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여년 가까이 된 기억입니다만,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턱이 벌벌 떨립니다.

물론 그 전에도 칼이니 도끼니 사람을 죽일려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을 사용 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도구들은 나름의 용도가 있었고, 총처럼 순수하게 사람을 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는 처음 만지는 날이었지요.

장난감 총을 가지고 총싸움 놀이를 하던 어린때처럼 총쏘는 놀이라고 생각하기엔

그것은 너무 매끄럽고, 무거웠으며 서늘했습니다. 사격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총기사고때문에

조교들이 얼이 나갈 정도로 쎄게 PT를 시키는 것도 한몫했죠.  사로에 올라서서 가늠구멍을 통해

표적을 봐야하는 제 눈은 이미 목표를 잃고 어서 빨리 내려가고만 싶었습니다.

사격이 개시되고 여기 저기서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소음이 터져나오는 동안

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면 그 앞에 있는 것은 죽는거구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온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철모는 흔들리다 못해 내려와 눈을 가렸죠.

그때였습니다. 조교가 다가와서 제 엉덩이를 지긋이 밟으면서

 

"긴장하지 말고, 한발씩, 한발씩 "

 

그 목소리때문이었는지 말이 끝나자마자 첫번째 사격은 시작됐고,

어떻게 쐈는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제 사격은 끝났습니다.

귀는 멍멍하고 정신은 하나도 없고, 무의식적으로 옆을 보니

제 옆에 계속 서 있던 조교가  씩 웃으며 잘했다고 툭툭 쳐주더군요.

 

너같은 애들 많다고.

 

그깟소리 들었는데 맘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살인의 기술을 이렇게 배우는구나.

 

그리고 그 기억은 아직도 트라우마가 되어

두 번 다시 만지고 싶지 않은,  그 매끈한 질감이며 그 무게감이 느껴지는 장난감 총도 만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총소리에 민감하고, 실제 총기를 보면 이성이 개입되기도 전에 공포에 휩싸입니다.

20여년이 됐는데도 사라지지 않는걸 보면 아마 더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겠죠.

 

개인적으론 군대는 안가면 좋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물론 군에서 얻고 배우는 것들은 굉장히 큽니다.  조직생활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 관해 그렇게 심도깊게 고민하는 적은 아마 인생에 여러번 있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군에서 버리는 것은 시간뿐만 아니라 인간성도 버리게 됩니다.

 

조직이라는 이름하에 계급을 앞세워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행하고 싶지 않지만 피할 수 없고,

국가의 의무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자유를 뺏기는 것도 싫었으며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이런 살인의 기술따위 배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만 특별한 거고, 너만 그렇게 유난한거며,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듣기 싫었습니다.

누구에겐 재미있는 경험이었을 수 있지만 나에겐 평생을 따라다닐 두려움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뺏긴 나의 소중한 시간이 누군가에게 하찮은 취급을 받는것이 제일 싫습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특히 평생동안 그런 폭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경험을 하지 않을 사람들은 말이죠.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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