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커피발전소

2011.12.05 12:18

beirut 조회 수:5302



딱 들러붙는 체크무늬 바지, 단발로 가볍게 뽂아 5:5로 산만하게 자란 머리, 강렬한 원색 블레이저로 포인트를 준, 그러면서도 쪼리를 질질 끌면서 '나의 평상복은 이 정도다'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홍대남 모씨는 오늘도 커피를 마십니다. 그가 들르는 곳은 간판도 찾기 힘든 당인리 화력발전소 앞의 '커피발전소'. 파쑝에 투자하느라 지갑이 가벼워졌더라도 커피 한 잔은 부담 없습니다. 3천원이면 거품키스를 위한 카푸치노부터 제주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당근주스까지 다 맛볼 수 있으니까요. 







합정동 커피발전소는 동네카페입니다. 홍대주변을 자주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고 해도 우연히 찾아들르기는 어려운 곳에 있죠. 그러나 이 주변에는 아마 출판사, 음반레이블, 독립아티스트들의 사무실과 작업실이 많은가봐요. 제가 방금 과장섞인 농담을 좀 했지만 실제로 커피발전소에는 저런 비슷한 차림의 토박이 홍대남녀들이 나 작업하다 나왔어, 홀랑 마시고 또 가봐야 돼,라는 듯한 포스로 앉아있고, 또는 들러 가고 그럽디다요.





내부는 조용하고, 아늑하고, 소박합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점잖은 카페주인이 부지런히 커피를 만들고 있습니다. 거대한 굴뚝이 솟아오른 발전소가 무색하게, 아담한 커피발전소에서는 쉬지 않고 커피가 생산됩니다. 





소파 위 저 쿠션들, 이름이 Babo랬던가 뭐랬던가.




저에게 카페에서 공부하는 건 참 힘든일입니다. 등산가방처럼 공부할 거리를 가득 채운 가방을 매고 가도 책 조금 읽고 수다떨고, 커피나 마시고 오거든요. 하지만 여기선 들르면 항상 뭔가를 하나씩 하고 옵니다. 책 한권을 다 읽거나, 레포트를 하나 다 쓰거나. 다 그러는 분위기니까요.


 



발전소 사진들.









오밀조밀 꽉 찬 주방. 

드립, 에스프레소 그리고 과일음료까지 다루면서 이렇게 소박한 주방은 아마 여기뿐 일겁니다. 이곳에서는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메뉴를 만들어 줍니다. 모카포트는 특성상 시간이 오래걸리고 불편하기 때문에 영업장에선 잘 쓰지 않아요. 저도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손님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에서 모카포트로 영업이 가능할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사장님의 손놀림을 보는 순간 아하 했습니다. 어설픈 실력으로 머신을 다루는 사람보다 훨 빠른 속도로 한 잔의 카푸치노를 만들어 내더군요. 그것도 수동 거품기로 거품을 내면서 말이죠. 

물론, 모카포트는 머신보다는 압력이 덜 걸리기 때문에 맛에 차이가 있습니다. 흔한 이탈리안 가정식 커피를 맛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발전소의 '소박의 미학'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수제 더치툴입니다.







사실 커피 발전소 근처에는 M본부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무연탄 카페(anthracite)가 있습니다. 프로밧과 고도(실제 고도를 쓰는지는 모르겠습니다)로스터를 사용하며, 라마르조꼬와 말코닉 그라인더까지 갖춘 (장비가)훌륭한 카페입니다. 공장을 개조한 인테리어도 인상적이고요. 하지만 저는 이 근처에 오면 무연탄 카페보다 프로스타를 쓰는 이 곳을 더 즐겨찾습니다. 이 곳의 커피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죠.









발전소 도서관 입니다.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것 같아도 꽤 알찹니다.





흡연자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문밖 벤치.


 









사장님은 야구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야구공은 물론이고 야구 관련 책도 많습니다. 그래서 전 이곳이 더 좋습니다.

 






모든 메뉴는 일괄 5천원, 테이크 아웃 3천원 입니다. 테이크아웃 잔을 직접 가져오면 500원이나 할인해 줍니다. 친구는 이곳의 당근주스를 추천하더군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오직 '제주도산 천연 당근'만이 들어간 이 주스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들 정도로 맛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맛을 못봤어요 근데.

 




엘 살바도르를 시켰습니다. 이 곳의 커피도 소박합니다. 자극적이지 않죠. 은은하면서도 잔향이 오래가는 편이에요. 화려하고 강렬한 커피를 뽑아내는 응암동 커피생각과는 정반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다방 사장님도 이곳을 단골로 드나들어 우연히 얼굴 마주친 적이 있어요. 카페사장들이 나가서 찾는 커피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1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59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428
» 합정동 커피발전소 [12] beirut 2011.12.05 5302
86891 여러 가지... [11] DJUNA 2011.12.05 2356
86890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군요. 우가 2011.12.05 1457
86889 [종교뉴스]성(性)직자의 결단.jpg [13] EEH86 2011.12.05 3502
86888 여선생 vs 남제자 [13] 자본주의의돼지 2011.12.05 3608
86887 신을 방출(?)할 예정인 첼시 [4] chobo 2011.12.05 1885
86886 하인라인의 스타쉽트루퍼스 도서관도 씨가 말랐군요. [8] 무비스타 2011.12.05 1535
86885 (질문이요) config 파일이 뭔지 아시는 분.. [2] 연금술사 2011.12.05 1060
86884 윤종빈 감독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스틸 [10] fan 2011.12.05 2342
86883 올드 랭 사인/종로의 기적/REC - - - -등업했습니다 [2] munich 2011.12.05 978
86882 이민정 <원더풀 라디오> 티저 포스터 + 예고편 [3] fan 2011.12.05 1708
86881 연예인 A양 진실 사이트까지 생겨나다니( 혐오스런 문구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펑!) [13] chobo 2011.12.05 23385
86880 [듀나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궁금증 [4] 가라 2011.12.05 1798
86879 홍대 - 합정 근처 추천 부탁드립니다;; [5] august 2011.12.05 2012
86878 [고냥]귀가 후 고양이와 노는 패턴,+ [11] 헤일리카 2011.12.05 2607
86877 왕년의 포크싱어 김민기 좋아하시나요, 프로와 아마추어 때 [1] 가끔영화 2011.12.05 811
86876 서울미대 졸업전 '反동성애' 작품 논란 [32] Shybug 2011.12.05 5362
86875 [연예뉴스]신성일, 지금도 애인 존재…바람둥이 No [12] EEH86 2011.12.05 5231
86874 박찬호와 차범근의 해외생활 적응의 결론 - 두 선수의 에피소드 공통점 [3] 무비스타 2011.12.05 2441
86873 사라져버린 나의 일기에 대하여 [7] 이울진달 2011.12.05 171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