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퇴근시간대는 얼추 지났지 싶은데 왜 도로는 아직도 이렇게 꽉꽉 막힌 걸까요. 다행인 건 대교 한중간이라는 거죠. 한강 야경을 감상하며 이 나라엔 정말 자동차도 아파트도 많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금 보이는 아파트들이야 어마무지하게 비싸서 언감생심 엄두도 안 나지만, 글쎄요, 매일 밤 이렇게 꽉꽉 막힌 도로를 봐야한다는 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아요.

나에겐 매력이 없는데 남들에겐 매력적인 것들이 많죠. 아까서부터 제 옆에 앉아 핸드폰을 붙잡고 복학생 선배의 넘치는 매력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고 계신 풋풋하니 어여쁜 새내기 아가씨만 봐도 그래요. 아니, 멀리서 보곤 쪼르르 달려가 '선배님, 안녕하세요' 하면 씩 웃으며 '그래' 하는 게 멋있다나요. '선배님, 밥 사주세요' 문자해도 '그럴까?' 하고, '선배님, 뭐하세요?' 라고 해도 '그냥 있어' 하고 만다는 그 복학생의 어디가 멋있다는 건지. '아 근데 또 가끔은 완전 자상하시다니까?' 하는 이 아가씨는 이미 그에게 폭 파져든 게지요. 나쁜 남자라서 멋있다데요, 내참.

도대체 왜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인기있는 걸까요? 아니, 착한 사람들에게 칭찬은 못해줄 망정 나쁜 남자가 이렇게나 각광받을 건 또 뭐냐는 말입니다. 뭐, 저야 좋지요. 가뜩이나 살아남기 힘든 이 정글 속에서 저도 제 짝을 얻어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나쁜 남자의 매력은 뭘까 궁금하긴 합니다.

주위를 잘 관찰해보건대, 나쁜 남녀의 매력은 일단 자신감이죠. 목매지 않잖아요.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아요. 사람들은 그걸 쿨하다 표현하더래지만 저는 그걸 무심이라 표현합니다. 네, 상대에게 무심해요. 정말 마음이 없어서는 아니라고 그들도 항변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대에게 무심해질 수 있다는 것, 상대가 그 무심함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는 건 일단 연애에 있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죠. 상대에게서 조바심을 이끌어낼 수 있잖아요. '이 사람은 내가 전부구나, 너는 나 아니면 갈 데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권태기의 시발점이 된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꽤나 강력한 무기에요. 물론 무기니까, 이걸 마음대로 휘두르다간 상대에게 여기저기 상처를 입히게 되고요. 하지만 일단 이걸 갖고 있는 한은 내가 먼저 상대한테 굽힐 이유가 없어요. 사자가 토끼한테 발톱 한 번 슬쩍 내밀면 토끼는 바르르 떨잖아요? 뭐, 호랑이한테 내밀면 호랑이는 코웃음 칠지 몰라도요. 그런 거죠, 연애에 있어서 무심함이라는 건.

벌써 내릴 때가 다 되었네요.


각설하고 어쨌든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들도 코끼리 앞에선 재롱도 떨고 하더라는 거에요. 발톱 다 뽑고, 이도 다 뽑고 - 무슨 동화였나, 비슷한 우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 온갖 애교와 재롱을 다 피우며 선망한 눈망울로 토끼에게 애정을 갈구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나쁜 남자란 나를 좋아하지 않거나, 딱 그만큼만 나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럽디다. 그러니까 우리, 내게는 세상 가장 착한 남자/여자 만나 세상 가장 착하게 살자고요. 끄읕.



붙임) 아, '나쁜' 남녀의 진짜 포인트는 아까 방금 그 서슬퍼런 발톱 슬쩍 내보였다가도 바로 지금 무심히 털을 핥으며 내게 도토리 한 알 쓱 내미는 거였는데 황급히 마무리 짓다 빼먹었네요. 도토리가 참 꼬숩기도 하지만, 내가 다람쥐도 아니고, 아니 혹 다람쥐라고 하더라도 평생을 도토리만 먹으며 살 수는 없지 말입니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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