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5 22:27
*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11125171712681
기사와 함께 어제 뿌리깊은 나무의 내용을 생각하다 떠오른 생각입니다.
* 세종은 혜강선생을 필두로 한 유생들이 한글반포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함은 물론 조정의 대신들도 그를 반대하자 그들 모두를 말로 설득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론 장면. 세종은 혜강선생, 집현전 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논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하죠.
학자들의 논리들은 대부분 유교적 이유였지만, 사실 학자가 아닌 강채윤도 이를 반대했습니다. 아니, 반대라기보단 그런게 과연 무슨 쓸모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죠.
이는 세종의 극렬안티인 정기준도 했던 생각입니다. 정기준 역시 세종의 한글을 우습게보고 구태여 한글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제가 기사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사실 어제 드라마속 내용은 소통이나 토론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통과 토론. 물론 했습니다. 세종은 한글의 중요성을 그를 반대하는 유생들의 논리인 유학의 논리를 뒤집어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반대자들은 여기에 할말이 없었고요.
보고있는 시청자입장에선 신나더군요.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논리의 유학자들의 이야기를 세종이 하나하나 논박하는 과정을 보는게 말입니다.
하지만 어제 드라마에서, 세종의 한글 이야기가 대신들에게 먹혀들었던 결정적 이유는 소통이나 토론이 아니라 집현전 철폐였습니다.
한글창제, 반포에 동의하는 대신 신하들이 평소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집현전을 철폐하는 '거래'였었던 것이죠. 유학이 어떻다 백성이 어떻다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강채윤과 정기준은 어떻습니까.
이들이 한글에 충격을 받은 것은 세종(혹은 담이)의 논리가 정교해서가 아니라, 한글이 실제로 매우 적은 글자수로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그 자체를 접했을때입니다.
논리나 말에 설득된게 아니라, 사실 자체에 무릎을 꿇은 것이죠.
오히려 정기준은 그 사실을 접하고도 세종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죠. 모두가 글자를 쓰면 세상이 혼란해질 수 있다고.
실제 조선의 역사와는 별개로, 어제 드라마 내용에서 와닿은 것은 소통이 중요하다는게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그 반대였죠.
그건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해선 그를 추진할 확실한 권력 더불어 반대자들과 '거래할 떡밥'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순전히 거래의 목적으로 말입니다.
이는 권력자가 행하려는 일이 얼마나 합리적, 논리적인 일이냐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죠.
*이 글은 토론, 논쟁 무용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토론과 소통이 가지는 의미가 과연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보니 그게 그렇게 만병통치약 같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