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부산여행기 중 도시발전사 얘기는 한 번 따로 간략히 언급할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서울 빼고 근백년간 역사가 나이테마냥 이렇게 도시 생김새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 없어서리.(...)


부산의 역사 하면 대개 일제시대 개항장+일본으로 가는 관문+6.25 실향민 종착지, 정도가 아마 일반적인 인식일 것 같습니다.

사실 부산포의  역사적 등장은 꽤 오래 전으로 올라갑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군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조선측에서는

동래현에다가 도호부를 설치하여 승격시키고 군사적으로 부산진을 창설합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산진시장 할때 그 진은

한강진 양화진할때 그 나루터 진(津) 자도 아니고, 경상남도 쪽에 많이 보이는 그 진(晉)자도 아닌 鎭자를 씁니다.


.... 랄까, 이처럼 사실 오래 된 부산의 역사는 동래의 역사입니다. 즉 부산과 동래는 아예 딴 동네였다는 거죠.


일제시대 부산은 부산역과 부산주재일본영사관(웃기게도 이게 옛날 조선시대 왜관이 있던 자리입니다..)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으로는 현재의 중앙동, 동쪽으로는 초량동까지가 딱 부산이었습니다. 일본인들 동네죠. 현재 부산 행정구역 보면

영 엉뚱한 곳에 서구, 중구, 동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 그런 연유에서입니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나라 잃은 사람들은

범일동(범내골)쪽과 까치고개 너머(지금의 대티)쪽에 터 잡고 살았습니다. 흔히 '하꼬방'이라고 부르는 산비탈 움막이었죠.


그리고 부산 근처의 오래 된 호젓한 동네였던 동래군은 부산으로 강제 합병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행정구역 통합이

관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산에 터잡고 살던 일본인들의 세불리기에 의한 것이었단 사실이죠. 이들 부산 일본인들은 

경남도청도 부산에 유치하고 자신들 거주지 뒤편에 경남고등학교도 짓고(이와 비교해서 부산고의 위치는 초량동 쪽...)

동래군도 부산의 위성도시로 만들려고 한 거죠. 동래군에는 아직 조선 지역유지들도 많았고 이들의 힘도 무시못했죠.

(이런 일본인들의 세불리기는 사실 일제시대 전후로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게 대전과 공주의 충남도청 쟁탈전입니다. 

뭐 종국에는 철도의 힘을 등에 업고 대전지역 일본인들이 이겨서, 도청을 빼앗긴 공주는 지금의 위치로 격하되어버리죠.)


이게 대략 1940년대 중반까지의 상황. 

1) 개항장 = 부산 시가지 = 일본인 거주지역 + 중심가 + 산비탈 위에는 슬럼

2) 좀 떨어진 데에 동래군, 기장군 = 부산에 편입. 하지만 이 때까지는 거의 일산과 서울마냥 중간에 녹지도 있고 그런 상태.

현재 부산의 중앙부인 '서면'은 그냥 동래군 서면이라는 행정명칭이 그대로 굳어진겁니다(....)

(+ 김정한의 '사하촌'의 모델이 된 곳이 범어사란 얘기가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을 떠올려보시면 당시 부산 외곽 상황이

그려지실겁니다. 실제로 범어사의 중들이 몽둥이 들고 김정한선생을 두들겨패겠다며 찾아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쿨럭)


그런데 8.15 광복과 6.25 전쟁을 겪으며 부산이 갑자기 미친듯이 커집니다.


해방 후 귀국한 사람들 중 국내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 상당수는 부산에 그대로 눌러앉게 되고,

또 6.25로 인해 임시수도가 되면서 피난민들은 모조리 부산으로 부산으로 향합니다.

이들은 부산 지리를 몰랐기 때문에 대충 유명한 '부산역전'이나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했었지요.

심지어 1.4후퇴 때에 미군 LST 선단 하나에 싣고 온 피난민만 6만여 명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배 하나에서 태어난 신생아만 4명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함장은 군복 멋고 목사가 되었죠.

난 생명의 기적을 보았다 라며....)


그렇게 이산가족도 많이 생기고 하면서 그 사람들이 죄다 수정산 산비탈에 집을 짓고(하꼬방이죠),

그도 모자라 범내골을 넘어 연산동으로 동래로 해운대로 주례로... 시가지가 미친듯이 불어납니다.

도시계획이고 나발이고 없던 시절에 이미 도시 자체가 뻥튀기가 되어버리는 상황에 맞닥뜨린 거죠.

이러다보니 그 때까지는 별촌으로 있었던 동래군의 구 시가지도 이 때 부산시가지에 먹혀 버립니다. 

지리학에서는 연담도시화라고 합니다.


이걸 확인할 수 있는 게 부산의 제1도시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 시작점부터 문현동 로터리까지 

산비탈을 뚫고 터널로 이어진 도로)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북쪽 끝 노포동에서 시작하는데,

도심까지 너무 도로사정이 개판이다 보니 산비탈에 고속도로 하나 더 지어준 거죠(.....)

공항로니 자유로니 강변북로니 하며(이거 70년대에 생겼습니다) 아직 확장여력이 남아 있던

서울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즉 70년대 되면 이미 서울은 만원인데

부산은 삼천만원-_-; 수준에 이르게 되는 거죠. 

지금도 연산동이나 충렬사 이 쪽은 오거리도 있고 길이 좀 지멋대로 생긴 데 비해

부산대 있는 장전동, 약간 북쪽은 그나마 골목길이 좀 네모반듯하게 생겼습니다.


사실 서울도 이런 하꼬방촌이 70년대 초까지 충신동이나 남산자락 쪽에 있긴 했습니다만

포드 대통령 방한 때 서방 TV에 비친 모습이 보기 안 좋다고 서울시에서 확 밀어버렸습니다(....)

반면에 만리동고개 쪽에는 그 터 잡은 그대로 남아서, 경제발전에 힘입어 그 곳에 양옥집을 올리는데

그게 지금 만리동이니 효창동이니 하는 곳의 산비탈 동네입니다. (괜히 아현동에 마을버스가 다니는 게 아닙니다.

지리학적으로 아주 오랜 동네라는 반증이죠.) 


부산에서는 지금 사하구 쪽 동네나, 범일4동 6동 쪽이 이런 곳입니다.

가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네모네모처럼 생긴 단층 양옥이 비탈에 꽉 들어찬 부산 사진을 찍어올릴 때가 있죠.

그게 그 동네.


그나마 서울은 김현옥-양택식-구자춘으로 이어지는 3대 관선 시장의 개발 때문에 도시계획이 좀 틀이 잡히고

도로도 넓히고 했습니다. 아현에서 신촌 넘어가는 도로는 70년대 초에 3배 이상 넓힌 것. 

사대문 안은 원래부터 도시계획이 조선초부터 되어 있었지만 더 넓혔죠. 

소공로는 일제가 중국인들의 거점을 절반으로 쪼갠다고(...) 만든 도로고,

종로는 원래도 넓었지만 그걸 1.5배 정도 넓힌 것이고, 퇴계로는 아예 전쟁통에 날아가버린 남촌을 싹 밀어준 것.


반면에 부산은 그딴 거 없이 그냥 도시가 아무 계획 없이 그대로 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국에서 도로망 비율이 제일 개판인 동네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산업화 이후에 1980년대부터 슬슬 도시계획을 닦다 보니 유료도로 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2000년대초에 50%를 넘어섰다가 지금은 동서고가로 무료화 등으로 조금 비율이 낮아진 상태입니다.


여튼뭐 부산의 운전습관이나 도로상태는,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괜이 나라에서 부산교통공단을 지어 주고 지하철을 뚫어준 게 아닙니다(....)

(* 서울부터 시작해서 지하철은 거의 다 시 관할로 했는데 이 부산교통공단만 국가 공단이었습니다.

뭐 지금은 직할시가 광역시로 바뀌고 해서, 중앙정부의 손은 사실상 떠난 상태지만요.)


뭐 이 동네 전투종족 기질도 한몫 하는 것 같긴 하지만요(.....)

(금전산성에서 이니셜D를 찍는 버스기사라든가, 범일4동 삼거리에서 1단에서 3단 바로 넣고

망양로를 질주하는 시내버스를 보면 솔직히 좀 므엉해지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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