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걍 잡담입니다.

현대사를 뒤벼보고 있습니다. 유신이 나쁘다는 개념이야 어렴풋하게 있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쁜지는 몰랐죠. 어렸으니까요. 그러다 이번에 공부 좀 하고 있습니다. 아직 진행중이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정말 조용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용하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분들도 있으시겠죠. 그 때의 신문을 읽어봤어요. 많은 기사가 있고 많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들이 모두 한 사람에게서 나온 듯했어요. 한 사람의 목소리와, 그 메아리들만 있는 거죠. 그래서 무섭도록 조용했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유신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 즈음에 벌어졌습니다. 그 때는 바로 박정희 정권의 말년이었고, 이 즈음의 박정희는 어디서 많이 본 것만 같은 익숙한 인상을 풍깁니다. 시집갈 생각을 안 하는 큰 딸 걱정을 하며 결혼하라고 잔소리 하고, 그런 고민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요즘도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버지들의 모습이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인간적인 모습인 거냐, 하겠지만... 아닙니다.
있잖아요. 고집 세고, 극단적이고 만날 화 버럭버럭 내는, 이를테면 자식은 사귀는 사람이 있기는 커녕 사귀는 사람도 없는데 빨리 결혼하라고 닦달하는 바로 그런 아버지입니다.

반론? 의견 개진? 안 통해요. 사정이 이렇지 않느냐고 하면 화를 내면서 밥상 뒤엎죠. 기록적인 한파에 피자를 주문하면서 음식이 식었다며 남의 집 귀한 아들의 얼굴에 피자 마사지를 해준 어떤 꼰대 아저씨처럼요.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누군가를 떠올릴 거여요. 그게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옆집 아저씨가 될 수도 있고, 선배님이나 선생님일 수도 있죠.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 결국 자기 의견이고, 그걸 주장하는 거니까요. 좀 시끄럽거나 답답하긴 하지만...

 

하지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건 큰 문제죠.
나라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요. 때로는 논쟁도 벌어지고 다툼도 벌어지고, 그게 당연한 거여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게 만드는 거죠. 그게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이겠어요?

 

유신은 그런 시대였어요. 너무나도 '조용'했지요.

당시 신문에 박대통령이 하는 말이 가득히 실리고 온갖 교시(?)도 내려졌지요. 한국은 한국 나름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그러니 유신이고 장기집권을 해야 한다고. 김종필 국무총리는 여기에 변죽을 울렸죠,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을 만들어낼 영도자니까 계속 집권해야 한다고.당시 끊임없던 반대시위는 모두 나라를 뒤엎으려는 검은 흉계를 품은 공산주의자의 짓이라고 해요.

정말 이 시대와 비슷한 때를 고른다면 바로 연산군 말기여요.
실록을 보면 연산군이 왜 폭군인지 여실히 알 수 있죠. 그의 말년이 바로 이랬어요. 사람 사는 세상인데 목소리가 오직 하나 뿐이어요. 임금이 하는 말과 그 메아리가 울릴 뿐이죠. 왕으로서는 정말 편했을 거여요, 아무도 반대를 안하고 내가 말하는 대로 다 이뤄지니까. 하지만 정상이 아니죠. 그러니 반정이 일어나고 쫓겨났던 거죠.

 

이런 이야기를 한참했더니 친구가 말하더군요.
워낙 박대통령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육영수 여사가 암살되고 난 다음 그리 되었다고. 배우자가 눈 앞에서 총을 맞아 죽었는데 사람이 걍팍해지고 극단적이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으냐 했지만... 이게 무슨 공민왕과 노국공주입니까.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공민왕은 노국공주 죽기 전부터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공민왕은 어릴 때 원나라에서 생고생하면서 같이 지냈던 신하들을 연저수종공신으로 봉했죠. 헌데 그 공신 37명 중에서 제 명에 죽은 건 단 둘 뿐입니다. 나머진 죄다 공민왕 손에 죽었죠. 패턴은 다 똑같아요. 처음에 너 밖에 없다고, 남들이 뭐라해도 난 널 버리지 않을꺼임 하며 부비부비 총애하고 권력을 줘요. 그러다 또꼼 지나면 저것이 기고만장하고 날 없애려고 반란 계획했다고 죄다 죽여서 씨를 말립니다. 나중에 신돈도 그랬죠. 하여간 공민왕은 인간불신의 밑바닥으로, 신하들에게 조낸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만 따듯한 나쁜남자 차고남이었어요.

 

전 박정희란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렇게 칭찬하는 구국의 영웅, 놀랄만한 결단력이고 자시고 간에 그냥 꽉 막힌 고집쟁이 아저씨였던 거죠. 상처의 아픔 때문에라고 쉴드를 쳐도 우리나라 처음의 대법원장이었던 김병로 선생님은 아내가 인민군에게 살해당했어도 인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고 국가보안법을 반대했는 걸요. 김 선생님은 대인배잖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박정희는 명색이 대통령이었습니다. 싫은 사람 없애버리고 싫은 소리 안 듣고 싫은 짓 안 하고 나 좋은 것만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단 말이죠. 어린애도 아니고.
그러니까 결국 끝이 그렇게 되었나 생각도 듭니다. 연산군이나 공민왕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요 근래 나꼼수다 비키니다 진중권이다 온갖 소리가 많고 시끄럽습니다. 여기서 싸우고 저기서 싸우고 그래서 피곤하고 짜증도 나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거든요.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있다면 그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그러니 다툼이 생기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도 말고, 이걸로 의견 통합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염려하지 말아요.  원래 인간 세상이 다 그런거니까요.

 

뭔가 딴 이야기를 쓰려다가 이렇게까지 흘렀습니다만.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빕니다.

 

내일 글 예고 -
짜장면 먹다가 진주가 나온 횡재 야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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