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신타로. 현 도쿄도지사이자 일본의 극우정치인입니다.  그러나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쿠타가와 문학상의 최연소 수상자로도 유명하죠. 데뷔작인 <태양의 계절>은 데뷔 당시 일본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태양족'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었다 하니,  전부터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습니다. 반 윤리, 반 사회적이라니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나 무라카미 류의 데뷔작이 연상되며 그 정도 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어떤 책을 구매하던 도중 5000원을 더 채워야 해서 잠시 검색을 해보니 운이 좋게도 이 작품의 번역이 범우문고로 있더군요. 그래서 읽어나갔습니다.

다 읽은 후에는 실망했습니다. 유명세만큼 기대를 충족시키는 작품이 아니더군요. 작품이 그 당시(1955)에는 신선하거나 문제작이었는지는 몰라도 거의 60년이 지난 현재는 새로워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시대를 떠나서 재미를 느낄만한 작품은 아니더라구요. 지금은 그냥 평범한 문학상 수상작 이상은 아닌거 같아요. 물론 기대치를 다자이 오사무나 류의 데뷔작으로 삼아 그래서인지도 모르죠. 

거기다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어서 온전히 작품을 읽기가 힘들었어요. 바로 번역입니다. 기본적인 인명을 틀리거나- 오에 겐자부로를 오오에 겐사부로로(장음 표기는 이해가 가지만 겐자부로가 겐사부로로 변하는 것은...) 다니카와 슌타로를 다니카와 준타로로 표기한다던가-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직역한다던가 오탈자, 비문 등등 여태 읽은 일본 번역서 중 손에 꼽을만한 오역이었습니다.

<빼앗길 수 없는 것>은 축구 경기가 무대인데 여기서 나오는 선수들의 포지션은 50년대 기준의 축구 포지션입니다. 따라서 그 당시 포지션은 현대 축구의 포지션이 아닌 WM 포지션 또는 그 이전 포지션이므로 수비수가 센터백(cb)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CH(센터 하프)라고 표시되는 식이죠(...) 포워드진 역시 처진 형태로 내려가 IR, IL이 되고요-_-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네, 보통은 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축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도 대체 소설에서 언급되는 포지션이 어떤 것인지 알기가 힘들 것 같은데(저도 축구의 포메이션을 다룬 서적을 구입하지 않았으면 몰랐을거니까요) 축구에 관심이 없는 분은 대체 경기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점은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지만 기본적인 번역도 학부생 돌린듯한 번역에 저런 디테일한 주석까지 바란다면 사치겠지요. 50년대면 저게 맞는 포지션이니 주석을 붙여야할텐데 문고본에 주석을 붙이는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주석이야 사치라 하더라도 번역의 상태가 너무 안좋으니 읽는 내내 문장이 덜그덕거리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그럼에도 읽어나갈 수 있던 것은 원작의 힘인지 분량이 짧아서인지 의문이지만요.

<태양의 계절> 작중에서 강간, 연인교환, 연인권리를 돈 주고 팔기, 낙태가 나오고 일본식 장지문을 발기한 페니스가 뜛어버리는 묘사 등은 작중 연도를 곰곰히 생각하면 파격은 파격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별로라 느낀 것이 기대치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원작 자체의 문제인지 제 안목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빼앗길 수 없는 것>을 보니 인물관계나 심리를 보면 천상 남자 작가라는 점과 이 작품들이 오래되긴 오래됐구나(......)하는 느낌도 들더군요. 유부녀인 요코가 그 당시 결혼을 일부러 피했던 남자, 기시마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보며 결혼에 대한 후회나 놓친 남자에 대한 집착 같은 부분은, 작품의 구조 자체는 이해가 되지만 좀 낡은게 아닌가 싶더군요.

읽다보면 한국의 5-60년대 소설들이 아주 잠깐 떠오르긴 했는데 번역이 너무 나쁘니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더군요. 번역이 보통 수준이라도 되면 디테일하게 짚어가겠지만 번역이 너무 안좋으니 집중력이 떨어져 의욕이 안납니다. 번역본이 원문의 분량을 제대로 옮긴게 맞는지, 빠뜨린 부분은 없는지, 원래 문장이 이런지 의문을 해결하고도 싶지만 전 원서를 못읽어 확인을 못하겠더라구요.

P.S http://kcanari.egloos.com/3525028 이 사건은 꽤 재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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