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 오랜만입니다.

추운 날씨가 풀리면서 야금야금 몰려오는 섣부른 봄기운에 살짝 몸살을 느끼며 인사드립니다.

 

술을 마시지도 사람을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그저 회사와 집, 집과 회사와 운동을 오가는 심플라이프의 정점에서 저는 최근에 중동국가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한국 사람들 쉽게 가기 어렵다는 말은 들었으되, 전화와 이메일로 해결 안되는 문제를 사람이 직접 가서 마무리 짓고 오는 업무의 일환이었으나 모름지기 확신했던 출장지보다 반신반의 하던 출장지로의 이동이 더 애가 타고 마음도 끌리는 법이지요.

 

비자를 발급받기가 무척 까다로워서 한 달을 끌다가 내일 출국해야 하는데 비자가 오늘 나오는 상황에서 자정에 가까운 밤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날아가 배웅나온 거래처 사람들과 새벽부터 이스탄불 거리를 헤매다가 들어간 카페에서의 커피 첫모금도 그렇고, 다시 본격적인 출장지인 다음 나라로 넘어가기 전까지 또 자정에 가까운 비행시간을 기다리는 와중에 그들의 배려로 근교의 사원에 잠깐 다녀왔을 땐 내 사주의 몇 가지 살 중에 역맛살 하나는 기막히지 않은가 라는 자족에 일상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던 순간.   

 

다음 출장지의 구체적인 지명을 거론하기는 뭣하면서도 왠지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하하하.
오늘 그곳에서 찍은 사진중 몇 장을 출장지의 거래처에 첨부해서 보내며 새삼 즐겁고 신기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인데, 새벽 4시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가던 여정과 거리감이 인천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것과 맞먹던 익숙함을 확인하려 차창 밖으로 자꾸만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던 기억이 나네요. 대사관에서 해주신 충고대로 그 곳 공항에서부터 머스트해브아이템이어야 한다던 것을 목적으로 집에서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렇게나 집어 가방에 구겨넣었다가 사용한 보라색주름실크스카프가 제게 참 어울리게도 나온 몇 장은 근 2년 만에 찍은 사진이라 확대해서 보기 두려웠는데 생각보다 많이 늙지 않았네요. 호호호.

 

그 곳에서 이틀 동안 묵고 계속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시간도 빠듯하고,무엇보다 그 나라 전통과 정서상 (외국) 여성을 보는 시각이 호기심보다는 호승심에 가까워 사뭇 짐승적인 눈빛을 가진 대다수 남성들의 접근 때문에 바깥 외출은 가급적 삼가는 처지여야 해서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거래처에서 직접 집으로 초대해 저녁으로 대접한 케밥과 러시아산 못지 않은 농도와 강도를 자랑하는 가정식 보드카의 달고 강렬한 향취는 아직도 혀뿌리에 남아있습니다. 설 지나 출장 이전까지 바깥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술도 마시지 못하다가, 이국에서 예기치 않게 마시게 된 술의 감흥이 저를 오히려  취기에 이르지 못하게 하더군요.

 

고수머리를 한 그의 아내와 이제 십삼개월 된 역시 고수머리를 한 어린 아들을 위해 온 사방에 담요를 둘러 아이의 개구진 장난에 혹시라도 일어날 사고를 대비한 지극히 생활스러운 아파트 내부 풍경에서 따뜻함을 느꼈다면 그것도 감상일까요. 작년의 출장지 어딘가에선 온통 대리석으로 치장한 5성급 호텔을 예약해 준 적이 있으나 선잠으로 일관하다 깊게 잠들지 못했던 기억이고 보면, 역시 생활의 냄새가 주는 안도와 포근함은 이국이라고 다르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고요.  예전 한국의 80,90년대를 누비던 대다수의 차량들이 21세기에 대로변에 현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너무 활기있고 기동력이 좋아 놀라고 말았던 시내 한복판 네거리의 교통상황을 보며 정말 박력있다고  느꼈습니다. 매력이 아닌 박력을 낯선 나라 낯선 도시 길 가운데서 느껴본 것도 제겐 처음이지요.

 

다시 터키로 돌아와 인천으로 입국한 이번 출장여정은 온통 자정 가까운 비행시간에 새벽 도착의 부적절한 타이밍이었지만 언제나 저는 비행기 안에서 드는 잠이 최고 달아요. 서비스 정신과 상냥함이(라고 쓰고 사실은 미모가) 부족하여 항공사승무원이 되지도 못했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저는 고문관이 되었을까요. 탑승하고 이륙한 뒤 삼십분에서 한 시간 안에 잠들어 기내식도 먹지 않고 영화도 보지 않으며 착륙 직전까지 온통 잠을 자는 저는 역시나 그 대기권 특유의 불안전한 기류와 진동 그리고 부유하는 느낌을 꿈이 아닌 현실로 꾸며 내내 눈감고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한다는 것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하면서, 나도 누군가(들)에게 그렇듯 보고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재정비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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