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일본 사람들에게 황실이란 도대체 뭔가요?

일본 사회에서 굉장히 터부시하는 소재이기 때문에 학술서적이 아닌 만화나 드라마는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에 Hirohito and making of modern Japan인가 하는 학술서적이 꽤 좋은 리뷰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명칭에 대해서요. 일본 국내에선 "황제"가 아니고 "천황"이라고 부릅니다만, 우리는 일본 식민지의 역사 청산 등의 이유로 많은 경우 "일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죠.

러빙 래빗 /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있어도 이럴 때 잘못쓰기도 하네요. 요근래 타임슬립 닥터 진을 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황실에 대해 굉장히 경외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감정은 전혀 드러나있지 않아서요.
궁안에서 벌거벗고 이부자락만 두르고 있던 셜록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비교하기엔 서로 너무 이질적이긴 해요.

추천해주신 글은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loving_rabbit님과 다르게 '천황'이 더 적절한 표기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부러 존재하지도 않는 '일왕'이라는 표현을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부르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황제를 연상케 하는 '황'자를 피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한 컴플렉스입니다.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어 천황이라고 부르던가, 아니면 일본에서의 본래 발음을 따라 '텐노'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MBC가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천황의 나라 일본'이 있습니다. 아마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spdocu/emperor/index.html

덧) 셜록의 그 장면은 드라마에 나온 장면인가요? ^^;

칸막이/텐노라고 부르는데 찬성입니다. 그런데 천황은 조금 다릅니다. 일본에서 차라리 황제라는 명칭을 그대로 썼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별 거부감없이 불렀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天皇'이라는 한자어는 지상의 임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옥황상제 쯤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실제 중국문헌에 보면 옥황상제라는 뜻으로 천황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예도 많다고 하네요. 일본 황실은 애초에 천손의 후예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고... 천황이라는 호칭은 그와 무관하지 않죠. 게다가 천황제와 군국주의가 합쳐져서 일으킨 비극을 고스란히 겪은 우리니까요.

스위트블랙/"천황제 50문 50답"이라는 책이 있는데... 여러가지 측면에서 잘 정리되어 있더군요.

칸막이/..천황은 반대지만 텐노는 찬성인 이유는... 텐노라고 불렀을 때는 한자어의 뉘앙스가 한국인에게는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파라오나 칼리프, 술탄..처럼 그냥 외국어 명칭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파라오나 술탄도 원래의 대단한 의미가 있겠지만 외국인이 그걸 생각하고 부를 필요는 없지요.

http://www.yes24.com/24/goods/2693351?scode=032&OzSrank=1

일본에서는 일반인들이 천황을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고 들었어요. 일본 대중문화에서도 천황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haia/제가 덤으로 좋은 정보 얻어가네요. 감사합니다.

도너기/ 천황이라는 용어가 과거 조선에서 옥황상제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선에서는 일본에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교적 화이관으로 인해 천황을 '위황'이라고 하기도 하고 '왜황'이라고 부른 경우도 있지만 '천황'이라고 그대로 불러준
사례가 가장 많습니다. 명분 따지기로 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조선시대 유학자들도 별 거부감 없이 그냥 천황이라고 불러주곤 했다는 겁니다. 어차피 '천황'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그대로 읽어 주는 게 맞습니다. 엄격히 따지면 일본식 발음을 좇아 '텐노'로 불러 주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한자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한자 용어의 경우 자국 한자 발음대로
읽는 게 통용되고 있고(예 : 도쿄-동경, 베이징-북경), 또 텐노라는 표현보다 천황이라는 표현이 훨씬 널리 알려진 이상 소통의 편의를 위해서도 '천황'이라는 용어를 피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왜왕'이라는 인위적이고 왜곡된 용어에 반대하며, '천황'이나 '텐노'는 둘 다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소통의 편이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텐노보다
천황이라는 표현이 더 낫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그냥 신성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신성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그건 절대로! 현실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천황들이 과거에나 지금에도 현실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기타 대중매체에도 보이지 않는것이구요.

막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전의 고대국가 시대에도 천황들은 대부분 정치를 하지 않고 태자가 섭정이 되어 실제 정치를 행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고대 군주들 중에 '쇼토쿠 태자'가 가장 걸출한 군주로 꼽히는 거구요.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민족 종교인 '신도'의 최고 제사장이고, 윗분들도 언급하신대로 '천황'은 '옥황상제'를 뜻하는 제사장의 용어입니다. 시황제는 왕보다 높은 칭호를 고를때 '천황'을 거부하고 '황제'를 골랐는데 아마도 이런 '최고 제사장'의 뜻이 싫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 막말로 시황제는 무신론자같이 독신행위를 마구 저지르고 다닌 전례도 있고 -

'천황'이 중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당나라 고종 때입니다. 고종은 자신에게 '천황'을, 아내 측천무후에게 '천후'라는 칭호를 내렸는데, 이는 측천무후에게 섭정권을 주고 그 지위에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직후에 왜는 당의 전례를 따라 국호를 '일본'으로 고치고 '천황' 칭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천황이 '지토 천황'인데, 이 사람은 여왕입니다. 왕위에 오른뒤 '천황'이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먼저 간 남편 천무에게 '천황'을 추존해 올렸죠. (이 시기 개혁을 다이카 개신이라고 하죠.)

이런 전례 때문에 '천황'은 황제라기 보다는 '최고 제사장'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과거 중국이나 조선에서 이 문제가 크게 외교상의 말썽이 되지 않은것도 그래서겠죠.


그래서 저도 일왕 보다는 '천황'이라고 불러야한다고 봅니다. 이는 제사장의 호칭이기 때문에 조선의 왕보다 우월하다는 것도 아니고 - 실제로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들은 조선 통신사들에게 조선의 임금을 '황제'라고 부르며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만들어진 이름이기 때문에 굳이 과거의 역사적 불행에 얽매여 부를 필요가 없는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의 울나라는 공화국이니까요. 이미 왕조 국가도 아닌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천황이 그토록 황거에만 머무르는 것인가는, 역시 전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 쇼와 천황이 죽었을때도 울나라와 중국은 '천황의 전쟁 책임'으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앞으로는 중국의 강세로 이 문제가 외교적으로 더 커질거라고 봅니다. 물론 일본이야 지금처럼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지만
천황가의 입장은 다르죠. 이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이는것 자체가 스스로 '전범'얘기를 꺼내는 꼴이니까요.
그래서 외교관 출신 마사코 황태자비의 큰 꿈이 물거품이 된 것이죠. 이 사람은 영국 다이아나 왕세자비처럼 황실 외교관으로서 일본을 알리는것이 큰 바램이라고 공공연히 언론에 얘기를 해왔지만, 절대 안될 말입니다. 일본 황태자비가 뜰 때마다 '일본의 전쟁 책임론'이 벌떼같이 일어날걸요. 우선 가장 큰 피해국인 울나라와 중국이 가만 있지 않을테고 최근에 와서는 미국이나 유럽도 '대일 압박용 카드'로 일본의 전쟁 책임을 들춰내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