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 가오리

2010.07.13 09:10

걍태공 조회 수:1898

피어 위의 산책로에는 유난히 낚시줄을 드리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낮게 드리운 구름과 바닷바람 덕분에 은근히 쌀쌀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지요. 느릿느릿 걸어가며 강태공들이 물고기를 담아두는 통을 기웃거렸지만 대부분 비어있더군요.


2-30미터 앞에서 강태공 둘이 부산하게 낚시를 걷어올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느릿하고 조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피어의 풍경과 대조되어 조금은 우스웠습니다. 그들 옆에 도착해서 낚시줄 끝을 홀낏 쳐다보았어요. 갈색의 커다란 물고기가 꿈틀거리며 매달려 올라오고 있더군요. 구경꾼들이 차츰 모여드는 가운데 마침내 달려온 물고기는 피어 바닥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널부러집니다. 길이가 1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가오리였습니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가오리는 폐호흡을 할리도 없을텐데 마치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의기양양한 낚시꾼들이 가오리의 꼬리를 잡아 들어올리자 낚시바늘에 찢어진 상처에서 조금씩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핸드폰을 든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하는 가운데, 사람의 얼굴을 닮은 가오리의 피묻은 얼굴을 보면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어요.


자리를 떠서 피어를 한바퀴 돌아 그 자리로 돌아오자 구경꾼들은 이미 사라진 가운데 가오리만 외롭게 남아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취해야 한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어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도 없지만 왠지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 아마도 가오리의 얼굴이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져서 더 그랬겠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5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1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491
5978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가 담긴 글 [2] crumley 2019.05.29 1945
5977 봉준호 감독님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받으실 때 심사위원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님이 우시는 것 같았어요.. ㅠㅠ [8] crumley 2019.05.26 2556
5976 제가 스태프로 참여한 김량 감독님의 <바다로 가자>를 서울환경영화제와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어요. [2] crumley 2019.05.23 554
5975 영화사 최고 걸작 중의 한 편인 칼 드레이어의 <오데트> 초강추! (한국영상자료원 상영) [2] crumley 2019.05.21 1061
5974 2019년 어린이날 [6] 칼리토 2019.05.05 917
5973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라스트 미션>을 초강추합니다! [7] crumley 2019.03.19 1384
5972 아이패드 프로 3세대 치명적? 오류 [4] soboo 2019.02.16 1485
5971 책을 만들고 있고, 또 만들고 싶습니다. (텀블벅) [6] 사이드웨이 2018.11.22 643
5970 제가 문화잡지 '쿨투라'에 기고했던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 관한 글 올려봅니다. (링크 포함) [2] crumley 2018.09.12 892
5969 래쉬가드 [2] 칼리토 2018.08.16 1194
5968 1) 뒤늦은 <버닝> 후기 / 2) 잘 됐으면 좋겠는 배우 김동영 [7] 프레데리크 2018.06.18 1589
5967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열립니다 [14] 살구 2018.05.27 2342
5966 (한겨레 기사)이선균의 ‘아이유 뒤통수 때리기’가 불편한 나, 비정상인가요? [34] 왜냐하면 2018.04.22 2994
5965 이 와중에 다스 이시형 전무 평사원으로 발령 [7] 데메킨 2018.03.13 1695
5964 이재용 집행유예 [17] 나보코프 2018.02.05 3598
5963 김백준 김진모 구속 [3] 칼리토 2018.01.17 1405
5962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 관한 미친 기록 [10] crumley 2018.01.02 2130
5961 [하소연]503처럼 글 쓰는 사람을 본 적 있으신가요? [17] 정리 2017.12.28 1726
5960 에드워드 양의 기념비적인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초강추! (CGV 등에서 상영중) [6] crumley 2017.12.19 1875
5959 jtbc ‘차이나는 클라스’가 또! [5] soboo 2017.11.30 257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