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 소속사 덕분에 혹은 이지아의 할아버지를 알던 정대철 때문에 듀게에 때아닌 덕망있는 친일파 논란이 일었네요. 사실 논란이라기보다는 의의를 제기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집중적인 포화가 퍼부어지는 것이지만요.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을 택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몇 자 남깁니다. 지금 상황에서 논쟁을 하자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입장도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주시는 것이 여러 사람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얘기하는 건 이지아나 그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친일파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입니다. 덕망있으시다는 그 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니 제가 논의하는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친일파가 나쁘다는 이야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최근 게시판에서 덕망있는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분들 조차도 친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게 보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이부터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과도하게 민족주의적입니다. 어느 나라 역사도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역사는 없습니다. 여기서 민족주의적이라는 말은 비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민족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우리 민족이 최고라고 하는 민족우월주의, 혹은 자랑스런 대한 민국이라고 하는 국가 중심주의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전자의 민족주의 - 즉 인종족 민족주의와 그에 기반한 민족 우월주의 - 만 민족주의로 불리는 경향이 많지만 근대 국가가 모두 nation-state이고 민족이라는 말이 nation을 번역한 말이라고 할 때, 사실상 민족주의의 요소에는 인종적인 민족과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다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족을 강조하는 것만 민족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특히 뉴라이트가 등장해서 일본 우익식의 파렴치한 국가주의를 앞에 내세우면서 80년대의 민족적 민족주의를 그들 국가의 적으로 돌리면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역사 기술이라고 한다면 단지 그러한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발리바르나 유명한 중국 민족주의 연구가 두아라가 말하는 것처럼 민족주의 역사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 기술에 있어서 주어가 '민족'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민족'이 주어가 되면서 민족이 의인화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의화된 민족의 역사는 특정한 내러티브 속에서 전달됩니다. 마치 영웅 소설처럼 영웅이 탄생하고, 영웅의 아름다웠던 영화롭던 과거가 있고, 영웅이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극복하고, 점점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영웅이 된다는 내러티브. 근대 국가의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기술은 이러한 영웅신화의 내러티브와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 민족국가의 역사들은 대부분 과거의 그 아름다웠던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 끊이없이 외부의 고난을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연구들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모든 민족주의는 그래서 회고적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민족정체성을 혹은 국민 정체성을 과거의 비슷한 인종 공동체나 지역 공동체에 투사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정체성을 지닌 채 현재 우리의 국민 국가를 만들어 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것, 혹은 우리 민족 공동체 혹은 국가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국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역사에서 고대사가 중요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한민족의 뿌리는 고조선까지 이어져야만 하고, 프랑스인의 역사는 골족에서 시작해야 하고, 중국의 한족의 역사는 갑골문자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족이 주어가 되는 민족이 주체가 되는 역사가 쓰여지면서 몇 가지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그 중 하나는 민족의 서사시의 줄거리에 방해가 되는 다른 세세한 부분들이 무시되고, 축소될 뿐 아니라 왜곡되는 경우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모든 "집단의 역사"의 문제이고 "서사로서의 역사"가 갖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근대 이후 우리는 헤겔식의 "역사의 정신"이라는 서사에 너무나도 쉽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하나의 집단은, 혹은 하나의 국가는, 혹은 하나의 민족은 어떠한 완성을 위해, 즉 그것은 민족의 통일과 독립이 될 수도 민족 경제 발전을 통한 세계 몇 위 권의 경제 국가가 되는 것으로 혹은 민주주의 발전, 자유의 승리 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 싸워온 역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서사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숨겨지거나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중요성을 부여받지 못한 채 역사 기술 속에서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모든 국가는 국민화 혹은 국민 교육을 통해 이러한 역사를 내면화합니다. 자유를 위한 위대한 투쟁을 벌인 미국의 역사, 고대시대부터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안고 살아왔지만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끊임없이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한국의 역사 등. 그러는 와중에 역사기술에서 주어가 되고 주체가 되는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내면화가 되고 어쩔 때는 그 국가의 정체성 보다 그 국가의 내면화 과정에서 심어주었던 이념 - 자유, 민족국가 수립, 경제 발전, 억압에 대한 저항 등등 - 이 국민들의 내면에 더욱 강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관한 연구 중 리처드 그린커라는 인류학자는 아주 흥미로운 지적을 합니다. 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정부에 반대하던 학생들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며, 사실 노학연대로 대표되는 대학생들이 주도한 한국의 혁명적인 민주화 과정에서 이 과정을 주도했던 운동권 대학생들은 사실 한국의 억압적 교육 시스템 속에서 그러한 시스템이 가르쳤던 걸 가장 잘 내면화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러면서 어찌보면 국가가 주입하려고 했던 박정희와 박종홍류의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족주의의 원칙을 내면화하면서, 그것들을 공부하고 외우고 그를 바탕으로 시험에 정답을 써내었지만, 사회에 던져졌을 때 자신들이 맹목적으로 배웠던 것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정부에 그리고 사회에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사회의 지배적 계층이던 혹은 사회에 저항하는 계층이던지 간에 그 사회에서 공유하고 있는 어떤 내면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효과적으로 전유되어 대중들에게 전달 될 때 강력한 공감대를 가져와서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다시 거대한 집단이 주체가 되는 역사 기술에 대해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현재에 와서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모두에게 당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에서 과거를 본다면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우리는 종종 그러한 민족이라는 정체성도 이후에 교육으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과 양반들은 한 국가를 이루고 살면서도 서로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양반들은 그들을 한자를 사용하는 귀족 계급으로 인식하면서, 더 넓은 한자 문화권의 선비들과 공유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상민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었고, 그들 역시 양반들과 자신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증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한말에 개화파 지식인들의 주도로 근대적 민족주의 사상이 활발하게 전래되고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강력하게 시행되지만, 여전히 국민이라는 의식은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실 친일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의 친일파 이야기를 할 때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프랑스의 비시 정부입니다. 저는 두 가지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비시 정권과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은 몇 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에 그것도 국민 국가가 이미 형성되어서 서로 간에 전쟁도 여러 번 수행했던 그런 사람들의 문제였습니다. 그에 비해 조선의 일본 합병은 조선왕조가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식민지로 병합되었고, 그리고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35년 을사조약부터 시작한다면 40년에 이르는 한세대가 넘는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세계에서 몇 안 남은 식민지 중의 하나인 하와이에 살고 있습니다. 하와이는 원래 왕조 국가였지만 1898년에 미국에 합병되고, 1959년에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됩니다.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고 심지어 일반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고, 게다가 하와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와이가 외부에서 보면 낙원인 것 같지만, 사실 여기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다른 인종 - 백인, 동양계- 들보다 원주민들의 경제 사회적 지위는 현저하게 낮습니다. 거주 지역 역시 대체로 구별이 되고 하와이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입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호텔 등 관광업소에서 메이드 등으로 일하거나 식당에서 주방보조 등 최하층 서비스 계층에 종사합니다. 하와이의 상황은 제가 볼 때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아마 한국이 아직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한다면, 여기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와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미국 정부에 협조하는 하와이언을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민족의식이 떨어져서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우선 사실 내가 하와이 원주민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소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인종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누가 하와이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와이 왕조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카메하메하 학교에 입학하는 기준은 하와이 피가 무조건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하와이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카메하메하 학교나 하와이 주립대에 진학하면 등록금을 내지 않고 다닙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식민지의 과정이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개별 자본가, 지식인, 공무원들의 문제는 민족의 문제이기 보다 자본의 문제거나, 지식인 개인의 문제거나 행정적 구조의 문제인 경우가 더욱 많고 그런 문제로 제기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더 중요한 건 세상은 언제나 일상이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2011년을 되돌아보지요. 아마 역사는 2011년을 과거로 되돌아가려던 사익추구 집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항하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졌고 SNS의 등장으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통해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저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해라고 기억할 것입니다. (뭐 그냥 가정입니다. 정말 그렇다기 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과연 우리 현실을 얼마나 설명하고 있는 걸까요? 김진숙 위원장이 크레인에 오르고, 한 회당 200만 다운로드로 꼼수를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카의 불법은 가이 없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오늘은 어제는 그리고 금년은 그냥 먹고 살기 바쁜 한해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싸움을 대립을 움직임을 그리고 어떤 정신의 흐름을 보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사후적으로 해석된 것이고, 그러한 사후적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80년대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제도적 민주주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80년대를 독재정권과 그에 맞써 싸우는 민중 혹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고 단순화 시켜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독재체제는 대머리와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주변 쿠테타 인물들로만 유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80년대 독재체제를 유지하게 했던 원흉들을 어디까지 잡아 낼 수 있을까요? 혹은 과연 우리는 독재체제를 유지했던 원흉들을 잡아내고 싶기는 한걸까요? 우리가 그렇게 악이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정치 체제인 독재체제 - 이것은 밑에 어느 분인가가 말씀 하셨던 것처럼 정치를 국민에게 주지 않는 정체이기 때문에 식민체제와 마찬가지로 악날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를 우리가 식민지 시대를 생각할 때의 틀로써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 당시의 독재체제의 모든 기관, 즉 경찰, 검찰, 행정부 그리고 자본가, 재벌, 사업가...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 하는지 어려워 집니다.  이것은 독재체제가 나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혹은 우리가 배워왔던 것처럼 정의와 불의, 민족과 반민족, 민주와 반민주, 국가와 시민으로 대립되어서만 진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몇 젊은 한국의 근대사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식민시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식민시대 뿐 아니라 어느 시대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2-3년의 단기간이라면 정리하고 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 세대가 흐르는 시간이라면 그 시간 동안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히 자리잡는 시기이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가 모두 실제로는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특히 억압하는 일본 제국과 억압받는 한민족이라는 도식은 많은 사실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서대문 형무소에 가면 일본군 순사가 조선의 처녀들을 고문하는 인형 모형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서 고문을 하던 꽤 많은 수의 사람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기억되지 않고 있습니다.

80년대 노동자들의 고통은 독재체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자본의 증식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사용자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국제분업체계에서 개발도상국 생산기지에 무리한 요구를 하던 자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분단으로 인해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그러한 분단이 외부의 공포라는 기제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 입장에서 볼 때, 근대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그래서 어쩌면 반민특위의 좌절입니다.  그 때가 어떻게 보면 한국은 친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국가의 국민과 민족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해결되었어야 합니다. 그 때 그것이 좌절된 이후 친일파 문제는 이제는 거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좋던 싫던 많은 부분 과거의 잔재들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잔재들은 우리에게 해결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아서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친일의 행위를 비호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친일의 문제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도 부모들은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고, 그 때에도 고시가 있었고 그래서 고시를 보고 판검사를 합니다. 80년대 독재체제 안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고시를 보고 판검사를 합니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간 지금의 엄혹한 시기에서도 조직 내에서의 권력을 위해 혹은 조직 자체의 권력을 위해 매일매일을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지금의 정치 검찰도 나쁘고, 80년대 공안 검찰도 나쁘고, 일제시대의 친일 검사도 나쁩니다. 하지만 일제시대의 검사가 꼭 일제시대에 검사를 했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친일의 문제는 지금 많은 사학자들이 매달려 내온 결과물들이 최대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서 해방 이후 애국자로만 조명받던 많은 인물들의 보다 공정하게 평가 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이미 시점을 놓쳐 버린 지금에는 그저 나의 도덕적 신념을 확인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정하게 하려면 “친일”이기 때문에만 그들에게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세습 재벌, 독재를 통해 부를 축적한 자들, 모두에게 그 비난이 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 생각에서 과거를 보는 더 바람직한 방향은 피해자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체제 안에서 영문도 모르고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의 많은 피해자들이 사회 속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비명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나마 성노예 피해자들의 목소리만이 20년의 수요집회를 통해 간간히 기념비 처럼, 이제 100회가 되엇습니다. 10년이 되었습니다. 1000회가 되었습니다. - 라고 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밖의 징용 피해자, 원폭 피해자, 원폭 피해자의 2세, 등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의 입장이라면, 친일에 날선 공격을 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공감대와 지지를 얻는데 더욱 효과적이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당시에도 외면당하면서 꿋꿋이 자기 길을 갔던 사람들의 재조명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일부 독립운동가의 행적 역시 민족주의 서사 안에서 과장되거나 왜곡되거나 호도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잊혀져 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 식민 지배 속에서 억압받던 사람들을 위해서 싸웠던 많은 사람들이 잊혀졌습니다. 저는 민족주의의 관점에서는 한국 사회의 지배계층이 해방이후 친일 부역한 사람들로 채워져왔던 것 (사실 이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지 궁금합니다)보다 더 큰 문제는 그렇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싸웠던 사람들이 잊혀졌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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