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2 03:15
이안감독의 94년 작인 "음식남녀" 리메이크판 예고편입니다. 3월 23일 대만/중국 동시개봉.
와호장룡 이전까지 한국에선 이안 감독의 대표작은 "음식남녀" 였죠. 영화관에 가서 볼 나이는 아니어서, 나중에 "추수", "결혼피로연" 까지 모두 비디오로 보았습니다만 저는 "음식남녀" 보다는 "결혼피로연" 을 훨씬 재미있게 보았어요. "음식남녀"는 유명세에 비해 뭔가 심심한 느낌이었고 "추수"는 데뷔작이라 그런지 좀 어설프고 투박했어요. "결혼피로연" 의 유머는 지금 봐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고 깔끔하고 세련됬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상 어쩔수 없이 영어와 중국어 대사가 섞여 나오는데 이 또한 영화의 중요한 개그 포인트 중의 하나죠. 예전에 중국어 공부할 때 이 영화의 중국어 대사 부분을 수십번씩 돌려 보면서 따라 할 정도로 제겐 봐도봐도 질리지 않은 영화에요.
아, 얘기가 딴데로 새버렸네요. 여튼 음식남녀 리메이크 판은 飲食男女─好遠又好近 (음식남녀-멀고도 가까운) 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습니다다. 방금 텔레비전에서 시사회에 이안 감독의 부인이 참석했다는 뉴스를 보고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예고편을 찾아 보았는데...아, 영화관 가서 보고 싶은 맘이 전혀 안생기네요 ㅠ_ㅠ 감독도 배우도 시놉시스도 하나도 모르는 백지 상태입니다만 예고편을 보면 원작의 통통 쏘는 유머 대신 손발 오글오글한 억지 감동 코드를 집어넣은 느낌이 역력합니다요. 주사부의 과거 얘기가 상당 부분인 것 같던데 원작에서 주사부는 대륙 중국에서 국민당 따라 대만으로 왔다는 설정이었죠? 예고편만 보면 전쟁때 대륙에다 두고 온 여자친구랑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큰 줄거리인 것 같습니다만..으아 이거 너무 억지 티가 나요! 중국과 합작해서 만든 영화인것 같은데 그렇다 해도 이렇게 대놓고 촌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ㅠㅠ 슬쩍 보이는 정치색도 짜증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음. 그나마 명작 반열에 드는 얼마 안되는 자국 영화를 가져다 망쳐 놓은 예감이 풀풀 납니다.
얼마 전에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개봉한 "愛" 라는 영화를 봤는데 대륙 중국 여자 역의 조미랑 대만 남자 (아 남자 배우 이름은 모르네요;;) 랑 하루만에 눈이 맞는 부분이 어찌나 민망하던지. 대륙 중국의 검열 때문이란거 대충 짐작합니다만, 이런 식이라면 한류드라마 수출은 당분간 아무 걱정 없겠습니다요 (...) 여기서 또 새삼 "결혼피로연" 이 떠오릅니다. "결혼피로연"에서의 대륙중국인과 대만인 간의 미묘한 갈등 구조와 심리가 게이 영화라는 큰 주제에 가려 언뜻 잘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잘 보면 은근히 구석구석 잘 표현되어 있죠.
아쉬움에 "음식남녀" 얘기를 조금 하자면, "음식남녀"라는 제목만 듣고 야한 영화라고 상상했다가 보고선 낚인 기분이었다는 감상이 10년도 전에 여기 저기 들렸었죠. 영화 잡지 같은데 실린 리뷰중의 상당수가 "제목만 보고 이상한 상상을 하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라고 했었어요 ㅋㅋ 내용은 뭐 건전한 가족드라마였지만. 막내 딸네미가 사고친건 그 당시 기준에선 조금 파격적이었을지도..오천련도 멋있었지만, 막내 딸네미 역할의 배우도 내숭인 척 하면서 할거 다 하는 얌체 역을 귀엽게 잘 했어요. (배우 이름이 王渝文 입니다. 근황 찾아보니 쌍둥이 아들 둔 아줌마네요.)
아버지가 옆집 손녀 도시락 만들어 주다가 옆집 딸이랑 결혼하는 게 음식남녀의 깨알 웃음 포인트 가운데 하나였는데 웬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