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찍 퇴근해서 옷을 편안히 갈아입고 어슬렁대며 저녁을 먹는 건,

'그래 참 행복하다 난 흐뭇하게 살고 있어' 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요.

그런데 하루의 긴장된 일과를 마치고 유유히 느긋하게 움직여서인가

스쳐 가는 낯선 행인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죠.

나 자신을 유영하기보다는 온통 나 이외의 것들에, 타인들에.

내 시선과 촉각을 맡기고 둥실 떠다니는 기분이랄까요.

 

 

2.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며칠 전부터 봐둔 식당으로 향하는 길이었어요.

한 아주머니께서 연신 손을 흔들며 굉장히 화사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이가 저편에서 다가오길래 그리도 좋으실까 덩달아 저까지

미소가 지어지던 찰나, 맙소사.

건너편엔 아무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도? 네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아주머니를 스쳐 가면서 전 아주머니께서 중얼거리는 소릴 들었죠.

"히히히..... 히히.... 수와수서개쑤쳐툽푸푸주억주억"

 

용기를 내어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전 그러질 못했어요.

 

 

3.

고개를 돌려 볼 걸 그랬나 궁금하네, 좀 오싹하네, 어쩐지 슬프네 생각하면서

식당으로 향하던 길이었어요.

식당으로 가려면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데, 전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편 제과점의 케익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집중해서 바라봐서 맞추기' 놀이를 하던 중이었죠.

어디선가 너무도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아, 지금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도네요.

어찌나 슬프게 우는지 듣는 저까지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우는 남자 : (상대 남자의 다리를 붙들고서 무릎을 꿇은 채)

                    "미안해.... 정말..... 너무너무.....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어.....흐흐흑 너무 미안해"

남자 : (우는 남자에게 다리를 붙들린 채 우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려 하면서)

               "야 왜 이래 일어나!"

우는 남자 : (여전히 일어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어엉...어어....어흐흑...엉엉... 너무 ..너무우..미안하다"

남자 : (조금 차가워진 얼굴로 물끄러미 우는 남자를 바라보며)

            "야! 하 참. 일어나! 왜 이래!"

 

그 우는 남자는 얼굴이 몽땅 눈물로 범벅되어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어요.

술에 취해 포효하듯이 우는 게 아니라..... 흐느끼며 엉엉 우는, 그런 모습으로요.

저는 그 우는 남자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지만, 막상 사과를 받는 우는 남자의 상대는.....

꽤 냉담했어요. 한 번쯤 안아줘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물론 한 사내가 차가운 겨울의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 때는,

그 사내와 그 누군가 말고는 아무도 내막을 알 수 없는 거겠죠.

 

 

4.

저녁을 맛있게 먹고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친구를 지금부터 미래라고 할게요.

 

미래 - 중고교 때부터 친구인 나의 오래된 친구

물리 - 고등학교 동창 (미래와는 고등학교 때 잠시 친했지만 졸업 후 전혀 연락을 안 함)

아몬 - 물리의 절친이자 내 고등학교 동창 (물리보다는 나와 고1 때 잠시 친함)

멍울 - 내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자 20대 중반에 절교한 친구

 

(미래, 물리, 아몬, 멍울, 은밀은 모두 같은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미래 : "은밀아. 물리가 이혼했잖아"

은밀 : "응 알고 있어"

미래 : "얼마 전에 우연히 물리를 만났는데 물리가 그러는 거야. 자기 결혼식에 왜 오지 않았냐고. "

 

절친인 물리와 아몬이 오래전에 싸이월드를 통해서 저를 찾아냈었고 그 당시에 잠시 싸이월드로 그들과 왕래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물리가 결혼을 하게 되자 청첩장이란 형식 없이 , 물리의 미니홈피를 통해 동창들 모두 모두 결혼식에 와라 다들 모이자 만만세

식으로 다수를 향한 초청이 있었거든요. 그 소식을 전 미래에게 전했었고 미래는 저에게 함께 가볼래? 했지만 전 가고 싶지 않다 말했죠.

딱히 초대를 받은 것도 아닌 미래는 제가 가지 않으면 자신도 그다지 가고 싶지는 않다면서 우린 물리의 결혼식에 안 가기로 했었어요.

 

미래 : "근데 있지, 그래서 내가 - 응... 은밀이가 안 간대서 나도 혼자 가긴 좀 그렇고 해서 안 갔어 ㅎㅎ - 라고 했더니.

            물리가 뭐라는 줄 아니?"

은밀 : " 뭐랬는데?"

미래 : " 아니 글쎄, 물리가 - 아... 맞다. 은밀이는 멍울이 보기 싫어서 결혼식에 안 온다 그랬지.- 이러는 거야"

은밀 : "에에.....?"

 

멍울이와 나의 일을 아는 사람은 미래밖에 없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무척 가난하고 집안 환경이 불우하다고 울부짖던 멍울이를 제가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멍울의 거짓말이고 저를 물주로만 사용했단 걸 20대 중반에 알게 돼서 절교한 그 내막을 아는 건.

오로지 미래뿐이거든요.

물리의 결혼식이 끝나고 아몬과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아몬에게 물리는 결혼식을 잘 치렀느냐고 물었고 아몬은 결혼식에 대한 이런저런 후일담을 들려줬죠.

그러면서 아몬이 물리의 결혼식에 멍울도 왔다는 얘길 해줬고 저는 '그랬구나' 라고 대답했을 뿐이었어요.

 

대체,

물리는 물리의 결혼식이 끝나고서야 멍울이 그 결혼식에 왔단 간 것을 알게 된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왜 저의 결혼식 불참 이유로 생각하고 얘기한 걸까요? 게다가 멍울과 저와의 내막을 물리나 아몬은 전혀 모르거든요.....

아무리 생각하고 인과관계를 따져봐도 도무지 모르겠군요.

 

혹시 정답을 맞춰 주실 분 계신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7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54
84878 트윗의 듀게봇은 자동트윗인가요? [8] 무비스타 2012.01.05 2030
84877 링크) 게이머 자녀 확인 방법 [6] 스위트블랙 2012.01.05 2253
84876 좋아했던 사람의 어떤 모습에 반했나요. [30] 배이지 2012.01.05 4256
84875 오늘 해를품은달 [14] 보이즈런 2012.01.05 2589
84874 [바낭] 투자와 투기, 그 후일담 [7] 잔인한오후 2012.01.05 1704
84873 노래방 울렁증 극복하기. 노래 추천을 부탁드려요. [13] 겨울매화 2012.01.05 2499
84872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려는데, 판단기준은 어떤게 있나요? [10] 뚱딴지 2012.01.05 1836
84871 눈썹이 멋진 개 [2] 자두맛사탕 2012.01.05 2054
» 저녁의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어떤 수수께끼) [3] 은밀한 생 2012.01.05 1286
84869 제발 없어졌으면 하는 한국 드라마 클리셰 [2] 사과식초 2012.01.05 3636
84868 "감사의 글" ^^ [20] reading 2012.01.05 3908
84867 [바낭] 난폭한 로맨스 관련(다소 스포?) [6] 어른아이 2012.01.05 2361
84866 [바낭] 에이핑크도 1위를 하는 마당에 레인보우는... [12] 로이배티 2012.01.05 2776
84865 이렇게 시원하게 생긴 사람이 멋있죠 [4] 가끔영화 2012.01.05 3154
84864 갤럭시 넥서스 쓰시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17] 마르세리안 2012.01.05 2714
84863 혹시 잠이 안오는 분 계신가요? [5] 닥터슬럼프 2012.01.06 1964
84862 궁금]해투보느라 주병진 토콘 바뀐 걸 못 봤는데.. [1] 라인하르트백작 2012.01.06 1797
84861 앞으로 계속 일본만이 만화 왕국일까요? [5] 여은성 2012.01.06 3190
84860 설문조사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2] 나는클리셰다 2012.01.06 865
84859 사귀어 주세요 (반반프로젝트) 가라 2012.01.06 125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