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담] 신이 된 관우 (2)

2012.03.05 21:53

LH 조회 수:2055

역사적 인물 관우의 내력은 이미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는 굳이 자세히 설명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정리하자니 꽤 길기도 하거니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신'으로서의 관우이지 역사 혹은 소설에서의 관우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다뤘으니 굳이 여기서 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혼자서 천 명의 병사를 당해낼 수 있다던 그의 뛰어난 무예에 얽힌 고사는 참으로 많고도 유명하니 - 한 사발의 술이 채 식기 전에 적장의 머리를 집 앞 텃밭의 무 뽑듯이 쑥쑥 가져오는 뛰어난 무예의 소유자였다. 뿐 만이랴, 인재 콜렉터였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건만 의형 유비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약속된 부와 권력을 바닥 떨어진 짚신 마냥 버리고 떠났으며, 그러면서도 적벽대전 이후 탈탈 털린 조조를 마주치자 그 이전 받은 은혜 때문에 그를 못 본척 보아넘겼고 오나라의 손권 앞에서도 꿀리지 않고 막말을 뱉아낸, 참으로 의리 넘치고 당당하고 기개있었던 인물이었다.
여기에 비단결 같은 수염으로 대표되는 외모까지 받쳐주고, 결정적으로 - 참으로 스타일 구기지 않게 잘 죽었다. 부정축재나 스캔들로 스타일 구긴 적도 없고, 게다가 그가 죽은 이후로 장비, 유비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제갈량의 피를 토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촉은 막장테크를 타게 되니, 죽어서 더욱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한 마디로 삼국지의 촉 진영의 아이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이미 남북조시대때 관우는 신으로 모셔졌지만, 이는 오히려 조조나 유비보다 늦은 감이 있어 딱히 특출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다가 당나라 즈음이 되면서 스물스물 인기를 얻게 되고, 특히 청나라가 들어서고 나서, 관우가 자신들의 건국을 도왔다는 썰을 풀었고 이후 관우의 신앙이 널리 퍼졌다... 라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관우가 가장 긴 칭호를 받은 것은 명나라 천계제 때요, 만력제는 자신이 관우의 의형인 유비라는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삼국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서 각종 유희와 잡극, 소설로 나왔으니 관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온 중국을 뒤덮게 된다. 결국 이전부터 쭈욱 사랑을 받아왔으며 이게 지금까지 이어진다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곤 하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기나긴 중국 역사상 의협심 넘치는 인물이 참 많아서 관우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하고 많은 인물 중에 왜 하필 그가 이처럼 막대한 인기를 끌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건 아마 부산 사직구장에 가서 왜 야구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데 이유가 어디 있겠나. 그냥 그렇게 이해를 하자.

따지고 보면 관우는 만인에게 사랑받을 조건을 여실히 갖춘 인물이었다. 우선 유교. 유교에서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것이 바로 충과 효인데, 관우의 일생에서 어떻게 충을 빼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관우는 전장에서도 춘추좌씨전를 즐겨 읽었으니, 이 역시 유학자들이 그를 참 좋아할 만한 구석이었다. 그래서인지 유교 쪽에서는 관우에게 문형성제(文衡聖帝)라는 칭호까지도 내렸다. 심지어 공자와 나란한 랭크에 서서 문무이성(文武二聖)으로 일컬어지기까지 했으니, 문화대혁명 이전에는 한 마을에 공자묘와 관제묘가 하나씩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불교는 또 어떤가. 원래 관우와 불교는 전혀 인연이 없을 듯도 하지만 또 그런 것도 아니니, 이런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손권과 여몽의 손에 죽임당한 관우는 원한에 가득 차서 목이 잘린 채 적토마를 타고 "내 목을 내놔라!"하면서 이승을 떠돌며 해코지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옥천산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름높은 고승 보정대사(普靜大師)가 "그렇다면 너에게 죽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태클을 걸었다고 한다. 그걸 들은 관우는 대오각성하여 불교에 귀의하여 수호신이 되고, 마침내 관제보살(關帝菩薩)이라는 칭호마저 덤으로 얻었다. 덧붙여 관우와 함께 죽었던 관평, 주유의 원혼들도 함께 떠돌아다니다 함께 귀의했다고 한다.

 

도교에서는 앞서 나왔던 관우의 길다란 칭호가 바로 그의 신으로서의 직위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속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번에도 자격이 충분하다. 보통 이런 데 숭앙되는 것은 다들 제 명이 죽지 못하고 이승에서 원한이 덕지덕지 남아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무당들이 모시는 사람들로는 최영장군이 있고, 남이장군과 임경업 장군이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렇게 험하게 죽었으니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겠거니, 하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관우도 원한 가득한 죽음을 맞이했다.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싸우다 져서 아들 관평과 더불어 목이 베였으니, 도원결의 3형제 중 가장 먼저 세상을 하직했으며, 여기에 더해 촉나라가 망했을 때 그의 후손들이 방회에게 싸그리 멸족을 당하기까지 했다. (사실 아들 관흥(이던가)의 후손은 살아남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지만) 죽은 사람에게 원한이 있다면 골수에 사무치고도 남을테니. 그러다보니 관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여몽은 관우의 혼백이 씌여서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조조에게 바쳐진 잘린 목이 태연하게 인사를 해서 조조가 놀라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여몽의 여씨 성과 육손의 육씨 성을 가진 사람이 관묘에 들어가게 되면 대번에 이유 없이 죽어넘어진다는 전설마저 있다. 그만한 힘을 가진 신이라면야, 무당들이 그를 힘써 모실 법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무엇이 진짜 관우냐고 따지는 것은 대단히 의미없는 일이다. 심지어 그의 생일마저도 5월 13일이냐, 6월 24일이냐 이야기가 엇갈려서 각자 원하는 대로 골라 축제를 벌이는 와중이니 다른 이야기는 오죽하겠는가. 그저 이렇게나 사랑을 받았고, 모두가 아꼈던 신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워낙 인기가 있다보니 여기저기 끌어다가 우린 관우와 친하다! 라는 이야기를 지어내다보니 이렇게 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사랑이 지나쳤던 걸까. 관우 신화는 내용도 양도 너무 많다보니 황당한 것도 있고 어색한 것도 있으며, 기상천외한 나머지 어이가 없어지는 이야기까지 있다. 그리하여 이런 각종 매체에서 다뤄지는 관우는 때로는 위대한 영웅이었다가, 또 어느 때는 시골 할머니에게 피터지게 두들겨 맞은 덕에 평생 얼굴이 벌개지는 부작용에 시달리는 등, 어느 때는 자기가 가장 잘난 무장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쪼잔하고 오만한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겠고, 그거라면 이걸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오나라 군대에게 관우가 적군에게 둘러싸여 절체절명인 순간, 하늘에서 홀연히 "이제 그만 돌아오시오."라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승천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관우의 정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고, 잠깐 인간세상에 들렀다는 것인데... 얼마나 관우가 죽는 게 싫었기에 이런 이야기까지 만들어졌을까. 우리 관우는 죽지 않았다! 워낙 하늘의 장수라서 잠깐 이승에 출장나왔던 것 뿐이고 이제 다시 돌아갔다! 라는 것이니,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관우팬들의 정신승리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태클을 하나 걸자면, 관우는 - 너무나도 당연히 - 무신(武神)이지만, 그와 동시에 재물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상인들이 돈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신이다. 지금이 무슨 사농공상을 차별하는 시대도 아니고 상업이 천한 직업인 것은 아니지만, 관우와 상업은 참 안 어울린다. 지금 재래시장 가판대에 관우가 앞치마 두르고 청룡언월도 짚고 서서 호객행위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자니 전혀라고 할 만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보통 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관우가 정직하고 신의가 있었다기에 상인들에게 숭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참으로 말이 안 된다. 관우가 상인이 되었다면야 언제나 에누리 없이 물건을 밑지고 팔았을 테니 성공은 커녕 파산의 지름길을 걷지 않았겠는가.
차라리 문지기를 베어 넘겨가며 다섯 관문을 돌파하듯이 거침없이 관세 및 장애물을 걷어치우고 자유무역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상업의 신으로 숭상된 거라면 차라리 납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주판의 발명자니까 그렇다고 우기던가.
관우가 살아있다면 자신이 이렇게 누리는 인기를 좋아했을까? 글쎄,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헷갈리며 멘탈붕괴를 겪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살아서 많은 고난을 겪었고 죽어서까지 이런저런 부침과 극성팬에게 시달리는- 관우의 육신과 혼은 이제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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