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생기기 전부터 인간을 사로잡아온 감정은 아마 호기심과 두려움일 것이다. 아직 만물의 영장이라고 객기를 부리기 전, 날고기를 먹고 살이 에이는 듯이 추운 바람을 맞으며 잠들면서도 인간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과 미처 가보지 못한 저 먼 곳을 반쯤은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호기심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문질렀으리라. 그리하여 아직 가보지 않은 곳, 그리고 그 곳에 있는 것에 대한 열망은 인간을 뒤흔들어왔으니, 인간들은 그렇게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두려워하고, 궁금해했으며, 그래서 탐험을 시작했다. 산을 너머서, 강을 따라서, 그리고 바다를 건너서.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기록을 했으며 돌아와서 다른 이들에게 적절한 뻥을 뒤섞어 전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정말 보고 온 것도 있겠지만 그걸 넘어 누가누가 더 이상한 걸 봤는 지를 겨루어보는 별 쓸데없는 경연대회가 벌어지게 되었으니, 하여 세상에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상하고 더 별난 만물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게 된다. 그리스에서는 오딧세우스가 그랬고, 제노바에는 마르코폴로가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이 세상 모든 별난 것의 백과사전인 산해경이 있다.

그래서 옛날 중국에서 이야기 되어진 이상하고 별난 나라들 중에서 하나를 꼽아보자면 여인국이 있다. 말 그대로 여자만 사는 나라이다... 그런 나라가 있다고 믿어졌다. 여자국이라는 곳은 나라 사람들이 전부 여자인데, 어른이 되면 황지(黃池)라는 곳에 가서 목욕을 하는데 그러면 곧 임신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태어나는 것은 여자아이도 있고 남자아이도 있는데, 하지만 남자아이는 3년만에 죽어버리고 여자아이만 어른으로 자라난다고 했다. 이 나라가 있는 곳은 서남쪽 어딘가 먼 곳, 혹은 섬이라고 했다. 아무튼 아주아주 먼 곳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이 없을텐데도 왜 그런 데가 있다고 믿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여인국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게 사람들로서는 늘 궁금했던 모양이다. 중국 사람들은 삼한사람에게, 삼한사람은 일본사람에게 여인국을 혹시 알지 않느냐고 물어댔다. 우리 주변엔 아무리 찾아도 없지만 혹시 저 사람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채로. 비록 산해경이나 어디에든 구체적인 설명은 없긴 한데, 이 때 여인국의 여자들은 모두 예쁘다는 옵션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리 굳이 찾으려 들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산해경 말고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삼한의 옥저에서 한 노인이 동해바다 어딘가에 여인들의 나라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적고 있다. 그곳의 여인들은 우물만 들여다봐도 아이를 가지게 되어 그네들의 삶을 이어갔다고 하던가. 그래서 신라 석탈해의 어머니는 여인국의 왕녀였다고도 하고, 아니면 일본을 두고 여인국이라고도 했다. (물론 당연히 사실은 아니지만.)
여인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궁금해한 것은 이후로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나라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유학자 신유한이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를 만나 나눈 대화이다. 아무래도 외국에 온 것이고, 또 일본이 훨씬 동쪽에 있는 나라이다보니 신유한은 신기해서 이거저거 궁금해서 질문을 마구 퍼부어댔다. 그런 와중 여인국의 소재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자 아메노모리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기 일본은 온갖 물길이 다 통하는 곳인데, 그런 게 있다면 천 백년동안 어떻게 한 번도 못 봤겠습니까."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했을 신유한과 달리, 아메노모리의 대답은 불퉁했다. 아마 이런 질문을 허다하게 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기에서 끝냈다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아메노모리는 보충설명을 덧붙였다. 팔장도(八丈島)라는 섬이 있는데,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열 명 중에 남자는 두 셋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인 정도로 굉장히 성비가 불균형한 동네라서 여인들의 동네(女子鄕)라는 말도 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게 아마 바깥에 잘못 전해져서 여인국이라고 불리게 된 게 아니게 되었냐고 이야기 한다. 한편 독도지킴이로 유명했던 안정복도 팔장도를 여인들의 나라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일본 및 주변에서는 꽤 유명했던 모양이다. 왜 그곳이 유별나게 여성 비율이 높았느냐고 한다면... 글쎄, 아마도 바다이다보니 남자들이 뱃일하다 많이 죽어서가 아닐까? 아니면 유별나게 여자가 많이 태어났을 수도 있겠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팔장도는 일본 발음으로 하치쥬지마인데, 동경의 먼 남쪽에 있는 섬이다. 한 때 일본의 하와이라고까지 불렸던 관광명소긴 하다. 뭐 지금까지도 여자의 나라라고 불리는 건 아니긴 하지만, 그럼 아주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게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반대로 남자들만이 사는 나라도 있긴 했는데 이건 사람들이 굳이 찾으려 들진 않았다.
. 한편, 신유한은 여기에 덧붙여 하나를 더 물어봤다.

"산해경에 나오는 기괴한 모습을 한 무리들을 혹시 본 적이 있나?"

이번에도 대답은 심드렁했다. 기껏해야 여기에 오는 해외 사람이란 러시아와 서양의 사람들인데 옷하고 말이 다를 뿐이지 별다른 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끊었더라면 대단히 상식적인 선에서 대화가 마무리지어졌을 테지만, 아메노모리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런데 10년전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배가 표류해왔는데, 배에 탔던 사람들 중에서 한 남자가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긴데 묶지도 땋지도 않고 풀어헤쳐 이마를 덮고, 곡식을 먹지 않고 소금만 두 되 먹어대는 나트륨 식성을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말이 통하지 않아 대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채 죽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보다는 더욱 충격적인 게 그 사람... 혹은 괴물의 다리가 모두 파란색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릎에 뼈가 없어 꼭 대나무 같은 몰골이었다나.
...결국은 있다는 소리다.
과연 그 괴물은 무엇이었을까.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온 피부가 푸른빛인 외계인 드레나이가 등장한다. 그거와 비슷하지 않나, 하겠지만 좀더 닮은 이도 있으니 바로 산해경에 나오는 정령국(釘靈國)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반신은 아주 멀쩡한 사람이지만, 발에 신발 대신 말발굽이 달려 있으며 털도 부숭부숭 돋아나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이상한 것이 가득한 것이 바로 산해경이니, 살펴보는 재미가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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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쓰다가 데치려던 청경채를 푹 삶아버렸습니다. 어헝헝 내 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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