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대 중후반이 되면서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 예전부터 이야기가 잘 통하던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더니 시댁 식구 불평만 늘어놓더라.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적당히 맞장구만 치게 되더라. 그러다가 나중에 아기를 낳고 나선 아기 얘기만 하게 되는데, 아기는 귀엽지만 뭔가 예전처럼 말이 잘 통하는 친구는 간 곳 없고 한 아기의 엄마로만 남은 것 같아 아쉽기 그지 없다. 심지어 싸이월드 프로필 사진도 아기 사진을 걸어 놓으면 어떡하니. 내 친구는 어디 간거니.


전 막상 절친이 이런 식으로 멀어져본 기억이 없었어요. 우선 결혼한 친구들이 그 나이땐 많지 않았고, 막상 좀 일찍 결혼한 친구 몇몇은 애초에 가족 지향적인 친구들이라; 이야기의 소재가 약간 바뀐 것외엔 큰 변화도 없었고요.

그리고 제가 딱 한국을 떠나는 타이밍이 친한 친구들이나 입사 동기들이 결혼, 출산 러시가 시작될 시기라;;


그래도 저런 이야기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서 접해볼 기회는 꽤 있었고, 그런 이야기 소재가 평준화 되면서 특별했던 기억이 지속되지 않음으로 아쉬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근데 요즘 전 이러한 소재 평준화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와는 다르게 오프라인에서 저는 참 재기발랄;하고 참으로 활발한 사람입니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대화하는 거 좋아하고, 사람을 재미나게 하는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와서 달라졌어요;

제 수다와 유머를 발휘하기엔 제 영어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이들을 웃기기 위해선 저 스스로가 과장된 행동과 표정을 이용하거나, 스스로를 낮추는 유머 밖에 할 수가 없어요!

미묘한 말장난은 물론이오, 재미난 수다조차 힘듭니다! 

그저 전 지금 흘러가는 대화를 따라가는데 급급하거나, 농담을 100%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이것이 농담인 것만은 알아차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얘기를 들은 마냥 웃음 짓는 눈치만 늘어갈 뿐이죠.


그리고 사실 이야기 소재 자체가 겹치는 게 없는 것도 이유가 큽니다. 


캐나다 사람들이 정말로..정말로 열광하는 하키는 전 여전히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사실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요! 하는 것도, 보는 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키 경기에 열광할 때 전 그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여기서 나고 자란 게 아니라서 밴쿠버에서 일반적인 상식에 속할 만한 지식도 부족하고요.

관심 있는 분야래야 장르 문학, 새로운 스마트 기기, 게임과 영화인데, 이게 또 간호사들의 수다에 등장할 만한 대화는 별로 아니죠. (가끔 아이폰 기능 제대로 모르는 사람에게 기능 설명해준 적은 있긴 합니다.)

음악은 또 한국 인디 음악을 주로 듣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일 대중적인 외국 가수래야 라디오헤드, 트래비스 정도인데 좋아하는 가수가 케이티 페리나 마돈나 정도가 아니면, 이걸로도 대화를 끌어가는 데는 무리가 있고요.


할 말은 없고, 또 다른 사람들이 수다를 떨어도 그냥 그 수다를 따라가는 데에만도 너무 에너지 소모가 크기도 하고, 

아직 신규 간호사라 친한 사람도 얼마 없어서 수다 자체가 큰 부담이 되어서 쉬는 시간엔 전 구석에 앉아서 아이폰이나 들여다보고 그랬어요.


한국에선 일 중간에도 장난, 농담을 동료들에게 해대고, 퇴근하면 사람들 모아서 놀러다니는 걸 낙으로 삼았는데, 

여기 와선 대화도 없이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쳐다보고 있고, 일이나 말없이 묵묵히 하다가 누가 말 걸면 그저 잘 웃는 그런 동양인 남자가 되어버린 거죠.


근데!


아내님이 임신하고, 아내님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대화 소재가 생긴 거죠. 누군가 제게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으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요.

아내님이 입덧이 무지 심했기에 그것도 또 소재가 될 수 있었고, 요즘에 한창 임신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입덧이 많이 나아진 것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초음파 결과에 대한 것도 대화의 소재가 되었고..


네, 요즘에 아내님과 뱃 속의 아기 덕분에 쉬는 시간과 일하는 틈틈히 대화의 소재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미 아가를 둔 사람들의 실질적인 조언도 좋고, 또 어떤 동료들은 자기 아가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아가 용품과 옷 같은 것도 준다고 합니다. ㅜㅜ 

이번 주말에 받으러 가기로 했어요.


일반적인 대화의 소재가 생긴다는 것이 이리 맘이 편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고민할 게 아니라, 그냥 그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특별한 것도 필요없고 일반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저로선 참 좋습니다.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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