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 고구마

2010.07.19 21:06

Laundromat 조회 수:5119

고구마를 한 소쿠리 사왔습니다.

해피쿡 직화오븐이 있었다면 하고 간절히 생각했지만 전 그저 보잘것없는 가난뱅이 자취생입니다.

 

전자렌지에 구우면 신기하게 단맛이 다 빠져나가서는 종이 뭉쳐놓은 듯한 맛이 나지요.

가스렌지는, 전 가스렌지를 잘 안 켜서 이상하게 거부감이 갑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조리할까요.

 

아항

싱크대 한 구석에 쳐박혀있던 전기밥솥이 보입니다. 백미, 죽, 현미 이런 기능 없이 오로지 꾹 누르면 취사, 올리면 보온의 버튼만 갖고 있는 놈입니다. 얘한테는 전원을 키고 끄는 개념도 없습니다. 코드를 콘센트에 꽂으면 turn-on 이자 보온이요, 누르면 취사, 취사가 끝나면 보온, 콘센트를 잡아 빼면 turn-off입니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아트키친 미니멀리즘의 정점을 보여주는 제품이죠.

 

고구마를 정성스레 씼습니다. 저는 껍질까지 먹으니까요.

그리고는 왠일인지 베란다 한 구석에 쳐박혀있던 보온밭솥 통을 대충 물로 부신뒤에 고구마를 넣고, 고구마가 잠길정도의 물을 붓습니다.

(근데 대체 왜 보온밥솥통이 빨래 너는 거 외에는 일절 사용않는 베란다에 가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

(보온밭솝인지 밥솥인지 밭솥인지 마구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코드를 꼽은 뒤, 취사를 누릅니다.

 

잠시 듀게질을 합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데 달큰한 내가 납니다. 이게 무슨 냄샌가 깜짝 놀랍니다. 

건망증이 심한지라 고구마를 밥솥에 않혀놓은걸 깜빡잊고 있었습니다.

밥솥에서 부글부글 소리와 함께 김이 올라옵니다. 저김을 쐬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해서, 냉큼 달려가 김을 조금 쑀습니다.

집에서만 쓰는 못난이 뱅그르르 안경에 김이 서려 좀 불쾌하더군요.

 

한참을 지나도 계속 취사입니다. 계속 부글부글 끓고 김이 납니다.

 

언제나 익을까 조바심이 나서, 앞에서 기웃기웃하다가 그냥 뚜껑을 열었습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쇠젓가락으로 가장 위로 솟아있는 놈을 푹 찔렀습니다. 이미 뜨겁게 끓여진 놈을 다시 확인사살. 고구마를 두 번 죽이는 일이죠.

한 놈 가지고는 성이 안 찹니다. 옆에 있는 놈, 저 밑에 숨어 있던 놈, 서넛을 그렇게 더 푹푹 찔러서 완전히 푹, 먹기좋게 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런, 물이 좀 많았어요.

고구마가 완전히 잠길정도가 아니라 자작자작하게만 넣었어야 했나 봅니다. 고구마는 쌀이 아니니까요.

 

맛있게 익어졌나 먹어볼려고 하는데 너무 뜨겁네요.

식혔다가 이따가 먹어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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