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학생인권조례의 문제로 시끌시끌하네요.
교육과학기술(뭐 이렇게 길어요?)부 장관님은 이 조례를 막고자 법원에까지 무효소송을 하신댑니다.
옛날 좋은 말만 있던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게 해도 엇나가는 애들은 쑥쑥 엇나갔던 지라,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르신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분들은- 그리고 저도 전혀 그렇지 않은 시대에 학교를 다녔으니까요.

 

우선 인터넷 덕분에 조례 원문을 구해봤습니다. 후르르륵...
그냥 좋은 말들로 가득 채워져서 보기엔  멀쩡해보여요. 일단 몇 가지 주요한 (쟁점) 사항을 골라보면 이렇네요.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두발 복장 자유화, 소지품 검사 금지, 종교의 자유 보장,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 등등.

 

사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는 데는 귀가 엄청 혹하네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촌지 안 가져온 애들을 애꿎게 두들겨 패고, 그러면서도 교장선생님이 시찰 나오면 아주 학생들을 사랑하는 듯이 오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저딴 게 선생이냐,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생각하니 갑자기 치가 떨리네요. 갑자기 대우가 좋아져서 이상했는데, 어머니께서 촌지를 줬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욕했지요. 겨우 아홉살이었는데 말입니다...

 

어쨌던, 차별에 출신민족이나 장애, 가족상황, 경제적 지위가 포함된 건 참 잘된 일인데 임신/출산, 성적 지향 등이 포함된 걸로 논란이 일고 있네요.
일부에서는 이 조항이 임신 혹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에이, 조항을 아무리 읽어봐도 Let's 임신라거나 동성애란 글귀는 없는 걸요. 일부 극심한 분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 조례 통과시켰다고 대가 끊어지고 남자며느리 들이게 될 일은 없을 거 같아요.

 

그런데 이런 반대 시추에이션 어디서 본 거 같아요. 그냥 언급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예 없는 것 처럼 해야 한다는 식.
2004년에 동성동본 결혼이 허용되었을 때, 어르신들을 주축으로 대거 반대 시위가 일어났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들고 있던 팻말이 똑똑히 기억나요. "동성동본 결혼 허가하면 사촌끼리 결혼한다." 라고요. 또, 동성동본끼리 결혼하면 99% 기형아가 태어난다는 주장도 있었어요. 그 후로 오래 지났지만 아직은 그렇게 되는 조짐이 없는 거 같네요.
뭐 그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20년대에는 각 지역의 양반들이 야학을 습격해서 두들겨 부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놈들이 공부하면 양반들과 같아진다는 게 이유에서였지요. 뭐 지금은 양반, 상놈 신분 구분이 없으니 그 분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건데... 옛날에도 쉬쉬했을 뿐이지 다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거 같아요.
중학교 때 갑자기 학교에 안 나오게 된 아이가 있었는데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지요. 여기에 더해 성인용 소설에 나올 거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얽혀서 돌곤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홀연히 그 아이가 다른 학교 교복을 입고 와서 교문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는 모습을 봤지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옛날에도 다 있었겠지요. 연애하고, 그러다가 임신까지 하게 되는 애들이. 하지만 다 낙태를 했을 겁니다. 90년대만 해도 이런저런 낙태가 굉장히 흔하게 벌어졌지요.
그게 지금은 상대적으로 덜 죽이고 잘 드러날 뿐인거죠.
...조선시대 때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는데, 한국이라서 다를 바 있겠어요?

 

동성애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전 어떤 분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우대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제까지 그들을 무시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길 했는데 솔직히 동의합니다.

 

또, 폭력 말인데요...
저만 해도 어린 시절 선생에게 맞고 지내는 게 당연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엎드린 아이들 엉덩이를 하키채로 먼지 나게 두들겨 팼습니다. 뺨 맞고 출석부로 머리 내리치고 기타등등.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애가 맞고 붕- 날아가는 것도 봤네요. 한 도덕 선생님은 자기가 젊었을 때는 교탁을 뛰어넘어 이단옆차기로 애들을 걷어찼다는 것을 자랑하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회인이 한참 아래인 고딩 때린 게 뭔 자랑인가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옛날엔 얼마나 더 심했겠어요. 학생주임 선생님은 위풍당당하게도 치도곤 하나 들고 무슨 수문장처럼 교문에 버티고 서서 복장 위반한 애들을 잡아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두들겨 패곤 했습니다. 애들은 맞아야 공부 잘 한다는 선생님들도 있었습니다만, 분명 그거 유럽의 중세 시대 때도 있었습니다. 마누라를 힘차게 때리면 때릴 수록 그녀의 영혼이 천국에 가까워진다는 드립이.
근데 그게 좋은 교육 환경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 아직도 조용히 책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복도로 불러내 막대기가 부러지도록 손목을 때렸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맞은 이유는 당번을 불렀는데 금방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책 보면 외부와 차단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뭔가 다른 이유로 화가 나 있었어요. 저같은 경험 하신 분들이 어디 한 둘이겠냐만 싶지만요.

 

그리고 종교...
미션 스쿨 다닌 사람으로서는 쌍수들고 만세 부르고 싶어집니다. 아놔, 그 기나긴 시간 예배시간에 억지로 참여하고, 종교 시험 봐서 성적에 들어가고, 신앙부흥회 끌려다니는 게 진짜. 제가 종교가 없었다면 우왕 신기하다-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기도 하고. 가끔 선생님들이 툭툭 내뱉는 종교 편향적 발언을 들을 때 마다 조낸 감수성 가득한 사춘기 시절 샤발샤발 욕을 하기도 했고. 그래도 지금처럼 소심했던 저는 예배 전날 일부러 밤을 새워서 당일 예배 시간에 쳐자는 식으로 소극적인 저항을 했습니다... 물론 선생님들에게 찍히긴 했습니다만, 나름 모범생 코스프레를 했기에 무사했습니다.
특강에 왔던 어떤 강사는 공룡은 인간과 같이 살았고 그것이 전설의 드래곤이라고 주장했던 창조론자 강사 선생님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마치 개똥벌레가 빛을 발하는 식으로 공룡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하셨지요... 그리고 발에 밟힌 흔적이 있는 삼엽충 화석을 보여주며 인간과 삼엽충이 공존했으며 지구의 역사는 3만년도 안 된다고 했지요. 그거 말고도 참 많았지만, 어쩌겠어요.

 

물론 좋은 선생님들도 아주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다들 기억 한 자락 씩은 있을 거여요. 이상한 선생님들, 나쁜 학교.
게다가 선생님들이 학생을 차별하는 것 이상으로 학생이 학생을 차별하죠. 그게 더 문제여요. 그래서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조례가 있었더라면? 아마 별다른 게 없었을 거여요.
언제나 좋은 제도가 있어도 악용하는 것들은 언제나 악용하고, 필요한데도 덕을 못보곤 하니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게다가 인권조례가 없던 시절, 착실하고 성실한 교육을 받아온 저 자신도 이렇게 삐딱하고 반사회적이며 툭하면 빈정대는 잉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조례가 있던 없던 안 될 애들은 안 되고 잘 될 애들은 잘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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