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일본은 학원민주화투쟁과 안보투쟁(일본이 미국 주도의 냉전에 가담하는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규모 투쟁)등을 통해 학생운동이 거대한 기세로 솟아오르던 시기였다. 이러한 학생운동은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운동'이라 불렸다. 이 중에서도 적군파는 '무장시가전 - 전 단계무장봉기'를 제기하며 이를 통해 '세계혁명전쟁'으로 나아가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우 과격한 섹트(분파)였다.

 

적군파는 자신들의 신념대로 1969년 11월 4일 다이보사스 고개에서 군사훈련을 감행한다. 그러나 다음날 5일, 훈련 중이던 53명 전원이 체포되어 적군파는 조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들은 군사훈련을 통해 수상 관저를 무력으로 점거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다이보사스의 치명적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 바로 '요도호 사건'이었다.

 

적군파의 좌경맹동주의 방식은 일본의 학생운동에 큰 상처를 남겼다. 평양으로 간 9명의 적군파들은 북(조선)에 체류하면서, 북(조선)의 사회주의 건설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 적군파의 좌경맹동주의, 그리고 쁘띠부르주아적 급진성과 관념성으로 인한 과오를 크게 뉘우쳤다. 적군파 간부였던 다미야 다카마로가 지은 <우리사상의 혁명>이라는 책에는 이러한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요도호 납치의 총책임자였던 다미야 다카마로는 1970년 3월 당시, 거사(?)를 위해 일본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내일의 죠'다."

 

 

 

라는건 잘모르겠고

 

권투 밖에 모르는 바보 ㅠ_ㅜ

 

그리고 죠는 이나중 탁구부에서 다시등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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