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2 00:48
근래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만년필을 구매했습니다. 아무래도 만년필이란 물건은 차분히 앉아서 써야 하는 물건이니까요. 편의성과는 거리가 있죠. 앉아있으면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떠오르고, 볼펜으로 적어도 되지만 비싼 것을 사면 그만큼 더 사용을 자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구매했습니다.
다만 펜을 쥐는 법의 문제로 비싼 것을 샀다가 고장이 나면 안되니 저렴한 보급판을 구매하게 된 것이죠.
지인이 추천해주신 저가형 만년필 중 플래티넘 데스크펜이라는 만년필로 결정했습니다. 하필 왜 일제냐면 아무래도 같은 한자문화권이고 세필을 선호하는 경향이니 저랑도 맞을 것 같거든요. 거기다 추천해주신 만년필이 거의 일제였고요.
만년필을 구매 후 카트리지가 이미 끼워져있는 줄 알고 종이에 써보니 촉이 하얀 종이만 긁더군요. 카트리지도 제대로 끼웠는데 대체 무슨 문제인지 잉크가 안나와요
약간 짜증이 났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카트리지를 끼우는 법을 알아내고 종이에 다시 시필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촉에서 잉크가 안나와요. 제가 원시인이 된 기분이더군요. 흔들어도 보고(.....) 이거 대체 왜 안나오는거지하고 인터넷도 뒤져보고 필기법의 문제인가하고 동엳상도 보고(.......) 카트리지가 제대로 안꼈나하고 카트리지를 뺐다가 끼워보기도 했습니다. 잉크가 확실하게 들어가있더군요. 그 과정에서 제 손에 잉크가 묻었으니까요.
40분에 걸친 사투를 하다보니 전 매우 분노에 차서 만년필이란 참 불편한 물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이렇게 악전고투를 하다보니 만년필을 사람들이 안쓰기 시작한 이유를 알 거 같더군요. 볼펜처럼 바로바로 잉크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거기다 잉크를 넣는 방법도 카트리지가 아닌 다른 방식은 더 번거롭기도 하고요.
확실히 편의성만 따지면 모나미 153이예요(.....) 다만 만년필이 아직도 쓰이는 이유는 그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장점과 미학이 있기 때문이죠.
노무현의 책상에는 모나미 153이 놓여있어서, 한동안 제가 대통령이 쓰는 펜을 쓴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조선일보에서는 예전에 그펜이 국가 수반이 쓰기에는 격이 떨어진다고 깐 적이 있죠.(아직도 뭔 헛소리야 싶은 말인데 그 당시에는 이랬으면서 언급할 수 없는 그 분이 연필을 쓰니 실용이라고 치켜세우더군요)
40분에 걸친 사투를 벌이니 마침내 제 기원이 통했는지 잉크가 나오더군요. 확실히 일반 볼펜과는 달리 잉크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는 점이 매력적이더군요. 선명성이 달라요. 선명성이. 필기감도 다르지요. 선명하지 않은 볼펜은 꾹 눌러쓰게 되는데 만년필은 그렇지 않으니 술술 써지거든요.펜을 쓰다보니 느낀 것 두가지는 제가 펜을 쥐는 법 자체를 고쳐야겠는데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다는 것과 다음에는 현재 쓰는 포켓형 노트보다 큰 A3 크기의 노트를 써야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노트보단 메모지에 가깝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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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2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