 사형시킨 이야기들이야 워낙 많습니다. 그나마 세상이 좋아져서 그 당시 피해자들은 이제라도 정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소송을 내서 옛날에 그딴짓 한 거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마땅한 일이죠. 다만 그 보상금이 당시에 그런 짓을 직접 하거나 하라고 지시한 정치인, 검사, 경찰, 안기부원 지갑을 털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제 세금에서 나온다는 건 매우 아쉽습니다만. 이런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대한민국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시효가 지나서 돈 안줘도 된다"고 꾸준히 주장했지만 다행히 법원에서 "닥치"라고 눌러줬습니다. 해놓은 짓만 해도 용서가 안되는데 오래전 일이니 없던 일로 치자는 건 말이 안되죠. 근데 여기서부터 삐걱거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60~70년대에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험한 일 당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30억 잡아주면, 거기에 지금까지 40년 동안의 이자를 붙이면 이자만 70억이 붙게 되었죠. 토탈 100억. 근데 올초에 대법원에서 이게 역전됐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이자가 너무 많이 붙는다. 통화가치 자체가 달라진 마당에 40년동안의 이자를 주면 너무 많이 주게 된다. 소송 끝난 시점부터 이자를 줘라." 이러면 보상으로 30억이 잡혀도 이자는 2천만원 수준이 됩니다. 기사는 정부법무공단이 이런 사건에서 정부를 대리해서 국고를 아꼈다고 칭찬한 겁니다.

 

국고를 아꼈다는 것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닌데, 문제는 그 세부 내용입니다. 대법원까지 오기 전에 후배 판사들은, 40년동안의 이자가 어마어마하게 붙을 것을 감안해서 일부러 손해배상금 원금을 낮게 잡았습니다. 이자가 2천만원밖에 안붙을 걸 알았다면 30억보다 더 많게 배상금을 확정했을거라는 거죠. 근데 2심까지 판결을 받아낸 시점에서 정부는 계속해서 이자를 까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같이 대법원에서 붙어보자고 올라간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이정도면 됐다고 만족하고 대법원에서의 싸움은 포기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포기한 사람들은 그 결과 완전히 엿먹었습니다. 대법관들은 "이자가 붙을 걸 감안해서 원금을 적게 잡았다는 건 알겠는데, 피해자들이 대법원에는 오지 않고 싸움을 포기했으니 내가 원금을 늘려줄 수는 없네. 그냥 손해 보소." 라고 답했습니다. 보상금으로 재단을 만드는 등 이미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대법원 판결로 인해 이미 받아 쓴 배상금을 돌려줘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빚쟁이가 됐네요. ㅡㅡ 그 반면 끝까지 해보자고 대법원 상고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건이 확정되지 않고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되었죠. 고등법원은 이제 이자가 조금만 붙을 걸 알고있으니 원금을 늘려줬겠죠.

 

제가 쓰고 제가 읽어도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운데... 그래서 그런지 별로 이슈가 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간 이야기 입니다. 그냥 객관적으로 보면 화폐가치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자체는 사실이니 논리가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죠. 다만 명백히 손해를 본 사람들이 나왔는데 구제를 못해주게 됐습니다. 나랏 돈 아끼려고 피해자들에게 주는 돈을 줄이는 노력은 했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 당시 그딴 짓을 해놓은 책임자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려는 노력은 아무도 안하는 걸로 알고있어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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