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려받은 것으로 삽니다. 유형 무형의 재산과 돌봄이 그렇고 요새는 유전자 차원에서 설명할 수도 있죠.

우리는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고 자식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태어난 나라나 이웃을 선택하는 일도 드물죠.

물론 배우자를 고르고 이민을 가서 새로 살 수 있지만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어쩌지 못하지만 무언가와 함께 갈 수 밖에 없고, 사람이 점점 살림이 늘듯이 공동의 유산은 점점 커집니다.


디센던트의 주인공 맷 킹은 물려받은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이 없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에게 유산과 가족의 문제는 의미를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골치 아픈 숙제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하와이 땅을 팔지 않으면 어디다 쓰겠습니까.

이건 파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팔 수 있는지 머리를 썩힐 '처리'의 문제일 뿐입니다.

가족은요? 아내의 죽음을 처리하는 일, 남은 가족을 건사하는 일은 그냥 가족이니까 짊어져야 할 골치아픈 부채일 뿐입니다.

피할 수 있다면 누가 이런 짐을 지겠습니까.


그러나 맷은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를 점차 깨닫게 됩니다.

가족이 정말 소중하구나~ 하는 막연한 잠언이 아니고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모든 구성원은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이슈들로 연결이 되어 있고

그걸 함께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합리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책임감과 애정을 느끼게 되는 거죠.


장인이나 '그 자식' 역시 가족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편파적이 되기도 하며 짐을 끌고 가더란 말입니다.

그게 옳은 지를 떠나서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점을 깨닫고나니 맷이 하와의의 유산을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환금성 있는 자산이 아니라, 그곳에서 공동체가 유지해왔고 다음 세대의 운명을 상당부분 결정 지을 정체성에 대한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죠. 

그제야 비로소 그는 진작 했어야 할 고민을 시작합니다.



그가 제주도 강정마을의 유산을 해군에 팔아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영화 초반의 그였으면 별 고민 없이 팔았을 겁니다. 돈 좀 받아서 더 좋은데 가서 살면 되겠죠.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을 겪은 영화 후반의 그였다면??


그건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도 그가 땅을 팔지 않기로 결정한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함부로 낙관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친척들 간의 노골적인 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맷은 사람들과 유산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람들과 함께 알아가려고 노력했을 거란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낱 같지만 그들이 미래에도 공동체라는 유산을 남겨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게 되는 거고요.

동시에 그게 큰 돈보다 가치있는 일인지는 여전히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면서요.


하나의 언어는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되느냐가 기준이라는 점에서

원래 제주도 방언은 서울의 표준어와 말의 뿌리가 닮은 다른 언어라고 봐야 맞습니다.

제주도 사람들과 서울에 사는 저는 여러가지로 삶의 모습이 다르죠.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공동의 자산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우리 공동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지를 함께 고민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요. 이게 제주도만의 문제도 아니고요.


아니라고요? 현실적으로 한반도의 정치세력이 제주도를 군사력으로 정벌했기 때문이라고요? 

그것도 진실입니다만, 그런 관계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현실이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을 겁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점점 더 또렷해지는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서로를 공동체로 느끼게하려면 더욱 더요.

해군 기지나 구렁비 바위 뿐 아니라 우리가 문제를 강압적으로 종결짓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고 고민해서 해결해왔다는 역사를 유산으로 남겨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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