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삿날이었어요. 용달을 불렀고 동네형을 불러놨는데 아부지님이 동네형 오기로 한 한시간 반 전부터 밀내 가지고

짐을 혼자 다 내려놔 놓으셨죠. 허리 좀 삐끗하셨다던데 오늘 통화할 때 어떠시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이래서 자식새끼

키워 봤자입니다. 전 저같은 딸 낳을까봐 비혼주의라니깐요, 어휴.

 

   이사 전날 영국에서 귀국, 시차적응이 안됐는지 오기로 한 시간에 곯아떨어진 동네형 대신 기말시험을 막 마친 벱후님이 와

주었습니다. 짐은 아부지님이 거의 다 날라놓으셨지만 '용달에 여자 혼자 덜렁, 그건 아니다' 라며 남자 하나라도 붙여 놔야 안심이

되겠다는 아버님의 속뜻.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죠. 섭섭해하시는 아부님 두고 떠나는 제가 너무 신나고 홀가분해서 죄송미안한

건..................

 

   이사갈 집을 하루 여덟군데 돌고 그냥 띡 찍어정한지라, 집이 어디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이 안났어요. 중간에 연락된 동네형이랑

애인님은 진즉 가서 재활용센터에서 산 살림살이 받아 배치하고 집청소하고 있었죠. 도착해서 저는 아무것도 안했어요. 아침 먹고 암것도

안먹었다고 트럭 타고 가는 길에 애인님꼐 징징댔더니 참치김밥이랑 떡볶이를 사다놨더군요. 남자 셋은 일하고 저는 앉아서 김밥이랑

떡볶이를 냠냠하는데, 일할 능력 안되니 짐 못 나르는거야 둘째치고 남들 일하는 와중에 내 배 고프다고 막 퍼묵고 있는 저도 참ㅋㅋㅋ

 

   늘 저보다 운동이 먼저여서 포풍질투를 부르는 벱후님은 이날도 검도 승급심사가 있다고 일찍 떠났어요. 그래도 주특기인 책정리는

거의 다 마치고 갔습니다. 도서관 사서 저리가랄 정도로 잘해요. 나중에 오래서 나머지 하라고 시켜야겠 싸부는 세탁기 설치에 집중,

동네형은 옷방 행거와 컴퓨터 설치 옷정리 바닥청소를 합니다. 전 뭐...화장품정리 쫌 하고.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 않은 이사.

 

   네시 반에 도착해서 여덟시 반쯤 마무리하고 동네형이랑 동네형 여친님(통칭 형수님)이랑 싸부랑 넷이 동네 껍데기집에서 한잔했어요.

그냥 손님기호대로 구우면 안되고 칼같이 코치해주시는 사장님 말을 들어야 하는 곳. 완전 행복한거예요. 마음의 고향같은 쌍문동에 돌아와

좋아하는 분위기의 허름허름한 맛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한잔 하는 저녁, 이런게 7개월만인거예요. 좋은 나머지 포풀 쐬주 들이키고

싸부랑 집에 와서 동네형이 귀국선물로 면세점에서 사다준 싱글몰트 발베니 12년산을 깠........(여자 혼자 사는데 술잔만 종류별로 열 개 넘게

챙기는 나는.....................)

 

   숙취 쩌는 아침. 싸부가 어제 다이소에서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사다놔 주었지만 그래도 부족한 살림들이 많죠. 같이 생활용품을 사러 다이소에

갔습니다.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생활용품 쇼핑은 즐거워요. 다리만 안 아팠더라면..........우리 싸부는 드릴이랑 시트지용 칼이랑 실리콘이랑

뭐랑 뭐랑 암튼 이런저런 공구를 취미로 구비하고 있는 드웝드웝한 분이시므로, 저는 싸부를 믿고 주방 리폼할 시트지도 고르고 뭐고 고르고

뭐고 시켜먹고 주문하고 그랬어요. 수납과 설치와 DIY의 제왕! 거기다 내일은 루이죠지를 데려와 주셔야 하니, 저는 그저 굽신굽신할 따름입니다.

 

  싸부도 제가 이사오니 신났나봐요, 일을 안 해-_;;; 감자탕 사다가 쐬주 한뵹 하고 밥도 볶아 먹는 저녁을 했는데, 아늑하고 햄볶하고 느무 좋은거예요.

 늘 하던 일상이었는데, 제 사고로 그게 뚝, 끊기고 7개월이 지났잖아요. 우리는 그냥 씬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뿌나 막회를 같이 봤어요.

 

   내일...이 아니지, 오늘이구만. 오늘은 동네횽이 3월의 라이온 신간 들고 놀러오면 그거 보고 같이 놀다가 싸부랑 루이죠지 데리러 갈거예요.

그리고 집들이(...와 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내일모레도 술약속이지만 원래 연말은 그런거고 제 인생도 원래 그러니깐요( ..)

아까 다이소에 있을 때 아부지가 전화하셔서 물어보셨어요, 좋으냐, 고. 해피해요, 괜히, 짐짓 더 오바해서 한껏 밝게 대답했어요. 물론 꾸미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해피하고 좋은 기분인 건 맞지만. 저는 역시 밖에서 혼자 내맘대로 내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야 행복한 사람인걸요.

앞으로의 내 인생에 그리 크게 좋거나 행복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아요. 지금의 온도, 이만큼을 유지하면서 나는 나로서, 나다운 속도와

나다운 온도로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좋군요, 행복한 밤. 내일은 루이죠지가 함께 있을 테니 더 행복한 밤이겠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뽀듯하고 따땃하고 햄보칸  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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