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곧내, 입니다.

   저는 원래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꾸역꾸역 글도 써제끼고 자아성찰도 쩔게 하고 음악도 배우고 싶어하고 그림도 배우고 싶어했고,

취미에 대한 지극한 애착과 무언가를 새롭게 배워보고 싶은 욕구가 꽤 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만.

   병원에 너무 오래 누워있어서 그런가요, 사고당한 뒤 머리가 포맷된 걸까요. 모든 게 싹 휘발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읽고 싶지 않고, 영화를 봐도

재미가 없고, 글도 못 쓰겠고, 그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아요. 다만 남아있는 것은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 정도인데, 운동해서 땀 빼고 난 뒤 찾아오는

느즈른한 쾌감은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 영역이니 제외해야 할 듯도. 게다가 이건 재활의 일환이니.

 

   설 연휴 동안 애인님이 일을 하나 시켰어요. 슬로건 만드는 건인데, 별 거 아니고 언제나의 저였다면 대충이라도 끄적여서 몇 개 만들어 냈겠죠.

근데 그 별 것도 아닌 게 죽어라고 하기 싫은 거예요. 개요도 읽기 싫고, 생각도 하기 싫고. 그래서 벱후에게 '너 일 좀 해라, 채택되면 너 나 5:5임ㅋㅋㅋㅋ'

이런 삥뜯기에 가까운 조건을 내걸어 떠넘겼는데, 성실하고 착한  벱후님은 약속한 설연휴 마지막날인 어제 메일로 작업물을 보냈죠. 오늘 낮에

애인님과 집에서 같이 브레인스토밍을 했는데 우와, 진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나 이런 사람 아닌데. 애인님 등 뒤에 찰싹 붙어서 피로군 놀이나

하고 애인님이 떠올린거 끄적끄적 정리하고 다듬고 있는데, 어흑. 저도 이런 제가 싫어지는 겁니다. 내 빠릿반짝쌩쌩하던 브뤠인 다 어디갔얼...난 망했나봄...

 

   책이나 좀 읽어야지, 싶어서 꺼내 놔도 손이 안 가요. 아무 것도 안 궁금하고 알았던 것도 안 떠오르고. 식욕 성욕 수면욕에만 충실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게 또 체질에는 맞아서 아아 평생 돈 안 벌고 이러고 살았음 좋겠다, 싶기도 하고. 사람이 게을러지고 아둔해지는 건 정말 한순간인 듯해요. 다시 팽팽하고

날카롭게 벼려질 수 있을까, 난 이미 너무 게으른 돼지가 되어 버린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없는 건 스스로 잘 알고 있고, 때가 되어서 다시 움직여야 하면 하게 되겠죠. 여지껏 그래 왔으니까요. 닥치면 다 해,

하게 돼 있어! 이러고 당분간은 게으른 돼지 모드로 살래요.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안 살라그래도 전혀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저 술을 줄이고

좋은 걸 챙겨먹고 운동과 재활을 꾸준히 하는 걸 목표로 삼아서 생활할 따름. 홈쇼핑에서 헬스자전거를 샀는데, 절대로 빨래걸이로 만들지 않겠어요!

 

.......이게 뭐야 자기반성도 아니고 또 자기합리화만 쩔게 했어...난 안될거야 아마...

망글 읽으신 여러분들 죄송. 늦었지만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십셔 꿉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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