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를 보며 든 생각들.

2012.04.17 01:56

Damian 조회 수:1026

1. 이번 선거는 제국의 역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진보개혁 연대는 이명박 덕분에 몇 차례 소규모 전투와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였지만, 정작 중요한 한 판에서는 우왕좌왕하며 온갖 추태를 보이다가 자멸하고 말았지요. 전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표를 주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당해도 싸다고 봐요.

2. 도저히 질 수 없었던 선거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원인은 수많은 사람들이 잘 지적하였으므로, 여기에서 이를 반복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어쨌든, 미래지향적이고 명확한 비전, 중도 좌우파를 흡수할 수 있는 적절한 포지셔닝, 또한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대선주자를 내세워 어필하지 못하면 8개월 뒤의 본게임에서도 결과는 보나마나에요.

3. 박근혜는 정말 대단한 정치인입니다. 도대체 그녀가 한 일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여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으나, 어쨌든 언행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화시키고 단점을 최소화시키는 능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절제된 언행에서 느껴지는 우아함과 품위, 정치적 판단력 및 결단력,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능력 모두 당대의 그 어느 정치인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에요.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김대중 정도나 될까?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역시 박근혜의 수에 말려들어 자체붕괴하였다는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그의 실체가 실은 이명박과 별로 다를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축한 강력한 아우라와 이미지는 거의 깨기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4. 중앙일보 기사가 사실이라면, 지난 총선 기간 내내 안철수가 보인 뜨뜻미지근한 태도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안철수는 뭔가 결심을 하기에 앞서 관련 분야에 대한 리서치를 깊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대선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번에는 그 리서치의 일환으로서 총선의 과정과 결과를 관찰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 자신이 높게 평가하는 인재근, 송호창에 대해서는 지지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히되 그 이상의 발언은 자제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투표독려를 하는 정도에서 그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겁니다. 안철수는 그 자신이 총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바이어스임을 잘 알았고, 따라서 그 영향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야당의 역량과 국민의 정치의식, 보수 대 진보의 점유율 등 모든 요소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거 결과, 우리나라에서 보수 대 진보는 정확히 50:5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야당연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구도에서 야당 전체를 흡수하고 영남 지역의 표를 조금만 더 가져올 수 있다면 대통령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겠죠. 이런 추정을 바탕으로 보면, "독자세력을 규합해 대선에 나서겠다"는 결정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강용석이 좀 더 일찍 터뜨려 주는 바람에 약발이 크게 떨어지긴 했으나, 정치인 안철수는 냉혹한 검증의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는데, 그가 이 과정에서 살아남아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 개인적으로 저는 시사돼지 김용민이 김어준에게 낚여 인생 꼬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어준의 간담회? 강연? 팬클럽 모임? 동영상을 보니 이 사람 슬슬 그 특유의 인지부조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더군요. 쓸데없이 황우석 편을 들다가 딴지일보 거의 폭삭 망하게 했던 그 인지부조화와 판단력 저하 말입니다. 걱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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