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9 02:08
도서관에서 우연히 사전정보 전혀 없이
"인간의 꿈"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여운이 계속 남아 자꾸 생각나네요.
제목에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평전이라길래
평전이면 보통 죽은 사람한테 쓰는 거니까..... 어느 정도의 먹먹함은 예상했지만 참 상상이상이네요. 슬픈 여운이 계속 남아요.
이게 80년대가 아닌 2003년에 일어난 일이었다니, 그리고 지금도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구요.
오히려 요즘이 더 언론보도도 작게 되고 서로의 밥벌이가 벅차다보니 '먹고 사는게 다들 힘들지...' 이런 생각에
더 소홀히 여겨지는 것 같기도합니다.
민주화라는 것은 2012년인 지금도 계속 계속 더욱 더더 필요한 것이군요.
협소하게 정치만을 의미하느 것이 아닌 회사와 사회와 국가를 아우르는 민주화요.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화.
1. 한국중공업이 민영화되며 요즘 '사람이 미래다'라는 기업광고를 하는 두산 중공업으로 넘어가는데 입찰 과정에서 두산중공업에
대한 특혜(법령 규정, 들러리1회사뿐인 경쟁) 등. '비리'라는 것은 단지 몇몇 사람이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고 끝나느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군요.
죽음이후 가족의 붕괴는 더욱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래는 본문내용을 기억나는대로 옮겨보겠습니다.2~4번)
2. 시신을 지키던(사측과 대립하며 장례를 곧바로 치르지 못함) 부인에게 남동생이 급한 일이 있으니 빨리 내려와보라고 합니다. 부인은 시신곁을 지켜야 하는 걸 알면서 왜 그러느냐고 가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측이 누나(부인)을 현장에서 나오게만 하면 3억원 정도를 들여 여행사를 차려주겠다고 합니다.
고인의 본가(시댁)에 가서 더러운 친절로 환심을 얻고 생활이 어려운 가족들은 그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보상금으로 1억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1억을 주면 법적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며 결국 9천 8백만원을 줍니다. (고인의 본가는 고인의 부인댁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경제적 형편을 보며 목숨값을 흥정한 것이지요.)
3. 고인의 부인과 사측에 넘어간 시댁쪽은 완전히 반목하게 되어 그 뒤로 아예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측이 시댁쪽을 회유하는 과정이 참 교활합니다. 이 가족의 붕괴는 자세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양측의 입장이 있을테니까요) 부인의 마음고생과 단란한 가정이 가장과 아들을 잃고 서로를 욕하며 반목하고 붕괴되는 과정이 이것도 사측은 모두 예상하고 유도한거겠지 싶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조직적으로 동네에 헛소문도 퍼뜨리고 (바람피었다더라), 수시로 다른 직원의 부인을 통해 감시전화 같은 것도 하고. 본가에 '아들이 돈을 많이 벌었을텐데 왜 이렇게 사냐. 부인이 다 썼나보다.' 이런 말하고.
4. 파업은 당연히 기업의 손해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협상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를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법은 정말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소송금액이 천문학적이더군요. 하루에 오천. 금세 몇 십억.
'김순천' 이라는 분이 쓰셨다는데 참 잘 썼습니다. 감성적인 부분과 객관적 사실(팩트)를 잘 짚으며 평전인데도 흡입력있게 읽었습니다. 딸, 아내 , 친구 입장으로 글을 쓸때는 짧고 담담한 문체를 쓰고 본문에서는 세부 묘사와 스토리 텔링이 딱딱하지 않지만 짜임새가 좋았습니다. 평전인 만큼 노동운동 부분이 이외의 한 평범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삶도 잘 그려졌고 그것이 더욱 비극적이게 합니다.
첫 부분이 큰 딸의 편지인데 아빠가 이런저런 선물을 해줘서 행복했던 소박한 기억들을 자세히 풀어내다가 '그러나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쓰는데 유치원 강사인 본인의 힘든 노동도 같이 쓰며 노동의 댓가에는 그 일을 하면서 받은 모멸감에 대한 댓가도 포함되어 있겠지, 라고 쓰는데 세상은 나아지고 있을까 더 나빠지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자살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정말로 '평범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크고 노력하면 나아질거라는 '희망'이 누구보다 확고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했는데 악화되기만 할 때 내가 죽으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또다른 희망으로 벌이는 일이 아닐까.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에 자신이 조금의 밑거름이 되길 바라며 변화와 희망을 바라며 목숨을 버린것이 아닐까,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침일찍 출근하여 공장 한구석에서 분신한 고인은 주변에 불을 꺼줄 사람도 없었기에 다타서 아주 작은 형체였다고 하네요.
차라리 이런 이야기가 소설이면 좋겠네요. 실화란 왜 이렇게 소설보다 비극적인건지.
2012.01.19 04:52
2012.01.19 08:49
2012.01.19 10:14
2012.01.19 10:16
사실 한참전에 이 글을 읽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외면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마냥 그럴수는 없다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괴로웠네요.
죽음으로 외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세상,
그렇게 외쳐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은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