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남대문 70년 전통 꼬리곰탕집 은호식당에서 애인님에게 생애 첫 꼬리곰탕을 얻어먹었습니다. 어째 못 먹어봤냐면,

우리 엄니는 고깃국물 안 좋아하셔서 안 만들어주셨고, 전 모르는 음식에 대한 도전의식따우가 없는지라 고깃국물 먹을 일 있으면

무난한 갈비탕이나 설렁탕을 초이스하곤 했기 때문이죠.


   하여튼, '오오 이게 말로만 듣던 꼬리곰탕이라는 거냐!' 하면서 암냠냠냠 흡입하는 절 보던 애인님이 '내가 소꼬리 사다 고으면 

이 맛이랑 똑같이 만들 수 있다!'라며...언제나처럼 근자감 넘치는 요리예고를 때리심. 천사소녀 네티의 도둑질 예고랑 비슷한거


  해서 그 날 이후로 틈만 나면 꼬리곰탕 타령을 하길래, 한우집 운영하시는 듀게의 ㅂ님 어머님을 통해서 소꼬리를 엄청 저렴한 

가격에 구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ㅂ님 댁에서 소꼬리찜 얻어먹고 딩가딩가 놀다가 아이스박스 한가득 담긴 꼬리뼈를 들고 귀가했는데,

그날따라 꽐라가 된 저의 주사에 말려서 욱한 애인님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세우고 우이천에 아이스박스를 집어 던지는 만행을 저질렀죠!

(네 음...그러니까 저희는 둘 다 좀 많이 돌+아이 커플..)

  본때를 보여주겠어! 라는 마음이었다지만 그는 이내 ㅂ님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대요, 마침 그날 비가 와서 우이천이 불어나 있었고, 

아이스박스는 깨지지 않고 둥둥 떠 있었다나. 그는 첨벙첨벙 들어가서 아이스박스를 건져 돌아와 우리집 냉동실에 그것들을 꽉꽉 채워넣고 갔습니다.


  다음날 눈을 뜬 전...아이스박스 낙하 사건이 기억나지 않았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고양이들 새옴마님께 등짝스매싱급의 설교와

사건개요를 전해 들었는데, 으음.....점심시간이 훌쩍 넘어 애인님에게 전화해 뿌잉뿌잉 모드로 포풍애교를 시전했어요. 보고싶어으워우엉! 왈왈! 

이 양반은 좀처럼 없는 저의 뿌잉뿌잉질이 싫지 않은지 삐진 기색 하나 없이 일 끝나고 가겠다고 대답하더이다. 


  애인님은 일곱 시쯤 유명하다는 해장국 하나를 포장해서 오셨고;; 둘이 홈플서 잔뜩 장 보고 와인 세 병을 쟁여 띵가띵가.

둘 다 좋아하는 드라이한 칠레 와인에 토마토 모짜렐라 카프레제와 초밥을 안주로 웅냠냠냠하는 동안 곰솥에다 뼈 일부를 꺼내 핏물을 빼기 시작했죠.

카톡으로 어제의 소동을 전해 들은 ㅂ님은 주워올 건데 왜 던졌으며 그걸 또 하루도 안 지나 끓이고 있냐몈ㅋㅋㅋㅋ미친 사람들같으닠ㅋㅋㅋㅋ 

이런 느낌의 반응을 보여주심. ㅇㅇ 그렇지 우리는 미친 사람들이양 쿠하하하하 이러면서 사이좋게 놀다가 잤습니다. 


  다음날 본격 꼬리곰탕 타임 시작!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아닌데, 다만 어마무지하게 오래 걸리는군요. 애인님은 이거 만들면서 '석유 곤로 시절에는

이거 만들면서 석유 한 통 다 썼다' 드립을...아저씨 그게 대체 언젯적인데요...?


1. 밤새 핏물을 뺀(틈틈이 물을 두세번 갈아주었죠) 꼬리&도가니를 한번 우르르 끓여 나머지 불순물을 제거

2. 통후추, 무(애인님은 파란 부분, 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통양파, 통마늘, 대파를 넣고 초벌 끓이기 1시간 반

3. 향신채를 건지고 어제 사온 삼계탕 재료(엄나무, 인삼, 계피, 그 외 어쩌구저쩌구)를 넣어 끓이기 시작,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다섯 시간.


해서, 지금이 딱 다섯 시간째. 이제 불 꺼도 돼요!!!


대충 요론 꼬라지. 24cm짜리 냄비라 말이 곰솥이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애인님은 볼일 때문에 네시에 나가면서 '여덟 시에는 반드시 불 끄고, 내일 아침에 내가 와서 고기 찢고 기름 걷고 나눠서 포장할 테니 너따위는 손 댈 생각도 하지 마!'

라는 엄마멘트를 날렸습니다. 넵, 저는 그냥 삼계탕거리만 건져 내고 손대지 않았어요. 뭐 한다고 깝죽댔다가 다음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무슨 잔소리를 얼마나

들으려고!!!

 

  어쨌든 애인님은 오늘 이걸 푹 고으면서 '이거 먹고 얼른 나아야 할 텐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새옴마님은 이렇게 말했죠.

'사실 당신이 먹어여 하는 건 곰탕이 아니라 쑥과 마늘인데=ㅗ=' 라고요.

  


  우짜든동, 다사다난했지만 애인님의 정성이 담긴 곰탕이 우여곡절끝에 다 되어 가는 듯합니다(그분이 끝났다고 하기 전까지 이 요리는 끝난 게 아니에요-_;;).

엄마가 곰탕 안 끓여준 이유를 알 듯합니다. 오래도 걸릴 뿐더러 고기냄새 질색하는 양반은 만드는 내내 고역이겠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7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59
49 박성현이란 사람, 제가 보기엔 사망유희 1층은 맡아도 될듯한 사람인데요? [8] chobo 2012.11.07 4035
48 먹거리 잡담-이 뼈의 정체가 뭘까요? 맛있는 코코아는? [7] 해삼너구리 2012.11.03 2646
47 (D-47 디아블로3는 생활) 경매장 관련 질문, soboo님께 도움 요청. [2] chobo 2012.11.02 1121
46 (펌) 영국 수상관저 수렵보좌관, 내각개혁의 돌풍에 희생되다. [5] 유우쨔응 2012.09.21 2396
45 [아이돌] 오렌지 캬라멜 '립스틱', BtoB 'WoW', 김완선 신곡 등등 잡담 [10] 로이배티 2012.09.12 2820
44 폴 매카트니의 내한공연이 성사될 가능성은?? [17] Ruthy 2012.08.22 2610
43 [바낭] 참으로 괴상한 아이돌, 티아라와 광수 아저씨 잡담 [23] 로이배티 2012.06.28 4943
42 [동영상] 끝난건가요 - 김현철 [2] miho 2012.04.12 771
» [주사 얘기&요리바낭] 곰탕이란 참...하염없고 하염없고 하염없는 음식이로군요. [9] Paul. 2012.04.06 2638
40 오늘 프런코 + 강성도 스타일 프로그램 [12] Jade 2012.03.25 3007
39 Pixie Lott ft. GD&TOP - Dancing On My Own [4] 은밀한 생 2012.03.22 1931
38 [바낭] 카라 신곡 2곡 뮤직비디오 + 자매품 레인보우(...) / 요즘 하이킥 잡담 [8] 로이배티 2012.03.01 1676
37 지금 이 시각 현재 내가 저지르고 있는 일상의 소소한 만행 또는 기행 [11] Koudelka 2012.02.23 2487
36 인터넷뉴스 댓글 "추천" 알바 (?) [2] 에스씨 2012.01.12 900
35 [바낭] SBS 케이팝 스타를 봤습니다 + 아이유 덕에 인기 가요에서 김광진을 다 보네요 [10] 로이배티 2011.12.04 4181
34 [바낭] 오늘 나는 가수다 조용필 특집 + 카라 인기 가요까지 1위 + 브라운 아이드 걸스 '하악하악' [18] 로이배티 2011.09.25 3863
33 [주의] 원링스팸! [2] DIC 99 2011.09.02 1781
32 축구한일전 [8] 103호 2011.08.10 1919
31 [건프라사진재중] 저 아직도 건프라 조립 합니다(...) [10] 로이배티 2011.07.29 1591
30 [자동재생] 이거 다 먹을 수 있는 분?ㅎ [3] 자본주의의돼지 2011.07.23 162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