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랑과 댄스와 흡혈귀

2012.01.24 22:21

catgotmy 조회 수:1885

  아무도 없는 바다의 바위가 내 무덤이다. 바위엔 아무런 표식도 없지만, 내 무덤이란 건 알 수 있다. 난 유령이니까. 지금까지 이곳에 잠들어 있었던 것 같다. 바람을 맞으며 육지로 간다. 노랗고 빨간 젤리들이 떠다닌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역 근처에 내려갔다. 살아있을 때 자주 보던 곳이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너무 어둡다는 거다. 경찰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너무 어두운데 환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하철역 근처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커피숍에도 들어가 봤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내가 찾는 사람은 없었다. 여름의 거리는 해가 강했고, 공사중인 건물이 많아서 먼지도 많았다. 무엇보다 건물들이 너무 높았다.

 

 

  높은 건물에 들어갔다. 특이하게도 건물의 가운데가 뚫려있고, 에스컬레이터가 빈 공간을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그런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고 내리는 건 재밌었다. 최상층에 올라가서 편의점에 들렀다. 커피를 마시면서 건물 밖을 내려다봤다. 찾는 사람은 없었다. 전면이 막힌 유리라서 높다는 게 무섭지 않았다.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에 살던 그때 그대로의 상태다. 거실의 커텐을 치고 칸막이를 닫고 잠을 잤다. 인적이 드문 골목이라 조용하다. 일어나서 근처의 학교로 갔다. 여름방학의 학교엔 아무도 없었다. 잔디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나뭇가지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다. 가만히 서서 나무와 잔디를 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잠이 들자, 칸막이 너머의 어둠으로 밀려들어갔다.

 

 

  세계가 멸망하고 있었다. 이미 멸망하고 잔해를 처리하는 건지, 멸망해가고 있는 건지 판단할 수는 없었다. 원인을 찾으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왜냐면, 등 뒤에 공룡이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무면허로 차를 타고 정신없이 도망갔다. 쫓아오는 적은 강했고, 무엇보다 수가 너무 많았다. 포기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달려서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도착했다. 바다에는 상어가 살고 있었다.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바다로 떨어지는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려는 적의를 지닌 표정이었다. 끝까지 싸웠다. 바다에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죽는다는 결말은 같았다.

  웃기는 얘기지만, 죽은 다음에 선택지가 있었다. 상어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고문을 견디는 것. 고문을 견디면 보상이 있고, 상어로 태어나면 페널티가 있다. 문제는 그 보상과 페널티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상어로 다시 태어났다.

 그 후의 이야기는 모르겠다. 상어는 어떻게 됐을까. 고문당하던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공룡은 뭐지?

 

 

  넌 알겠냐?

 

 

  여자는 날 노려본다. 난 도망간다. 하지만 난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비디오테이프 되감기로 만나기 전의 길거리로 돌아가고, 두려워하면서 같은 건물의 계단을 올라가게 된다. 노려보게 될 뒷모습이 두려우면서도 같은 자리로 반복해서 돌아가고, 반복해서 도망친다. 

 

 

  도망쳐서 사다리를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간 밤의 옥상에는 허공에 걸린 액자가 있다. 액자 너머엔 공간이 있다. 액자를 통해 넘어간 세계는 같은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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