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수면제 용으로 읽으려고 침대 옆에 구비해 놓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사전에 나온 글입니다.


제목은 '누구에나 자기 자리가 있다.'


베르베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회학자 필립 페셀은 여성의 특성을 4가지로 분류했다네요.


1) 어머니 -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에 중요성을 부여

2) 애인 - 유혹하기 좋아하고 위대한 연애 사건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3) 전사 - 권력의 영역을 정복하고 싶어하고 대의 명분을 위한 투쟁이나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4) 선생님 - 예술, 종교, 교육, 의료 쪽에 관심을 가진다. 옛날 같으면 무녀나 여사제가 되었을 사람들.


베르베르는 씁니다. '어떤 여자에게든 이 네 가지 성향이 다 있지만, 그 중 어느 것이 더 발달하는 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문제는 사회가 자기에게 부과한 역할에서 자기의 존재 의의를 찾지 못할 때 생긴다. 만일 애인 같은 여자에게 어머니가 되라고 강요한다거나 선생님 같은 여자에게 전사가 되라고 강요한다면, 때로는 그 강요 때문에 격렬한 충돌이 생겨날 수도 있다.'


뒤이어, 남자 또한 네 가지 성향으로 나눕니다.


1) 농부

2) 유목민

3) 건설자

4) 전사


하지만 이 네 부류의 남성 특성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이 없더군요. 카인은 농부이고 아벨은 유목민이라는 언급이 잠깐 나오고 말아요. 뭐 저 명칭들 만으로도 그 특성이 대강 짐작은 가지만요.


한 장이 채 안 되는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안에 있는 여신들>이 생각났습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같이 돌려 읽으며, 난 아테네 난 아르테미스 갸는 데메테르 어설프게 분류하며 참 신나게 놀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인기를 본 남자들이 '우리에 대해서도 써줘요!' 해서 나온, 이 책의 후속편인 <우리 안에 있는 남신들>은, 베르베르의 저 글에서 남성편이 시큰둥 한 것 만큼이나, 별로 재미가 없었답니다. 



저는 여성의 4가지 특징 중 '선생님' 성향이 과도하게 큰 것 같습니다. 종교 의료 교육 쪽에 골고루 관심이 굉장히 많고, 예술에 재능은 없지만 존경심은 있고. 과거에 태어났으면 정말 무녀나 여사제가 되었을 거에요. 실제로 게임에서도 맨날 힐러에 집착하고.. (하지만 디아 수도사는 근접딜러라 안할거라능-ㅅ-;) 


그리고 '어머니' 성향도 꽤 강하다고 짐작되어요. 강아지 애지중지 잘 키우는 것을 보면. 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확인은 힘들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 안에 있는 여신들> 책에 보면 전 헤스티아 (집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걸 선호하는..)성향도 강하긴 했어요. 


사실 전 선생님 보다는 전사가 되고 싶었어요. 특히 10대 후반 20대 초반일 때는, 그러니까 막 머리가 크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 세례를 받고, 전문직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남성들과 대등하게 권력과 명예를 다투는 여성들의 삶이 '옳다'(?)고 생각할 때는 말이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전사같은 여성으로서의 제 이상과 저의 실제 성향이 크게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명성을 얻거나, 정의를 위해 대의를 위해 싸우거나 하는 쪽으로는 자질도 별로 없고 관심도 크게 없더라고요. 제가 늘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느낄 때는 종교나 치유나 이런 쪽으로 파고 들면서 나만의 무언가를 가만히 만들어가던 때였어요. 


저 네 가지 사람 분류가 맞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럴 리 없죠. 심리 데이터 분석이나 기타 엄격한 과학적 잣대에 의해 분류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런 분류를 보며 내 자연스러운 성향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성향의 괴리를 살펴보며 새삼 느끼는 건, 사람은 타고난 성향, 기질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에요. 그 기질은 상당히 완고해서, 후천적인 경험이나 인지적 노력, 의도적 다짐 따위로는 잘 극복이 안 되더라고요.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저를 몰아세웠지만 제가 충족감을 느끼는 분야는 그쪽이 아니었던 것 처럼...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재미있네요. 두툼해서 베개로 쓰기도 좋고 내용도 잡다하게 풍성해서 돈 값 합니다. 제일 몰입해서 읽게 되는 글들은 각종 희귀 곤충, 벌레들의 생활상에 대한 묘사 글들. 역시 개미 작가 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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